뽀뽀뽀




김성민의 습관에 대해 생각한다.

땀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등허리가 숨 쉴 때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린다. 승호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그 모습을 내려다본다. 한쪽 뺨을 베개에 파묻은 채 엎드린 성민의 옆얼굴을 대놓고 구경해도 상대는 부끄러워하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문득 안면을 가리는 폰이 거슬린다. 승호가 그걸 손바닥으로 덮어 버리자 성민은 순식간에 비어 버린 손가락을 꿈지럭거렸다. 커다란 눈동자가 도르르 굴러간다.

"너 땜에 방금 보낸 디엠에 오타 났으면 어떡할 거야."
"어쩌긴 뭘 어째요."
"새로 산 바지라고 해야 하는데 자지, 읍."

승호가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성민의 입을 틀어막는다. 반듯한 눈썹이 꿈틀거리자 성민이 아랑곳 않고 눈을 접어 샐쭉 웃는다. 축축하고 뜨뜻한 혀끝이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아, 진짜.

"저질이다."
"요구한 적도 없는 자세 밤새 연구해서 나한테 전부 써먹은 건 어디 사는 누구시니."
"밤새운 적 없거든요."
"연구했다는 건 부정 안 하네."
"그럼 시체처럼 눕혀 놓기만 할까요?"
"나쁘지 않아. 난 얼굴 보고 하는 거 좋아해."

성민이 손끝으로 승호의 눈 아래에 새겨진 점을 쿡 찌른다.

그게 버튼이라도 된 듯 승호가 한숨 쉰다. 이겨 먹을 맘 없대도 크고 작은 말씨름에서 승기를 쥐는 건 늘 성민이었다. 언성 높이는 것보다 무구한 얼굴 하고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게 승호에겐 잘 먹힌다는 걸 알았다, 김성민은. 그래서 잽 날리면 매번 카운터.

승호가 가벼운 접촉에 호응하듯 검지로 성민의 콧대를 쓸어내린다. 매끈한 감촉을 즐기다가 날렵한 코끝에 도달하면 엄지까지 가세해 콧볼을 꼬집는다. 아! 맹맹한 소리와 맥없는 웃음이 좁은 자취방을 가득 채웠다.







키스는 싫어. 담벼락에 기댄 승호를 양팔로 가둔 성민이 말했다. 빛 들지 않는 구석인데도 새카만 레쟈 재킷에선 광이 난다. 반항아처럼 짝다리 짚어 봤자 취기에 맹해진 낯은 그저 깜찍했다. 라이터 휠에 얹은 손가락이 자꾸만 헛돌았다. 무시하고 불붙이기 무섭게 검지와 중지로 잇새에서 연초를 빼낸 성민이 그걸 과장되게 빨았다. 그러잖아도 살가죽밖에 없는 뺨이 홀쭉하게 패였다.

"돛대였는데...."
"대답."
"애초에 키스할 생각 없었는데요. 나와 봐요, 좀."

오늘은 텄다. 승호가 벌레 쫓듯 손을 휘적거리자 성민이 순순히 몸을 물린다. 척 보기에도 빼빼 말랐는데 옷을 걸치니 신기하게도 태가 났다. 사람들이 가끔 모델로 착각하더라. 흘끔대며 스캔하는 같은 과 후배에게 소주 홀짝이며 건넨 말을 기억한다. 관찰하는 시선들이 기분 나쁠 듯싶은데 그에겐 잠을 자거나 식사하는 일만큼이나 익숙해 보였다. 아무튼 엿들은 건 아니었고.

"근데 왜 안 해?"
"취했어요?"
"아니."
"하지 말라며."

성민이 승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고갤 틀면 곧게 뻗은 손이 보인다. 성민이 그대로 상반신을 끌어당기자 두 사람은 동시에 비틀거리며 오른쪽으로 몇 걸음 발을 디뎠다. 제법 취객 같은 모양새. 옆으로는 시동 건 오토바이가 지나간다. 아니... 이건 좀 좆같은데.

"마음 있는 것 같잖아."
"뭐가요."
"키스하면. 엄마 아빠랑도 뽀뽀 안 하고 지낸 세월이 이십 년 훌쩍 넘어가는데 남이랑 그런다는 게. 가족한테 꼴린다는 소리가 아니라, 송승호야. 형이 뭔 말 하려는지 알겠지."
"아, 네."
"성의없어...."

그럼 사귀지도 않는 사람이랑 텔 가는 건 괜찮은 짓인가? 어디 하나 뻑난 것 같은 성관념에 토다는 대신 술기운 몰아내기 위해 가로등 켜진 길목을 계속 걸었다. 짐짝 취급하기에도 멋쩍을 만큼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은 지나치게 가벼웠다.

인정한다. 나도 술 덜 깼다. 반쯤 매달려 오디오 채우듯 조잘거리는 성민을 끌고 도착한 곳은 모텔이 아닌 자신의 자취방 앞이었다. 성민이 묻는다. 에구. 여기가 모텔이야? 빌라 공동 현관에 찰싹 달라붙은 남자 둘이 비친다. 당도하고 나서야 드는 생각은. 나 청소 안 했는데.







넓은 캠퍼스 내에서 김성민은 꽤 유명 인사였다. 훈훈한 얼굴과 피지컬을 포함해 남녀노소 격 없이 어울릴 줄 아는 사교성 덕도 컸다. 술자리라면 빠짐없이 참석하고, 새내기 앞에서 노련하게 소맥 말아 주는 센스까지 겸비한 그는 어느새 학과 간판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남자가 되어 있었다.

데리러왕ㅜ 남자 동기의 애교 가득한 문자에 치미는 토기 참으며 머슴 노릇 자처한 이유는, 승호가 부상으로 절절맬 때 곁에서 선뜻 수발들어 준 게 주영이었기 때문이다. 금 간 팔뼈 붙을 때까지 운동 못 나가는 아쉬움보다도 당장 수저 하나 제대로 못 드는 답답함이 훨씬 컸기에. 그걸 아는 주영은 일 년 지난 지금까지도 골절 사건을 빌미로 자신을 부려 먹곤 했다. 호프집 문을 무심코 밀었다가 가로막혔다. 당기세요. 팻말 확인한 뒤 다시 당겨 열었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테이블의 끄트머리는 휑했고, 바글거리는 인원이 앞머리에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멀대처럼 긴 탓에 홀로 툭 튀어나온 작은 머리통을 보자마자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김성민이다. 소문대로 머리가 되게 작았다. 그리고 이 꼴은... 김성민 팬미팅? 그 인파에 끼어 있던 주영이 동떨어져 있는 승호를 어떻게 발견하고는 기어 나와 말 붙였다. 가슴팍을 툭 치더니.

"왔냐."
"뭐냐?"
"뭐가."

승호가 당황한 기색을 미처 갈무리하지 못하고 성민이 있는 쪽으로 턱짓했다. 신난 듯 입매가 그린 호선이 시원했다.

"술 말아 주는 거 구경하는 거지, 뭐."
"그냥 자기 자리에서 보면 안 되는 거야?"
"되지. 근데 존나 취했잖아."
"...."
"이 사람들 지금 다 맛 갔어. 여기 개판인 거 보이지. 2차거든."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한 시. 입을 쩍 벌려 하품한 주영이 손에 든 맥주잔을 승호에게 내밀었다. 안에 든 노란 액체가 찰랑거렸다.

"드실?"
"이건 또 뭔데?"
"술자리의 황태자가 직접 말아 준 소맥."

지랄....

슬쩍 빠져나와 주영의 어깨를 자연스레 감싸 쥔 성민이 승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주영이 친구? 전부 제정신 아니라더니 성민의 음성은 또렷했다. 지나치게. 시끄러운 음악과 말소리를 제치고 단박에 꽂혀 승호는 되묻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면 보면 눈높이가 어긋나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했다. 어두운 조명을 받은 얼굴이 멀끔하고 훤칠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보는 사이 주영이 못 참고 황금비율 자랑하는 술을 성수라도 되는 양 홀짝였다. 성민의 내리깐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잘생기셨네요. 나중에 셋이 밥 한번 먹어요. 둘도 좋고."

승호는 성민이 굉장히 상습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한마디였으면 했다. 으레 하는 안부 인사처럼. 솔직히 잘 맞는 타입도 아닐 것 같고. 하지만 승낙하기 전까지는 주영을 놓아주지 않을 기세라 그러겠다고 했다. 뒤이어 내밀어지는 건 취한 친구가 아닌 성민의 휴대 전화였다. 스크린에 띄워진 숫자 패드가 그의 미모처럼 환하게 빛났다.

어쩌면 이것도 일종의 협박이 아니었을까? 세뇌라든가. 토 쏠린다는 말만 수십 번 뇌까리던 주영을 팽개치지 않고 무사히 침대로 이끈 승호의 인내는 과연 대단했다. 주글 거 같아.... 그냥 죽지 그랬어, 씹새야. 프레임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재킷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연락처에 저장된 열한 자리 번호가 낯설었다. 타이밍 좋게 상단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김성민 선배: 지금 뭔가 파스타 기분’ 승호가 바람 빠지듯 웃었다.







김성민은 남녀노소 인기가 많고 남녀노소 만날 수 있다. 개중 하나의 카테고리에 안착한 송승호는 아주 심오한 기분으로 싱글 베드에 누운 성민을 내려다본다. 이렇게 볼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치달았는지 반추하는 행위는 더 이상 무의미했다.

취하면 잤고 심심찮게 맨정신으로도 했다. 어디서 익혔는지 모를 그의 능숙한 섹스 스킬보다 일어난 직후 부은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 봉사 정신 발휘했다며 직접 끓인 해장국에서는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맛이 났다. 자꾸 사레 들리는 걸 견디며 힘겹게 물었다. 저 어제 그렇게 별로였어요? 입술을 비죽거린 성민이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씹으며 말했다. 좋았으니까 끓여 주지.

김성민에게 국 끓여 주고 싶은 남자가 한 명 더 생긴다면, 그 사람은 송승호의 경쟁자일까? 그보다는 차라리 섹파들과 떡치고 나서 국 끓여 주는 게 그의 루틴인 쪽이 더 안심될 것 같았다.

안심?

'아무나 붙잡고 잘 수 있으면 나도 수많은 아무나 중 한 명이에요?'

언젠가 충동적으로 뱉고는 성민을 독점하고 싶은 건지 남들과 공유하기 싫은 건지 잠시 고민했다. 성민은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꿰입으며 여상하게 대꾸했다.

'아무나는 아니지. 송승호지.'

묘하게 중심 비껴가는 화법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그 송승호가 김성민에게는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이 될 가능성은 있는 거냐고. 모르겠다. 어렵다. 형상화된 난제와도 같다. 아리송한 태도에 껌뻑 죽는 이가 넘쳐난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불이 났다. 가만두면 사그라들 불씨에 기름 붓는 건 눈앞에 있는 남자다. 거죽밖에 없는 배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린 성민이 내내 감고 있던 눈을 깜박였다. 움직임에 맞추어 속눈썹이 팔랑거린다.

"승호야."
"깜짝아."
"너 요즘은 왜 청소해?"
"네?"
"그때는 되게 더러웠던 것 같은데. 처음 왔을 때."
"왜 청소 안 하냐는 것도 아니고 청소하냐고 묻는 건 뭐예요?"
"물을 수도 있지."

이상하단 말이야. 남의 집 같고. 바깥쪽으로 몸 돌려 누운 성민이 승호를 올려다본다. 시선이 얽힌다. 백전백승의 김성민은 눈싸움에도 강했다. 승호가 멀찍한 곳으로 눈을 돌린다.

"그땐 여기서 형 재울 줄 몰랐고요. 사람 데려오면 예의상 치우는 게 맞죠."

흠.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닌 듯 눈을 가늘게 좁힌 성민이 승호의 탄탄한 허리를 기습적으로 끌어안는다.

"아니. 남의 집 같다고."
"남의 집이지. 형 집이에요?"
"너 연애 몇 번 해 봤냐?"
"갑자기 얘기가 그렇게 된다고?"
"빨리."

손이 은근슬쩍 허리춤으로 내려가는 걸 겨우 뿌리친다. 키만큼 기다란 손가락으로 대딸 쳐 준 건 왜 갑자기 생각나고 지랄. 도움 되는 것 하나 없다. 재잘재잘 떠들던 성민이 침묵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승호는 아랑곳 않고 속으로 애국가를 제창한다. 이불 걷고 침대 밖으로 나온 성민이 승호를 뒤에서 껴안으며 어깨에 턱을 괴었다. 마르고 닳도록 도와달라고요, 좀. 좀좀좀!

"남 되고 싶은 건 아닌데."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어찬다.

"순서가 요상한 것 같을 때 어떻게 하면 될까."
"연애 상담이에요?"
"그렇다 치고."
"치는 건 뭔데. 아니, 저랑 이러고 다른 사람이랑 연애하는 얘기를 해요? 바람 아니에요?"
"그래, 그래. 어떻게 하면 되냐구."

성민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승호와 함께 침대로 낙하한다. 성인 남성 두 명분의 무게만큼 매트리스가 출렁거렸다. 성민을 불편하게 깔고 누운 승호가 잠시 침묵한다.

"솔직하게 말해 봐. 이번이 처음이지?"
"아니라고!"
"그건 반말인데."
"애초에 이게 어떻게 연애예요."
"맞긴 하네."

선선하게 긍정한 성민이 허리에 단단히 감긴 팔을 풀고 승호 위로 올라탄다. 순식간에 뒤바뀐 위치에 승호가 날렵하게 뻗은 눈을 멍청하게 끔뻑거렸다. 미처 조직되지 못한 문장이 튀어나올듯 말듯 입만 벙긋거린다. 성민이 승호의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가까워진 손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모르겠으면 키스부터 시작해도 되고."

난 거짓말 안 해. 넌 그것만 알면 돼. 성민과 승호의 입술이 퍼즐처럼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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