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은
8시에 맞춰둔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미유키는 팔을 뻗었다. 안대를 걷으며 핸드폰 화면을 보자 메세지가 와 있었다. 12시 정각에 온 사와무라의 요란한 메세지, 대학 동창이 보낸 것이 하나, 일곱 시 지나서 온 아버지의 축하인사가 하나. 미유키는 마지막 것만 확인했다. 생일축하한다. 매년 예약해두기라도 한 듯 오는 같은 내용에 미유키는 조금 웃었다. 핸드폰을 도로 덮어두고 몸을 일으켰다. 방문 밖으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후루야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미유키는 테이블을 더듬어 안경을 찾아 끼고 침대에 앉아 미적거렸다. 마침내 두 발을 디뎌 부엌으로 나가자 제 몫을 차려서 먹고 있던 후루야가 잠시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의무적으로 인사하고 나면 후루야는 다시 젓가락질에 열중했다. 미유키는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아주고 세수를 했다. 씻고 나오는 사이 후루야는 설거지까지 끝내놓았다. 미유키는 1인분씩 덜어 얼려놓은 밥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다이얼을 돌렸다. 화장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후루야가 양치하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나갈 준비를 마친 후루야는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한 미유키 앞에서 잠시 뜸을 들였다. 켜둔 TV 소리에 반쯤 정신을 뺏기고 있던 미유키가 고개를 들어 후루야를 마주 보았다. 후루야는 잠시 말 없이 서 있다가, 세탁기 돌려놨어요, 한마디만 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미유키는 얼떨떨하게 밥알을 씹었다. 빨래는 돌아가면서 했다. 오늘은 미유키의 차례였다. 미유키는 후루야의 친절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미유키는 천천히 식사를 끝내고 세탁기에서 빨랫감을 꺼냈다. 마른 옷가지들을 소파 위에 쌓아두고 젖은 빨래를 널었다. 거리가 가까운 미유키는 더 느긋하게 나갔다. 그렇다고 해도 걷은 옷들을 개서 정리할 시간까지는 없었다. 미유키는 현관을 나서기 전에 너저분한 소파 위를 한 번 쳐다보았다. 돌아와서 치우면 될 일이었다.
미유키는 전철 손잡이를 잡고 서서 창밖을 보았다. 전철을 타고 나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차츰 굵어지더니 이내 후두둑 후두둑 창문을 두드렸다. 집을 나설 때는 어둑하긴 해도 빗방울이 떨어지진 않아서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여름에 우산 하나를 망가뜨려서 만약 후루야가 들고갔다면 집에 우산이 없기도 했다. 태풍이 왔을 때 쓰고 나갔던 우산은 살이 온통 부러져 있었다. 고장 난 장우산은 지금도 신발장 안에 있었다. 비가 내릴 때면 미유키는 별다른 의식 없이 고장 나지 않은 우산을 들고 나왔다. 후루야가 먼저 나가는 날은 신발장을 한 번 열어보았다가 우산을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매번 잊어버렸다. 종종 비누가 떨어졌다거나 밥을 새로 해야 한다고 알려오는 후루야도 우산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각자 집을 나섰다가 훈련이 끝나고 돌아올 무렵에는 지쳐서 들어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형식적인 인사나 교환할 뿐이었다.
후루야도 미유키도 현역 선수여서 시즌 중에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마주치지도 않는 날이 많았다. 미유키는 그게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몇 달 전 동창회에서 원거리 연애를 한다는 조노가 우는소리를 하던 걸 떠올렸다. 주말에나 보는 탓에 더 애틋해진다나. 같이 살지 않을 때 지금보다는 살가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힘을 잃었다. 오히려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이런 형태로라도 유지된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었다. 몇 년을 살았던 집을 팔고 물건을 나누어 완벽하게 타인이 되는 상상은 가끔 위협적일 정도로 현실과 가까웠다.
미유키는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자 지시대로 공을 받고 다시 송구했다. 구장에서 뛰고 구를 때만은 야구 외의 세계가 없을 것 같았다. 후루야도 마찬가지였다. 걱정할 시간은 적었다. 미유키는 다시 공을 받고 던졌다. 코치가 끄덕이자 미유키는 뒤로 물러섰다. 다음 선수가 똑같이 공을 받고 던졌다. 비 때문에 잔디가 척척하긴 하지만 그친 것만도 다행이었다. 연습 경기는 무난하게 속행되었다.
훈련이 끝나자마자 미유키는 연행되듯 회식에 끌려갔다. 공식적으로 함께 사는 가족도 애인도 없는 미유키는 만인의 표적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더 심했다. 개지 않은 빨랫감이 미유키의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미유키는 원치 않게 오늘의 주인공 타이틀을 달고 미유키는 바쁘게 술잔을 받아야 했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선배가 반쯤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기다리는 사람 없어? 잡고 있는 게 미안해지니까 그래.”
그 말을 듣고 미유키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랜만인데 찾아뵐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섭섭해 하실 분은 아니었다. 미유키는 고개를 저었다.
“뭐 대단한 날도 아니고요.......”
누군가 미유키를 살짝 쥐어박았다. 장난기 어린 타박이 돌아왔다.
“축하해주는 사람 섭섭하다.”
미유키는 생글거리면서 웃었다.
“챙겨주시는 게 감사할 뿐이죠.”
그러면 또 영업용 대답을 한다며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선배가 미유키 옆에 비집고 들어오더니 어깨를 두드리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미유키는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댄 채 적당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 날도 일정이 있는 터라 사람들은 하나둘 흩어졌다. 완전히 파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유키는 역까지 차로 데려다준 선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10시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차라리 훈련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면 후루야보다 일찍 들어가 태연한 척 앉아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후루야가 잠든 뒤에 들어가거나. 늦어버린 이상 선택지는 하나였다. 미유키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빈자리에 앉자 옆 사람이 조금 거리를 벌렸다. 차체가 멈추고 다시 출발할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미유키는 항상 내리는 역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렸다.
혼자 술을 마시는 취미는 없었다. 칵테일과는 더더욱 심적인 거리가 멀었다. 이미 취한 정신으로 다른 곳을 찾아갈 수는 없었고, 몇몇 주점은 혼자 앉아있기에 어색했고, 그런 소거법으로 우연히 들어앉은 곳이었다. 메뉴판은 뜻 모를 단어로 가득했다. 미유키는 차례대로 적당해 보이는 이름을 짚었다. 주스인지 술인지 모를 것을 마시고 나자 미유키는 학습이란 걸 했다. 달지 않은 걸로 골라주시겠어요. 어색하게 요구해도 바텐더는 친절하게 메뉴판에서 시럽과 주스가 빠진 칵테일을 짚어주었다. 받은 잔에서 전부 알콜향이 강하게 올라왔다. 두 잔을 비우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미유키는 시간을 확인하고 새로 주문을 했다. 갑작스레 피곤이 몰려와 바 테이블에 엎드렸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평범한 날이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들어가서 일찍 쉬었을 것이라는 무의미한 가정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생일은 어렸을 때도, 그리고 후루야와 함께 살게 된 이후에도 항상 좋은 일이 벌어지는 날이었다. 후루야는 생일을 챙기는 것을 좋아했다. 말은 안 해도 후루야의 얼굴과 행동에서 전부 알 수 있었다. 후루야가 굳이 케이크와 동봉하는 것이 아닌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초를 함께 사 오는 것도, 매년 다른 케이크를 사 온다는 것도 알았다. 화려한 장미가 있는지도 몰랐던 꽃병에 꽂혀있기도 했다. 미유키는 촛불 앞에서 자신보다 신난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후루야를 위해 초를 불었다. 그럴 때만큼은 앳되고 가늘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기억에 길게 달라붙어 간질간질하게 남는 얼굴이었다. 그걸 볼 생각에 날짜를 꼽으며 생일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작년까지의 일이다.
지난번 생일은 어떠했던가, 미유키는 완전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술기운 때문일 수도 있고 1년이나 지나버린 일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느 해에 후루야가 장미를 사 왔고 어느 해에 하얀 테디베어 모양 케이크를 사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듯이, 작년 생일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받았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재작년, 그리고 그 전 해와 섞여서 모호한 경계를 가진 덩어리의 일부가 되었을 뿐이다. 그때 후루야의 눈치를 보며 스트레스받지 않았다는 건 분명했다. 생일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는 올해를 기점으로 깊은 구렁이 패여 있었다.
시야에 불쑥 유리잔이 들어왔다. 미유키는 풀린 눈으로 썩 자연스럽지도 않을 미소를 지었다.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하자 바텐더는 다른 주문을 완수하기 위해 한쪽으로 사라졌다. 몇 잔 째인지 기억나지 않는 칵테일 잔을 손에 쥐었다. 전에 받았던 것과 달리 대가 없는 유리잔에 담긴 액체에서 커피 냄새가 났다. 미유키는 칵테일의 이름을 떠올리려는 무용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얼음잔을 쥐었던 손으로 뜨끈뜨끈한 눈 위를 문질렀다. 그만 마셔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을 때우려다 보니 잔이 계속 손에 잡혔다. 미유키는 받은 잔을 부산스럽게 손 안에서 돌리다가 들었다 내렸다 하며 찔끔찔끔 마셨다.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메세지 알람들이 쌓여있었다. 미유키는 시간만 보고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11시 반. 천천히 도착하면 12시.
손을 살짝 흔들어 계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계산서가 나왔다. 미유키는 금액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자업자득이다.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떨어지고 있었다. 택시를 잡을까 고민하던 미유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자마자 씻으면 된다. 온몸이 푹 젖을 정도는 아니었다. 도로에 생긴 물의 막이 현란한 간판 빛들을 반사했다. 종종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옆을 지나쳤다. 미유키는 술기운을 날려보려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비까지 맞으면 시원할 법도 한데 따뜻하게 입은 덕인지 축축해서인지 공기가 미지근하게 달라붙어 왔다. 발끝에 고인 물이 채여 신발이 젖어들어갔다. 미유키는 자신이 제법 똑바로 걷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생각하던 것보다 많이 취했어도 당장 어지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안경에 물이 맺혔다가 굴러떨어졌다. 미유키는 손으로 비를 막아보려다 곧 포기했다.
바쁘게 골목을 돌아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 섰다. 차 몇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 길을 건너 한 블록 직진, 그 다음 오른쪽으로 꺾어 또 두 블록을 가면 집이었다. 건널목 맞은편에는 빵집이 있었다. 미유키는 물방울로 잔뜩 더러워진 안경을 끼고 횡단보도 너머에 있는 불 꺼진 빵집 안을 보았다. 한창 장마철이던 여름날이었다. 한 주 내내 비가 내렸다. 일이 늦게 끝났다. 집으로 출발했을 때 11시가 넘어 있었다. 미유키는 문득 후루야의 생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가사만 나눠서 하는 동거인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생일은 축하해줄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가는 길에 빵집이 있었다. 미유키는 후루야가 기뻐하지 않더라도, 내지는 불쾌해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사자고 결심했다. 운이 좋다면 촛불에 일렁이는 그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미유키는 지금과 같은 건널목에서 어둑어둑한 빵집 안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냉장 진열대 안으로 케이크가 두어 개 보이는 것도 같았다. 작은 동네 빵집은 10시만 되면 문을 닫았다. 미유키는 그 사실을 7월 1일에 처음 알았다.
신호가 바뀌었다. 미유키는 길을 건넜다. 비가 그쳐 있었다. 안경을 안감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실수로 웅덩이를 밟아 운동화가 폭삭 젖었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이 젖어서 발치에 들러붙었다. 미유키는 혀를 차고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앞으로 내달렸다.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지나갔던 7월 1일과 같이 집에 도착하면 11월 17일도 끝나 있을 것이었다.
도어락을 해제하고 문을 열자 컴컴한 현관에 빛줄기가 생겼다. 운동화 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미유키는 한숨을 쉬었다. 소리를 죽이려고 노력하며 운동화를 벗었다. 혹여나 닫힌 문틈으로 기척이 느껴질까 싶어 불을 켜지 않았다. 미유키는 벽을 손으로 짚어 더듬더듬 거실로 향했다. 외투를 소파 위에 대충 던져두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화장실의 형광등이 열린 문 사이를 지나 거실을 어슴푸레하게 밝혔다. 아침에 개지 않은 옷들이 소파 위에 늘어져 있어야 했다. 거실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미유키는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인 기다랗고 흰 종이백과, 네모난 상자 하나를 보았다. 미유키는 무심코 거실 등을 켰다. 상자 손잡이 사이로 생크림과 과일이 보였다. 미유키는 케이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촛농이 잔뜩 떨어진 케이크에 구멍이 여덟 개 뚫려 있었다. 질식할 것만 같았다.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불을 붙이고 혼자 앉아서 초가 끝까지 타는 것을 지켜보았을, 후루야가.
거실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거렸다. 11시 57분, 초침이 정각을 지나치며 다시 58분. 미유키는 기듯 몸을 일으켰다. 닫힌 방문을 열었다. 이불을 반쯤 덮고 반쯤 흘린 채 누운 뒷모습이 보였다.
“후루야.”
미유키는 침대에 앉았다. 무게가 쏠리며 침대 한쪽이 꺼졌다. 자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미유키는 깨울 의도로 후루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케이크 안 먹을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후루야는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마치 미유키의 행동이 후루야를 둘러싼 공간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것처럼 완고한 등이 벽처럼 막아서고 있었다. 어쩌면 케이크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유키가 손을 뻗으면 졸린 눈을 깜빡이면서도 기대 오던 후루야는 영영 없는 건지도 몰랐다. 미유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후루야의 등을 끌어안았다. 오래 누워있었는지 등과 이불이 전부 따뜻했다. 미유키의 차고 무거운 옷이 후루야를 감쌌다. 그렇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간 척, 아니면 모든 게 해결된 척 연기라도 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아직은.
“아직 12시 안 지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