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p37
소극적 선택도 선택인 만큼, 성공이든 실패든 내 인생은 내 책임이다. 그 책임을 타인과 세상에 떠넘겨서는 안된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죄악과 비천함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악당이나 괴물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되든, 무엇을 이루든, ’자기 결정권’또는 ’자유의지’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는 인생을 살아야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p47
하루의 삶은 하루만큼의 죽음이다. 어떻게 생각하든 이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새날이 밝으면 한 걸음 더 죽음에 다가선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그 무엇엔가 가슴 설레어 잠들지 못한 채 새벽이 쉬이 밝지 않음을 한탄한다.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영원한 사랑과 충성을 서약한다. 죽음을 원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삶을 원해서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황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도 때로 그것을 잊는다. 오늘의 삶을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원한으로 채운다. 가진 돈이 많은데도 더 많은 돈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시간을 탕진한다. 이미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 오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내일로 미루어둔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운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쯤에야 비로소, 자신이 의미없는 인생을 살았음을 허무하게 깨듣는다. 그러나 한 번 살아버린 인생은 되돌릴 수 없으며, 놓쳐버린 삶의 환희는 되찾을 수 없다.

p56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p76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철학적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킨 예외적 인물들은 공통점이 있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젊은 사람들가 수평적으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나이가 많이 들어도 변함없이 개방적으로 생각하며 유연하게 행동한다.

p82
삶은 좋다. 죽음은 좋지 않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삶이 죽음보다 좋은 건 아니다. 삶이 더 견디기 힘들어서, 또는 계속해서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숱하게 많다. 그럴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죽은 용기가 있다면 그걸로 살아볼 일이지!” 그러나 자살을 용기로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삶도 용기만 있다고 해서 마냥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사는 데도 죽는 데도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삶의 그리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다. 그것이 없으면 삶도 죽음도 주체적 선택일 수 없다. 삶은 습관이고 죽음은 패배일 뿐이다.

p89
내 삶에 대한 평가는 살아 있는 동안만 내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먼 훗날, 또는 긴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내 스스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활동으로 내 삶을 채우는 것이 옿다. 그러나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말자. 내 스스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꼭 그만큼만 내 죽음도 의미를 가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산다.

p166
인생의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을 남들만큼 잘하고, 그 일을 해서 밥을 먹고살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이다. 돈 때문에, 남의 눈을 의식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또는 사회의 평판 때문에 즐겁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면 그 인생은 처음부터 절반 실패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꼭 즐겁지 않더라도 최소한 괴롭지 않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p171
만약 내가 좋아서 선택한 그 직업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좋아하는 것이라면 부득이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게 경쟁해서 그 직업을 가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만사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서 더 잘하기 위해서 또 경쟁해야 한다. 이 경쟁에서 뒤떨어지면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고, 삶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이기는 게 정답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즐기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해 일하게 되면, 이겨도 남는 게 없고 지면 최악이 된다.

p172
경쟁은 끝이 없다. 경쟁에 뒤질 때마다 열등감을 느낀다면 인생은 참혹한 비극이 된다.

p174
열정과 재능의 불일치는 회피하기 어려운 삶의 부조리이다. 재능이 있는 일에 열정을 느끼면 제일 좋다. 그러나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기만 하다면, 재능이 조금 부족해도 되는 만큼 하면서 살면 된다. 경쟁은 전쟁이 아니다. 져도 죽지는 않는다. 이겨서 꼭 행복한 것도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가진 것으로 인생을 산다. 가진 것이 많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다. 적게 가져도 행복할 수 있다. 끝없는 경쟁 속에 살아야 하지만, 즐기면서 경쟁에 임하면 이겨도 이기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평생 해도 즐거울 것 같은 일을 찾는 것이다.

p177
파리나 붕어도 기운을 느낀다. 하물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랴. 남에게 좋은 기운을 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무시하거나 미워하면 그 사람도 내게 똑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기라고 하든 텔레파시라고 하든, 하여튼 그런게 있는 것 같다. 대화를 할 때 느끼는 어조의 미세한 변화, 마주보면서 감지하는 안면 근육의 소소한 움직임, 악수하면서 가하는 힘의 강약만으로도 호불호의 감정이 오고 간다. 아무리 닳고 닳은 처세술의 황제라 하더라도 마음을 완벽하게 감추지는 못한다. 소통과 인간관계의 비결은 자신의 닦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타인을 미워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평가하려 하기보다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교감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을 바꾸어 놓을 수 없다. 바꾸려도 해서도 안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대한다. 이것이 재미있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이다.

p182
좋은 혁신 아이디어와 제도 개선책을 만든다고 해서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기득권층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혁신의 동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옳은 개혁도 실패한다.

p192
민주당은 국회의원 자리를 이미 차지했거나 다음 선거에서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직업정치인들의 기득권과 개별적 욕망이 정치적 대의를 압도하는 정당이 되었다. 민주당의 혁신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에게는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p212
부모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잘못은 자녀의 삶을 대신 설계하고 자녀의 행복을 대신 판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는 누구나 딸 아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은 사람도 자녀에게 행복을 상속해 줄 수는 없다. 행복은 사람이 저마다 느끼는 주관적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다시 철학의 근본 문제로 돌아간다.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그 자체를 물려줄 수 는 없는 행복, 그것은 무엇인가? 행복은 삶에서 기쁨을 느끼고 자기 삶에 만족하여 마음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언제 이런 흐뭇함을 느끼게 되는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면서,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격려하면서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주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만약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두 가지를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다. 첫째는 행복을 느끼는 능력, 둘째는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가지려면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자녀가 스스로 이것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시행착오를 경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삶의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은 행복을 누리는 능력을 기를 수 없다.

p216
좋은 양육은 가훈이나 규칙을 정해두고 예의범절을 익히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를 사랑해주고 부모 스스로 좋은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양육의 핵심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의도적으로 가르치고 보여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것까지 느끼고 이해한다. 부모의 꿈, 정서, 가치관, 감정, 부모가 외부 환경의 자극에 대응하는 밥. 이 모든 것이 아이의 뇌에 영향을 준다.

p224
1. 잘난 체 , 있는 체, 아는 체 하지 않고 겸손하게 처신한다.
2. 없어도 없는 티를 내지 않는다.
3. 힘든 일이 있어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4. 매사에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임하며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다.
5. 다른 사람을 배려가며 신중하게 행동한다.
6. 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한다.

p226
리영희 선생은 어디에서도 대접 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모임에서는 윗자리에 앉는 것을 사양했다. 자기주장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경청했다. 건강이 악화된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발언을 절제했고 글을 발표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시간을 보냈다.

p248
개인이 생존하는 데는 사회적 결속과 유대, 상호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기는 능력 뿐만 아니라 타인과 쉽게 공감을 이루어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련 타인의 기쁨뿐만 아니라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p251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복을 한다.

p258

p275
신앙이나 이념은 훌륭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조건이 있다.다른 이념과 다른 신앙에 대한 관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신념은 삶을 풍요롭고 기쁘고 의미 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수 있다. 그래야 사람이 이념의 도구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것이다. 빛나게 할 것은 신앙이나 이념이 아니다. 정말 빛나야 할 것은 자연이 준 본성과 욕망을 긍정적으로 표출하고 실현하면서 영위하는 기쁜 삶이다.

p291
내 자신은 종교가 없다. 종교가 없는 사람으로서 나는 세상의 부조리와 설명할 길 없는 불운을 일어나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행운에 대해서는 감사하되 불운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