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on saids
고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은 온종일 볼을 잡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드러눕거나 셋 중 하나였다. 와중에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냐는 듯 생전 난적 없는 두드러기가 온 배와 팔뚝에 돋아나 피부과 신세까지 져야했다. 거기서 처방 받은 약을 바르자 짓무른 부위의 피부 껍질이 통째로 벗겨졌다. 검색해보니 염증이 약에 지져지면서 죽은 살이 떨어져나가는 현상이란다. 굳이 검색해보지 않아도 눈치로 대강 알았지만 머리와 가슴은 별개라 풀리지 못한 속은 여전히 답답했다. 건조해진 겨울에 이너 아래로 감춘 피딱지를 득득 긁다 결국 참지 못하고 허옇게 말라붙은 껍질을 죄 떼어내야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 몸의 일부였음에도 하루 아침에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느낌은 참을 수 없이 끔찍했다. 피부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랬다, 정말 모든 게.
걔가 경찰에 신고할까, 근데 신고해서 뭐라 말할거야. 하지만 만약 말한다면, 걔가 모든 수치와 쪽팔림을 무릅쓰고 증거와 증명을 내 눈 앞에 들이댄다면….
그 날부터 참 단순한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경기 중 흙발로 코트에 들어선 경찰들과 아빠, 그리고 뒤돌아선 걔. 어찌나 생생하던지 잠에 깨고도 한참동안 휴대폰 내 모든 기록과 새삼스러운 연락처들을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하늘이 파랗게 질리다 노랗게 물고 이내 완전히 까매질 때까지 최종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이 사나웠던 피부 염증도 서서히 가라앉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흔한 흉조차 남지 않게 될 무렵이 되자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빠는 날 한번 흘긋 보더니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지? 하며 웃어줬다. 그 한마디에 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난 날 때부터 늘 이 키였던 것 같은데.
아빠,
아빠 아들이 지난 여름에 뭘 했냐면…
빈말로도 말할 기회가 적었다 할 수 없다. 최종수는 침묵을 택했다. 해가 지나며 자연스럽게 바뀐 나이 앞자리에 할 일도 할 말도 많아졌다. 루틴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외엔 많은 게 바뀌었다. 그래도 국내 대학에 가 경험을 쌓는 게 장래 낫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설득과 아쉬움을 뿌리치고 완전히 다른 땅으로 간 데엔 오랜 바람도 있었지만 거기엔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한국에 계속 머물렀다간 제 안식이 위험하다는 무언의 압박이 어깨를 짓누르는 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불길한 망상에 시달리며 살기보단 오랜 꿈을 핑계로 슬쩍 숨기를 택했다. 그럼에도 최종수는 단 한번도 용서를 바란 적 없었다. (맹세코 그랬다.)
나도 내가 용서가 안돼는데, 지금도 역겹고 밤에 잠도 설쳐가며 습관처럼 팔뚝을 긁곤 하는데 걔는 더 심하겠지. 세상 만사가 좆같겠지, 그래서 코트 밖으로 도망친 거겠지. 지 팀원들이랑 별 병신 같은 농담이나 씨부리고 낄낄대고 신나라 하던 놈이 전부 버리고… 흔적도 없이.
미국 현지 대학 첫 훈련 날 최종수는 꿈을 꿨다. 체육관 객석 저 멀리 구석에 앉은 기상호가 그의 연습 경기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성실했다. 좋든 싫든 훈련이 힘들던 잠자리가 편하던 해가 갈수록 기억은 점점 흐려지다 종래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상상력 을 업은 악몽은 점점 복잡다단해졌다. 어느 날은 중학교 적 체육창고로 걔를 끌고갔고, 또 어느 날은 도서실에, 어느 해는 옛날에 살던 아파트 지하 계단으로 걔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기억은 정확한 장소로 도달하기 싫다는 듯 매번 엉뚱한 장소만 순회하더니 최근엔 지금 살고있는 기숙사 침대 위로 그를 끌어들였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일어난 적이 한 두번도 아녔다. 억지로 끌려오던 걔 표정도 각양각색이었는데, 어느 때는 드물게 울먹거리다가도 무표정해지다 최근 들어서는 얼굴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치만 단 한번도 걔가 웃은 적은 없다.
그렇겠지.
그렇게 또 괴로운 꿈과 한바탕 씨름을 치르고 나면 습관처럼 옛날 경기 영상을 찾아봤다. 추계까지 뛰고 증발해버린 탓에 걜 볼 수 있는 경기 영상은 두 개 밖에 없었고, 원하는 장면에 초점 잡힌 순간은 그 중 십초도 되지 않았다. 재생바 위에 그려진 제일 많이 돌려본 구간의 곡선과 내가 찾아보는 구간의 낙차는 어마무시하나 이대로 돌려본다면 언젠간 따라 잡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봤다. 7번이 무어라 말하며 등을 두들기자 모호하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는 장면이었다. 나중엔 그게 꼭 날 찾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그럴 리가 없지. 넌 날 피해서 농구를 그만뒀으니까.
내가 더 간절해, 내가 더 오래 했어, 내가 더 잘해....
오랜만에 헛구역질을 해야 했다. 걔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했고 또 차차 잊겠지 하는 마음이 꿈에서 걔가, 나를, 내가 걔를…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하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최종수는 발작하듯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어떻게 널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널, 어떤 마음인데, 그러는 너는 어떤 마음으로 모든 시간을 보냈나. 이젠 이게 걔를 불쌍히 여기는건지 변하지 못한 저를 가여이 여기는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높은 확률로 둘 다 일테지만 인간의 이중적이고 고등한 심리 기제를 파악하기엔 아직 좀 이른 시기긴 했다.
휴대폰 알람이 5시 15분을 알렸다.
7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밝았다.
**
왜요? 할 말 있어서 여까지 온 거 아녔어요?
… 할 말 없음 갈게요.
솔직히 형네 학교가 진 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정말 제 잘못 아니잖아요…
**
기상호는 찡그린 미간을 펴 다시 한번 화면을 확인했다. 노안이 와서 그런 건 아니고 차라리 노안이라 잘못 본거였음 하는 내용이 적혀있어 그랬다. 그럼 눈 탓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지상고 공태성 : 야
지상고 공태성 : 내어제 구단서 회식했거든
지상고 공태성 : 최종수 기억나나
지상고 공태성 : 걔 우리구단 왔거든
지상고 공태성 : 고딩때도 그렇고 ㅈㄴ 잘하더라
지상고 공태성 : 어째뜬 걔가 너 번호달라ㅐ서
지상고 공태성 : 달래서
지상고 공태성 : 줬다
지상고 공태성 : 아는사이였냐
지상고 공태성 : 니 폰바꿔서 번호업ㅅ다는데
지상고 공태성 : 바꾼적 없지않나?
지상고 공태성 : 암튼 알려줬다
지상고 공태성 : 놀라지말라고
지상고 공태성 : 글고 너네 언제또 친해졌냐
지상고 공태성 : 귀신이네
평소라면 이런 건 그냥 한번에 합쳐 보낼 것이지 핀잔이나 나렸을텐데 내용이 영 그렇지 못했다. 주체 못한 한숨이 푹 새어나온다. 최종수가 한국 왔단 소식은 재유햄한테 들어서 알고 있긴 했는데 내 얘기를 했다고, 갑자기? 애꿎은 액정만 문지르던 엄지가 자판을 누른다. 머리가 다 아팠다.
기상호 : 근데 제 얘긴 어쩌다 나온거예요
기상호 : 저 그 양반이랑 안친한데
지상고 공태성 : 어제 3차때 전영중 얘기하다 나옴 언럭키전영중
기상호 : ㅈㄴ 옛날 얘기
기상호 : 틀딱
지상고 공태성 : 어 닥치라
기상호 :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진짜 안친함요 연락 한번도 한적 없는데
지상고 공태성 : 진짜가
기상호 : ㅇ
지상고 공태성 : ㅋㅋㅋㅋㅋㅋㅋ
지상고 공태성 : 금마뭔데
기상호 : ㅋㅋㅋㅋ ㅁㄹ죠 일단 연락오면 얘기해볼게요
이거 꿈인가. 볼일이 끝나 꺼진 액정엔 혼란스럽고 좀 멍청한 얼굴의 기상호만 앉아 있었다. 씨발 번호 지금이라도 바꿀까. 이젠 같은 갤럭시끼리도 데이터 이동 된다던데… 근데 바꾸면 또 회사 사람들이나 친구들한테도 알려줘야 하잖아. 그래도 지금껏 연락 없는 거 보면 술김에 받아두고 깨니까 쪽팔린거겠지. 제발 그랬음 좋겠다, 아니, 사람 새끼면 좀 그래야한다… 국물에 반쯤 빠진 젓가락을 휘휘 젓고만 있자니 옆에 앉은 남자친구가 흘긋거리다 말을 걸었다.
"형 배불러?"
"걍 속이 좀 그렇네…"
"그럼 남겨. 남기면 죽는 것도 아니고."
"그럴라고."
차라리 먹다 목 막혀 죽고 싶다. 그리고 아무도 날 모르는 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이게 됐음 인간이 아니라 재림 예수 였겠지.
지금 기상호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고 지루한 방탈출 게임을 하고 있다. 문도 창문도 없는 와중에 따는 시늉이라도 해볼 열쇠구멍 조차 없는 방인데, 이게 게임이 아니라 전부 지극한 현실이라는 점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그 날 벌어진 사건 이후 좀 많은 게 바뀌었다.
정확힌 본인을 제외한 주변 모든 환경이 송두리째 뒤바뀐 것 같았다. 쌍용기 이후 농구를 관두려 한 건 사실이지만 결과가 좀 달랐다. 지상고 우승이라는 감격스러운 결말. 만약 그 일이 없었음 계속 농구를 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대학도 관련 과로 갔거나 아무튼 뭐든 그거랑 관련된 공부를 지속했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인 가능성과 별개로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순간의 달콤함이 정신을 뒤흔들었다. 내가 잘해서, 내가 드디어 1인분이라는 걸 해서, 점수가 쌓이고 대가릿수 채우는 깍두기에서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증표는 상상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해도 된다는 증명은 참 좋은 거구나. 감독님이 어깨동무로 속삭였다, 계속 할 거지 상호. 응? 하자. 할 수 있어. 너 잘했잖아.
그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날씨는 여름인데 하늘만 가을인 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다은햄이던 태성햄이던 누구든 연락해 끌고 갔어야 했는데 아마 다시 돌아간들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
내 잘못인가.
공을 놓자 그간 면제된 일들이 쏟아져 내렸다. 꼬박 한 달을 열과 악몽에 시달리다 나오니 세상은 여태 알던 모습이랑은 전혀 다른 형태로 저를 맞이했다. 뒤에 딸려온 꼬리표는 많았으나 세간에 보일 건 체육 관두고 돌아온 운동부 타이틀 하나면 충분했다. 그 외엔 알릴 필요도 알아서도 안됐다. 제가 생각해도 190에 가까운 사내놈이 경찰서까지 가 제가 같은 남자한테 강간…을 당했는데요 하는 풍경은 영 아니였다. 떠오르는 수많은 자괴감 중에서 제일 적확한 표현이 그거 밖에 없었다.
아니다. 비웃음 당하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럼으로 지금 이 좆같은 통증과 고통을 빼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사실상 과정은 무의미했다. 그럴 수 없는 걸 알아 그랬다. 그냥 아니고, 없는 일이 될 바엔 홀로 없는 없는 일이 되는 편이 나았다.
아닌 건 아닌거다.
희찬이는 졸업할 때까지 그만두기 직전의 징조들에 대해 추궁하고 떠봤다. 다은햄은 뭔가 말하고 싶으면서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태성햄이 제일 많이 화냈는데, 니 가면 우리 진짜 좆된다고 길길히 날뛰다 다음 해 키 191짜리 1학년이 들어오니 좀 잠잠해졌다고 했다. 그땐 좀 서운했는데 나중에서야 다은햄이 그 미친 새끼 졸업할 때까지 니 애기하면서 화냈다 전해줬다. 전말까지 듣자니 웃기고 약간 슬퍼졌다. 화내야 할 사람보다 더 화내줄 사람이란 게 좀 웃겼다. 관두겠다 소리 들은 우리 아버지도 글케 화 안냈는데.
대학 합격 통보를 받고서야 그래도 일찍 그만둬서 다행이었네... 가 진심이 될 수 있었다. 대회 이후 처음 밟아본 서울땅은 믿기지 않을만큼 눈이 많이 내렸다. 여즉 김해와 부산만 오가던 놈이 미리 알아둬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녔다. 월세니 알바니 자취니 학점이니… 세상 이치는 튕겨 날아간 공보다 빠른 주제에 모나기까지 해 첫 해는 단어 그대로 치이기만 했다. 그렇게 정신 놓고 눈코 뜰 새 없이 살다 보니 새벽녘 처음 마주한 흰 풍경의 감격보다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흙탕물이 더 귀찮아졌고, 눈만 내리면 삽 들고 길목을 파내야하는 시기까지 넘기니 주변엔 더이상 새삼스러울 만한 사건이 남지 않았다. 그제서야 기상호는 제가 세상만큼 아주 많이 변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변한 건 그 뿐만이 아녔다. 어쩌다 눈이 가는 사람은 어째 죄 남자였고, 그래 머리털이 검은 건 한국인이라 그렇다 치자. 체격이나 인상, 하다못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제 트라우마를 건드릴 조건을 충족해야 만족스러웠다. 역시 그때 반쯤 정신을 놔버린 게 틀림없다. 어디선가 유년기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없으며 알게 모르게 평생을 좌우한다는 썰을 들었던 거 같은데 이게 맞나? 그런 거 치곤 여태까지의 만남은 저 좋고 쟤도 좋은 관계 뿐이었다. 얘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얘가 기상호에게 거악한 트라우마를 안겨준 최종수와 꽤 비슷한 인상이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고 얘를 통해 최종수를 보냐고? 그건 또 아닌데… 아무튼 이 배배 꼬인 본인의 심리 역학 구조는 세계 제일 미스테리다.
“누구 연락인데?”
“어 아는 형.”
“뭐 맨날 아는 형이래.”
“그럼 아는 형이지… 고딩 때 동창이다.”
아니 아깐 또 형이라며 하던 놈이 곧 뭔갈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운동했다 그랬지 하는 뉘앙스다.
지금 애인은 수영하는 앤데, 곧 있음 선발전이니 오늘부터 체중 조절한다면서 (이 말은 저번주부터 했다.) 차슈에 파만 세 번 추가해 야무지게도 쳐먹었다. 그런 주제에 성적은 지네 학교에서 제일 좋으니 할 말 다했다. 동시에 쪽팔리니 경기 오지말라 난리를 쳐놓고도 안오면 서운해하고, 혹여 저 보는 앞에서 순위권에 밀리면 온종일 분해하다 화장실에서 눈물 찔금 흘리며 나올 줄 아는 애였다. 어릴 적부터 축구보다 수영을 먼저 배웠다는 얘기에 기상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왜 난 이런 인간들만 만나는걸까. 잘하는 만큼 욕심도 많은 인간들. 다시는 볼 튀는 소리 안 듣겠다는 결심으로 코트 밖을 나섰지만 공은 형태를 바꿔 끊임없이 주위를 맴돌았다.
이따금 연습장에 구경가기도 했다. 물에만 안 드가면 되고 형은 따지고 보면 물치 자격증 있으니까 내 주치의? 관계자 같은 거 아닌가? 뻔뻔히 주장하는 양에 어거지로 끌려간건데, 역시 대화할 환경도 아닌 그곳에 뻘쭘히 서있는 게 민망해 2층에 뚫린 휴게실에 앉아 손바닥해진 풀장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물반 빛반 그 광활한 광경을 내려다보던 기상호는 문득 코트나 필드보다 트랙이 제일 잔인한 것 같다 느꼈다. 색으로만 팀을 구별해 엎치락 뒤치락 공을 이리저리 돌리며 슛을 쏘니 막니 하는 광경은 문외한이 보면 어 빠르다 쟤는 슛 쏘니까 잘하는 애네 이러고 마는데, 저렇게 가지런히 선 그어두고 누가 더 빨리 달리나를 기준으로 잡아버리면 겉핥는 호사가들이 욕하기 딱 좋은 환경일 수 밖에 없었다. 쟤는 한 번 밀리거나 실수라도 하면 턱이 떨려 남은 트랙동안 이를 악물어야 한댔다. 아마 그 형도 그랬겠지, 아니 이게 아닌데. 그만 생각하자… 그러다 저 아래 누군가가 아는 척을 하면 대충 걔겠거니 손을 흔들어줬다.
폰을 뒤집은 기상호가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쉰다. 운동하는 사람은 진짜 안 만나고 싶었는데.
“그럼 남은 거 내가 먹어도 돼?”
“니 다음주 선발전이라며.”
“졸라 먹고 열라 돌면 되는데. 나는 살이 너무 잘빠지는 체질이지 찌는 스타일은 아니거든.”
“자랑이다.”
“형도 그런 거 같은데?”
“내는 어릴 때 키가 너무 빨리 커서 그런 거고.” 기상호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앞선 놈들과 달리 얘랑은 같이 살 만큼 오래 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분해도 남탓은 하지 않고, 핑계대지 않고, 제 머릴 좀 못살게 굴다 다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 속으로 뛰어드는 애였다. 이미 벌어진 과정과 결과를 필요 이상으로 곱씹지 않았다.
얘는 잠시나마 최종수를 잊게 해줬다.
**
기상호가 기억하는 최종수는 모든 일이 간절히 남 탓이길 바라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