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개 外



 어떤 식으로든 저열해지는 건 쉽고 사실 사람은 다 저열하다. 전시하느냐 감추느냐의 차이가 겉껍데기의 격을 나눌 뿐이다.
 재민은 무념한 낯으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삼켰다. 어느새 실내는 만원이었다. 너절한 얘기들 중국집 그릇들 술병들 담뱃갑들 뿌연 연기들 부덕한 냄새들 휴대폰 게임 소리들……. 초싸이언처럼 왁스를 떡칠하거나 짧은 교복치마 위로 담요를 덮고 앉은 이들이 삼 초마다 재민에게 말을 걸었다. 재민은 대강 응수했다.

 애초에 저열을 과시하기 위해 계약한 집이었다. 근방에서 가장 싸고 괜찮은 매물이랬다. 천이백에 팔십 관리비 별도 전기세 별도. 옵션은 세탁기 냉장고 비데. 애들은 좋다 개혜자다 했다. 재민은 미성년자 몇 십 명이 밤마다 들락거리며 불결을 떠드는 장소가 굳이 필요한가 의문했지만 괜한 찬물을 끼얹지는 않았다. 내버려두는 편이 조금이라도 덜 무료했다. 결과가 지금 와선 따분해졌다. 정기적으로 술 처먹는 한심한 모임이 생길 줄은 몰랐다.


 “나나 요새 개근이라며.”


 짜장면 그릇 속으로 담배를 지져 끄는데 맞은편의 진우가 학교 얘길 꺼냈다.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지난 한 달간 결석 지각 조퇴가 전무했던 건 진짜다. 재민은 눈썹만 까딱했다.


 “뭐야 웬 성실. 나재민 대학 가려고?”


 왼편의 채은이 켁켁 놀렸다.


 “애인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던데.”


 진우가 장난스레 바닥을 긁어 소란을 야기했다. 집안의 시선이 삽시간에 재민에게로 몰렸다. 재민은 웃지도 않고 부정했다. 애인은 무슨 애인이야 징그럽게. 정말 생각이 없는 어투였다. 나재민은 시치미 떼는 일에 모종의 재능이 있었다. 자연히 주목이 와해됐다. 진우는 그럼 왜 점잖을 떠냐 물었다. 왜냐니 담배 팔아먹으러 학교 간다. 씨발 대답이 됐냐. 상스러운 대사를 꺼내며 재민은 그제야 웃었다. 진우는 만족한 기색이었다.

 아. 재미없다. 중얼거리고 싶은 말은 속으로 했다.


 ◆


 아홉 시 삼십 분. 제법 이른 시간이었다. 재민은 잠깐 집엘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야 너 가서 그대로 잘 거지. 와 나재민 튄다. 개근맨 나재민 튄다. 지 혼자 대학 노린다. 눈치 빠른 몇몇이 종아리를 붙잡았다. 하릴없이 구라가 필요했다. 개근이고 나발이고 초딩 동생 생일이라 한 번 들러야 된다 설명했더니 저지하던 손들은 금세 힘을 잃었다. 가족을 대면 쉽다. 재민은 제게 무관심한 어머니와 그보다 더 무관심한 아버지를 둔 외동이었다.

 현관 수납장에 놓인 페브리즈로 온몸을 코팅한 후 재민은 집을 나섰다. 여름이 가까워진 날이었으나 저녁이라 선선했다. 도착지는 도보로 십 분 거리인 모교의 후문이었다. 조용했다. 재민은 담벼락 앞에 가방을 깔고 앉아 기다렸다. 종소리가 들릴 때까지 휴대폰을 두드리며 참을성을 길렀다. 멀리선 개가 짖었고 휴대폰 안에선 쿠키가 달렸다.


 “재민아.”


 십 분, 딱 십 분이 지났다. 종이 울리기도 전인데 제노가 불쑥 나타났다. 약간 짓궂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일찍 나왔어. 재민이 물었다. 제노는 선생님 안 보실 때 쪼그려 달렸노라고 대답했다. 적잖이 웃긴 말이었다. 재민은 묵직한 가방을 등껍질처럼 둘러멘 채 후다닥 내빼는 이제노를 상상했다. 도무지 개콘 게스트였다.
 제노는 머뭇대는 듯 하더니 먼저 손을 잡았다. 재민은 그 손을 끌어당겨 안아서 키스했다. 누군가 옥상에서 내려다본다면 필시 훤히 보일 거였다. 제노가 어깨를 움츠렸다. 간식을 얻어먹었는지 제노의 혀에서는 단내가 짙었다. 새콤달콤. 마이쮸. 아니면 와우 플럼 같은. 위험한 단내.

 키스는 캐논 변주곡과 함께 끝났다. 야간자율학습의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교정이 시끄러워졌다.

 둘은 제노의 아파트까지 나란히 걸었다. 제노는 재민의 옷에서 좋은 향이 난다고 했다. 개짓거리 하다 온 걸 뻔히 알지만 페브리즈를 들이부은 성의를 칭찬하는 거였다. 이제노도 참 이제노였다. 재민은 제노의 민무늬 가방을 건네받아 대신 멨다. 의외로 가벼웠다.


 “다시 갈 거야?”


 아파트 단지의 입구를 지나며 제노가 물었다.


 “어 아마.”


 재민은 흘리듯 답했다. 둘은 자연스레 놀이터로 들어섰다. 휴대폰이 연달아 진동해서 재민은 잠시 화면을 확인했다. 카카오톡 알림이 줄지어 있었다. 나재민 안 오냐. 나나 자니. 자는 거 아니지 우리 다 기다린다. 하여튼 저열한 이들은 제 성질을 전염시키는 일에 사력을 다할 때 가장 끈질겼다. 귀찮았다. 재민은 읽고 씹었다.

 제노가 벤치에 앉았다. 황색 가로등이 두어 개 켜졌을 뿐 놀이터는 적막했다. 재민은 제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사내애 두 명이 들러붙자 벤치가 꽉 찼다. 제노는 아래서 봐도 말끔하니 굴욕이 없었다.


 “공부 열심히 했냐.”
 “응. 심심했어.”
 “나 없어서?”
 “뭐야 나재민 잘난 척 해.”
 “면박을 주네 마음 아프게.”
 “재민아 근데.”
 “어.”
 “너 그러고 있으니까.”
 “어.”
 “…….”
 “왜. 못생겼어?”
 “그……. 키스하기가 힘들 것 같아.”


 제노가 중얼거렸다. 민망한 기색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재민은 묵묵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제노의 턱을 잡아 입술을 부딪쳤다. 학기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혀를 섞고 다리를 비볐는데도 제노는 아직 키스에 서툴렀다. 재민이 제노의 앞섶을 짚었다. 저지하는 손을 치우고 이미 불룩한 윤곽을 끈질기게 주무르자, 아아, 어떡해, 제노가 앓았다.

 한참을 엉켜 놀다 겨우 떨어진 직후 이제노가 말했다 재민아 오늘 집에 부모님이 안 계셔 라고. 의도며 내용이 뻔하디 뻔했다. 재민은 아랫입술을 훑었다. 제노의 머릿속이야 훤히 읽혔지만 전신에 열이 오르는 건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천진한 제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재민은 그냥. 그냥 웃었다. 왜 웃어. 제노가 칭얼거렸다.


 “제노야 너 진짜 귀여운데 미안해. 나 가봐야 돼.”


 재민이 입술을 바싹 대고 말했다. 제노는 시선을 낮추더니 수긍한 듯 주억였다. 다음엔 너랑 있을게. 재민이 미간을 좁히며 외려 제가 조르는 꼴로 약속했다. 응. 응. 제노가 착실히 대답했다. 재민은 또 입을 맞췄다. 맞닿는 숨이 너무 뜨거워서 애가 좀 탔다. 제노가 재민의 교복 셔츠를 쥐었다. 제노야. 진짜 귀여운 제노야. 재민은 제노의 팔뚝을 지분대며 쓸어내렸다. 부드러웠다.

 둘은 다시 걸었다. 놀이터에서 제노의 공동현관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갈게 재민아 맨날 데려다줘서 고마워. 제노가 인사했다. 어 낼 봐 문단속 조심하고. 재민은 손을 흔들었다. 제노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두커니 서서 십오 층 복도의 불이 켜지는 걸 확인한 후 재민은 뒤돌았다. 마침 전화가 왔다. 황진우였다. 나나 어디냐고 묻는 목소리가 척 듣기에도 잔뜩 꼴아 있었다.


 “씨발 집착 그만해라 진우야.”
 ― 아니 나나쓰. 너 없으면 여자애들도 다 간단 말이야.
 “앞이니까 기다려.”


 통화는 싱거웠다. 재민은 무표정으로 단지를 빠져나왔다. 키스의 여파인지 아랫배가 저릿했다.


 ◆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마을 01. 밤바람이 끈적했다.


 ◆


 복귀는 금방이었다. 원룸 내부의 인원은 일체 알코올에 절어 흐리멍덩한 눈깔을 하고 있었다. 잘생긴 재민이 왔냐. 와 나나 안 튀었네 이거는 엄청난 의리라고 할 수가 있다. 아부성 멘트가 다발적으로 터졌다. 재민은 내미는 종이컵을 받아 마셨다. 소주와 핫식스를 섞은 잔이었다. 울대가 싸했다. 여고 애들 부르자. 아니 공고 애들 부르자 걔네가 잘 마셔. 닥쳐 생과고 온대. 신경을 쏟기조차 귀찮은 말들이 골을 울렸다.

 저열한 지옥의 틈에 끼어 재민은 곱씹었다. 제노를. 이제노의 깨끗한 입술과 혀와 거절당했을 때의 시무룩한 낯빛과 발화점이 낮고 쉽게 안달하는 성질 같은 것들을. 누군가 담배를 물렸다. 이어서는 현관문이 열렸다. 생과고의 펑퍼짐한 생활복을 입은 무리가 떼거지로 입장했다. 어숍쇼 어숍쇼. 하우스 이용료는 인당 만오천원입니다 소맥 및 국산 담배 무한제공. 진우가 엉덩이를 흔들며 까불댔다. 초록 생활복들이 왁자지껄 박수를 쳤다.


 “아…….”


 이번에 재민은 소리 내어 말했다.


 “재미없다.”


 재미가 없다고.
 만오천원 아 감삼다. 돈을 걷던 진우가 당황한 얼굴로 돌아봤다. 뭘 야려. 재민이 실소했다.


 이제노의 깨끗한 입술과 혀와 거절당했을 때의 시무룩한 낯빛과 발화점이 낮고 쉽게 안달하는 성질 같은 것들. 그러니까 이제노. 이제노로 귀결되는 것들.
 미친 척 집엘 따라가서 밤새 핥고 만졌어야 하는 건데.


 실로 오랜만의 후회였다. 재민은 훌쩍 일어섰다. 알랑대는 황진우의 엉덩이를 지나 생과고의 녹빛 군집을 지나 현관을 나왔다.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