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과 스크랩북




사진을 찍자고 했었다.
미유키의 핸드폰 갤러리에 있는 사진들이라고는 가끔 라인으로 전송하려고 저장해두었던 후루야의 기사 캡쳐와 팀 선배들이 뺏어가 찍었던 사진 두어 장 정도가 전부였다. 후루야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으로 남겨두는 데 미련을 가지는 편이 아니어서 깨닫고 보니 같이 찍은 사진은 고사하고 서로 찍은 사진 한 장 없었다. 후루야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같이 찍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사진을 찍는다는 게 대단히 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들어서 찍기만 하면 될 일인데도 후루야는 합의가 필요한 것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미유키는 괜스레 민망해져서 갑자기 왜 그러냐고 대꾸했지만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같이 하는 야구가 끝난 이후로 후루야는 한층 얇아진 관계를 보수해보려고 여러가지 제안을 해왔다. 동거하자는 이야길 꺼낼 때도 같았다. 집을 비우는 날이 더 많을거고, 관리도 힘들고, 여러가지 고려 사항을 잔소리처럼 말해도 후루야는 고개를 저었다. 항상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직선적으로 표현하는 후루야가 우물거리면서 확신 없는 목소리를 했다.
-싫어요?
흔들리는 눈으로 미유키를 조른다. 후루야가 이럴 때면 미유키는 거절하지 못했다. 잘라내자고 생각하면서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미온적으로 대꾸하다 보면 처음의 다짐은 잊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냥 들어줄 수도 있었다. 그게 어떤 이유에서 오는지 알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살고, 사진을 찍고, 그런 거보다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었다. 후루야에게 잘하고 싶었다. 후루야의 캐쳐일 때는 그게 간단한 일이었다. 미유키는 어떤 게 최선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알았다. 그러나 사귀게 되고 관계가 사적으로 변하자 미유키는 후루야보다 많은 걸 아는 척 할 수 없었다. 후루야가 미유키에게 이끌어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후루야는 야구 외적으로는 제가 이끌어보겠다고 허부적거렸다. 그런데도 미유키는 자신이 후루야의 첫 연애 상대라는 걸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후루야가 기뻐했다가 풀이 죽었다가 하는 걸 보면 더 그랬다. 제대로 해주지 못할 거라는 노파심에 공연히 생각만 많아졌다. 이대로 괜찮은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후루야는 막연하게나마 그런 미유키를 눈치챘기 때문에 동거니 미래니 하는 것들을 밀어붙여 왔다. 그러니 미유키는 죄책감에서라도 결국 후루야가 하자는 대로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루야에게 전부 맡겨두지는 않았다. 상호 관계라는 자각은 있었던 미유키는 제 나름의 노력을 했다. 이를테면 사귀는 사인데 공을 주고받는 거나 같이 밥먹는 거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시덥잖은 고민이 그랬다.

덕분에 몇 번은 기억에 남을 만한 삽질도 했었다. 미유키가 지하철 역사에 붙어있던 불꽃축제 포스터를 가리키면서 머쓱하게 말했다. 가고싶어? 후루야는 불꽃놀이에 큰 관심이 없었고 미유키도 관심이 있어 제안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도 단박에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시간을 정하고 설렁설렁 도착했을 때는 이미 불꽃 끝자락이나 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온 길바닥에 사람이 깔려 있었다. 어떻게든 비집어서 자리를 만들겠답시고 몰려든 인파에 치이며 고생했지만 보람은 있었다. 일행을 잃지 않기 위해 너도 나도 동행의 옷자락과 팔을 붙잡고 있었고, 사람들은 남자 두 명이 손을 꼭 붙들고 있는 걸 주목하기에는 불꽃놀이를 보랴 자리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주변을 경계하랴 바빴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둘은 누가 보기에도 데이트라고 할 만한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미유키와 후루야에게 데이트는
1. 연인이라면 보통 하는 것
2. 그러면서도 밖에서 들켰을 때 남들 눈에 연인처럼은 안 보일 만한 것
3. 두 사람 다 좋아하는 것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일종의 퀘스트였는데, 앞의 두 개를 맞추는 것도 매우 까다로웠기 때문에 세 번째는 자주 무시되곤 했다. 그래서 후루야가 한창 광고하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티켓을 들고 왔을 때 미유키는 웃음을 참으며 예의를 지켰다. 후루야도 불꽃놀이를 가자는 미유키가 똑같이 느껴졌을 거였다. 상대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아는 데서 오는 민망함, 고마움, 내지는 귀엽다든가 하는 감상들.

그런 뻘짓들은 동거하게 되면서 전부 그만두게 되었다. 그 다음 레벨이 됐으니 전에 하던 자잘한 퀘스트는 안 해도 된다는 거였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 만나고, 빈둥거리며 누워있다가 공원에서 캐치볼을 했다. 의무에서 벗어난 순간 가장 충실한 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인이란 이름이 그들에게 편해진 건 아니었다. 후루야는 잘 하고 있는 건지 확신하지 못해서 불안해했고 미유키는 불안한 후루야를 어떻게 받아줘야 하는지 몰랐다. 종종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컨디션 흐트러뜨렸던 그 시절의 소년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미유키는 딱 잘라 확신을 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후루야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지도 못했다.
-결혼이라도 해서 손에 반지 끼워주면 믿을래.
한 번은 농담 삼아 그렇게 말했더니 후루야는 눈을 뾰족하게 떴다.
-해 줄 거예요?
고집은 세도 착하고 말 잘 듣던 제 투수는 이제 어디에도 없는데. 고등학교, 같은 야구부, 배터리, 거기서 못 벗어나는 건 미유키 자신뿐인지도 몰랐다. 미유키는 어설프게 웃고 넘겼다.

후루야가 사진을 찍자고 한 게 그 무렵이었다. 본가에 갔다가 신생아 시절 사진부터 가지런히 모아져 있는 앨범을 보고 왔다나. 미유키도 후루야 댁에 얼떨결에 인사 차 들를 때 책장 한 줄을 차지한 사진첩들을 본 기억이 있었다. 가족앨범에 기록된 후루야는 미유키가 보는 후루야와는 달랐다. 웃지 않고 어색한 포즈로 서 있는 게 후루야다워서 웃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더랬다. 후루야의 어머니는 미유키를 앉혀두고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설명을 한 마디씩 덧붙이며 미유키가 전부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찍은 사람의 자부심일 것이다. 그녀는 어디서 언제 왜 찍고 있었는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어색하면서도 즐겁고 또 생소한 일이었다. 미유키네 집에는 앨범이랄 건 없었다. 추억이 담긴 사진이라면, 아마도 프레임 너머에서 아버지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어머니와 함께 찍은 게 몇 장.

후루야의 앨범은 도쿄로 오게 된 고등학교 이후로 쭉 비어있었다. 후루야는 만약 그 뒤를 채운다면 미유키와 찍는 걸까 생각했다고 했다. 모호하게 했던 생각을 갑자기 구체화한 데는 살풍경한 인테리어도 한 몫 했을 거였다. 자주 비우는 집이다 보니 자잘한 가구들은 치일피일 미루며 들이지 않고 있었다. 소파와 TV, 침대, 냉장고, 식탁을 갖추고 나니 협탁이나 스탠드 같은 것들은 잠시 생각났다가도 다음에 사자고 미루는 사이 매번 잊혀지곤 했다. 영 휑한 이 집에 부족한 게 사진만은 아니었지만, 사진첩이라면 달라질 것도 같았다. 미유키는 끄덕이면서도 다음에 찍자며 얼버무렸다. 이미 우승도, 졸업식도 지나온 우리는 어느 순간을 담아야 의미가 있는 걸까. 졸업앨범조차 어딨는지, 있기는 있는 건지 가물가물했다. 모으는 건 경기 사진들 뿐이다. 미유키는 제 컴퓨터에 스크랩 된 후루야의 기사들을 떠올렸다. 미유키에게 사진첩이랄 것은 그 정도였다. 생각 날 때마다 돌려보던 영상 클립들에서는 후루야의 베스트 피칭이 슬로비디오로 재생되었다.

사진을 찍자고 조르던 바로 그 얼굴을 찍어뒀어야 했다. 해 줄 거냐고 묻던 그 맹랑한 표정이나, 알면서도 모른 척 끄덕여주던 후루야를 그렇게라도 남겨둘 수 있었다면. 연인인데도 다른 게 없지 않을까 항상 고민하던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영화를 보고, 불꽃축제를 가는 게 두 사람을 연인으로 만들어주었던 게 아닌 것처럼 무엇을 하든 그 때의 후루야는 미유키의 눈에만 보이는 후루야였을 것이다.
후루야의 사진이라면 지금도 거의 매일같이 보고 있었다. 미유키의 북마크에 <새 폴더> 밑의 주소들은 꾸준히 불어났다. 완투승, 연속 탈삼진, 최고구속 경신...... 마운드에 서서 미트를 노려보는 후루야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실망시키지 말아달라던 그 번득이는 눈동자가 침착하게 미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칫솔을 하나 버리고 베개를 옷장 안에 넣고 나면 이 집에서 후루야가 살았던 흔적은 말끔하게 지워진다. 구질구질하게 부여잡고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워할 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북마크된 기사 속의 후루야만 보면 그라운드 밖의 후루야가 어땠는지 희미해지곤 했다. 사진을 남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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