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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일을 해도 도박판에서 하냐면요.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기사였거든요. 예 타짜요. 두 분이 저를 번갈아 업고 하우스 다녔어요. 그 때는 산 중턱에 기사들 고용해서 쓰는 대형 하우스가 떡하니 있었잖아요. 채정안 노래 임창정 노래 나오고. 예 그거. 슬픈 혼잣말이 임창정 노래 맞죠. (……) 부모님 돌아가시니까 대책이 없었어요. 나고 자란 장소가 화투패 위였는데. (……) 아. 도박요. 저 못해요. 누나들 모르시죠 저 실화판에서도 털려요. 그냥 지금처럼 운전하고 박카스 뛰고 장소 물어오는 게 편한데.


 주부들은 늘 남의 인생사 듣는 걸 좋아했다. 도시 외곽을 돌며 판을 찾아가는 동안 재민에게 이런저런 얘깃거리를 요구하기 일쑤였다. 얘야 운전하는 아가야 입 열어 봐라. 심심하다. 드라이브가 지루하니 떠들어 봐라. 겨우 이십오 년 살았을 뿐이라 짜낼 인생도 없는데. 운전대를 잡은 재민은 항상 같은 래퍼토리를 반복하고 항상 같은 동정을 받았다. 주부들은 드라마 보듯 일률적인 감상을 뱉었다. 부모란 양반들이 노릇을 잘못했네. 어린 애가 고생이 많네.


 하하 씨발 재민은 약간 웃겼다. 남말처럼 느껴지지가 않아서였다. 누나들도 어린 자식새끼 한둘쯤 집에 버려두고 도박하러 다니잖아요. 걔네 커서 저처럼 될걸요. 그게 진짜 고생이지 제가 무슨 고생이에요. 설마 제 말 믿으셨나요 다 개뻥이야. 실소가 울대까지 치밀었다. 고객들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닥쳤다. 나재민은 스무 살 이후의 삶을 쭉 더럽게 살았으나 사랑하는 고객 여러분들과 사랑하는 애인 앞에서는 얌전한 어린양이 된다.




 말살패 上




 “제노야. 이거, 이거 좀 들어. 어?”
 “아, 재민, 재민아. 잠깐만. 잠…….”
 “너 응석 피우면 맞추기 힘들어.”
 “나두 힘들어. 나두 힘드니까 내려가잖아 너가 세게 하니까……. 재민아, 아!”


 섹스가 원래 이렇게 전쟁인가. 재민은 이를 갈았다. 자세가 자꾸 흐트러졌다. 강단을 잃고 내려가는 제노의 엉덩이 탓이었다. 이거 들어, 부탁하면서 하얀 살갗을 내리쳐도 결과는 시원찮았다. 제노는 베개 위로 고개를 박은 채 계속 늘어졌다. 뒤로 하자고 조른 게 누군데 자세를 못 잡아. 재민은 결국 제노를 다시 뒤집었다. 빨개진 얼굴이 드러났다. 내내 베개에 눌려 있던 터라 호흡이 엉망이었다. 아. 아흐. 재민아. 흐. 입가로 침이 흘렀다. 잡아달란 듯 제노가 손을 뻗었다. 기꺼이 응하며 재민은 허리짓의 속도를 높였다. 어떡해 아아 좋아. 여기 좋아? 응 좋아……. 더 좋은 데 있어? 없어 없어 거기가 좋아. 그리고 곧 대화가 멎었다. 사정은 거의 동시였다. 제노가 허벅지를 덜덜 떨었다. 재민은 참았던 숨을 터트리며 제노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뜨끈한 콘돔을 당겨 빼고 대충 처리했다. 제노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헐떡였다.


 “제노 먼저 씻을래?”


 재민이 물었다.


 “응 그래도 돼?”
 “같이 씻어도 되고.”
 “같이 씻는 거는. 부끄러워.”
 “뭐가 부끄러워. 먼저 씻어 그럼.”


 고마워. 코를 훌쩍이며 제노가 일어섰다. 왠지 휘청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재민은 욕실까지 제노를 반쯤 운반해서 넣어줬다. 고마워. 제노가 재차 고맙댔다. 맹한 인사를 연달아 들으니 뒷머리가 가려웠다. 재민은 대답 없이 욕실 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왔다. 웽웽. 로봇 청소기가 돌아다녔다. 혼자 대가리를 저기 박았다 여기 박았다 헤매는 중이었다. 재민은 청소기의 전원을 껐다. 제노 밟고 넘어질라.


 “재민아.”


 별안간 욕실에서 제노가 호출했다. 어 왜 수건 없어? 재민이 외쳐 물었다. 걸음은 미리 빨래건조대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소나무분재연구소 30주년 기념식. 해운대연합 총회식. 색만 다른 홍보용 수건들 중 하나를 골라 집었다. 침묵하던 제노가 작게 말했다 같이 씻을래? 생각해보니까 같이 씻구 싶어서. 미워할 수 없는 변덕이었다. 재민은 성큼성큼 욕실로 들어섰다. 뿌옇게 서린 김을 헤치고 샤워부스를 열었다. 제노가 팔을 벌려 안겨왔다.


 “이제노 왜 애교 떨어.”
 “야 이게 애교야? 안아주는 게?”
 “너는 생긴 게 좀 애교야.”


 재민이 입을 맞췄다. 기류가 또 묘해졌다. 우리 언제 나가야 돼? 미간을 좁히며 제노가 물었다. 아홉 시. 한 시간 남았어. 대답하며 재민은 제노의 성기와 제 성기를 손아귀에 모아 그러쥐었다. 엄지로 선단을 비비자 즉각 반응이 터졌다. 아흐. 재민아아. 제노가 재민의 어깨에 뺨을 묻었다. 맞닿은 살갗 위로 물줄기가 흘렀다. 이거 우리 처음 했을 때 같아 그치……. 제노가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어 그치. 너 그 때 엄청 좋아했잖아. 재민이 놀렸다. 응, 응 좋았어. 엄청 좋았어. 제노는 부정하지 않고 허덕거렸다. 하여튼 귀여워서 문제였다.


 ◆


 재민의 부친인 폼생폼사 나 씨는 전국의 불법 도박장을 전전하던 선수였다. 선수, 라 해도 직업적인 뉘앙스는 아니고 판돈보다는 유희를 추구하는 욜로파이터에 가까웠다. 나 씨는 구라와 실화를 적당히 섞어 쳤다. 손가락이 부서져도 즐겜에 올인하는 진성 노름꾼이라 꽤 이름이 알려졌다. 노력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더니 공자의 말이 딱 옳은 모양새였다. 스타트는 막장으로 끊으면서 은근슬쩍 타이밍을 잡아 판을 독식했다. 두 배를 잃으면 네 배를 땄다. 금니를 잃으면 돌고 돌아 모가지를 얻었다. 결국 생의 말단에는 중소규모 조직과 연이 닿아서 굵은 영업장을 몇 차례 폈다. 폈는데. 이내 연기처럼 종적을 감췄다. 경찰과 엮였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찰이 나 씨네 조직의 뿌리를 잡기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고, 그런데 나 씨는 의리를 이유로 거절한 후 도박판을 떠났다고.

 그의 종적 끝에 있는 외동아들이 바로 나재민이었다. 재민은 회사원이리라 짐작했던 제 아버지가 도박꾼이란 사실을 고삼 때 알았다. 어머니는요. 돌아가셨다면서요. 아니다. 네 어머니는 큰돈 챙겨 해외로 나갔어. 러시아에서 호의호식 중이다. 가끔 엽서가 와. 황당한 현실을 털어놓는 부친의 얼굴은 담담했다. 너무 담담해서 차라리 나 씨네 트루먼쇼 같았다.
 골몰한 후 재민은 결론지었다. 우리 집안. 미친 새끼들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친도 러시아행을 밟았다. 제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조직이며 영업장 따위의 정보만을 남긴 채였다. 눈깔이 돌았다. 도박 정신 제대로인 나의 아버지. 본인이 조승우인 줄 아는 나의 미친 아버지. 그러나 수가 없었다. 제 이름이 나욜로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재민은 부친이 축적한 재산을 챙겨 부산의 도박조직으로 향했다. 새파랗게 어린 낯짝을 괜히 자랑 삼아 들이밀었다. 저 나 씨네 아들인데요. 기억하시죠 평발에 왼손 약지랑 애지 박살났고 어금니도 없고 겁대가리도 없는 인간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요 아 왜 눈물이 나지……. 말끝을 흐리니 일이 쉬웠다. 불쌍한 척 가난한 척 외톨이인 척을 전시하면 살아남기가 편했다. 재민은 금세 말단 자리를 얻었다. 깡을 테스트한다며 이틀을 내리 처맞았지만 폼생폼사 나 씨네 아들이란 말이 퍼져서인지 강도는 약했다.

 조직의 대외적인 상호는 <한국소나무분재연구소>. 해운대구 반송동의 육 층짜리 건물을 썼다. 일 층은 배달 전문 중국집에 세를 줬고 꼭대기층은 말단들 기숙사로 사용했다. 하우스장은 은퇴한 타짜였는데 면다구리가 나서 곤란하다며 자주 자리를 비웠다. 바지사장이었다. 굵직한 일거리는 주로 총책이라 불리는 숏컷 여자가 도맡았다. 이름이 불명이라 다들 명이 누님, 하거나 그냥 누님, 하고 호출했다.

 하우스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한국소나무분재연구소는 말뚝 박아 영업하는 대형식 운영법을 지양했다. 본거지를 털리면 즉시 대가리부터 막내까지 줄줄이 잡혀 들어간단 이유였다. 장사는 외진 지역을 직접 찾아가 단기적으로 벌였다. 깔끔히 치고 빠지는 식이었다. 칩 대신 쿠폰을 찍어 제주 펜션을 찾는 일도 잦았다.
 재민은 주로 발각률이 낮고 판돈이 시시한 일회성 영업장에 투입됐다. 한동안은 경상남도 마산이 무대였다. 자유무역지역이 자리한 회원구의 낡은 골목에는 버려진 식당이며 단독주택이 많았다. 재민은 선배들과 함께 장소를 물색하고 유동인구를 파악했다. 어디든 빼곡하게 조사했다. 문방구 내부의 쪽방. 백반집 부엌. 금은방. 처분 안내장이 붙은 철물점. 그러다 장소가 확정되면 대충 리모델링을 떴다. 테이블을 들이고 전등을 설치하고 암막천과 판자들을 구해 최소한의 환기구를 제외한 구멍을 막았다. 이후는 즉각 영업 개시였다. 재민은 도박쟁이들을 승합차로 보필해 입퇴장을 도왔다. 박카스질도 했다. 박카스질. 곧 잔심부름을 뜻했다. 커피며 라면이며 음료들을 팔고, 판돈 출금을 돕고, 하우스 청소하고, 타임비 걷고. 그런 잡무꾼을 뭉뚱그려 박카스라 일컫는 거였다. 단골들은 재민을 더러 나나라고 불렀다. 나나야 요구르트. 예 만원요. 나나야 커피. 만원요. 나나야 라면. 이만원이요 만원 추가하심 냉라면도 돼요. 심부름값은 만원 내지 이만원이었다. 판돈이 만원 단위니까 당연했다.

 물론 하우스 자릿세나 박카스 이용비만으로는 돈자루가 원활히 회전하질 않았다. 이 바닥이 그랬다. 세상 물정 모르는 즐겜맨들한테는 특히 가혹했다. 영업장을 한 번 차릴 때마다 보통은 사기도박 설계판도 두어 테이블씩 짜여졌다. 미리 섭외해둔 타짜들이 도박에 갓 발을 들인 호구를 낚아 밑천을 뜯는 작업이었다. 사장님 잘 치신다, 못 당하겠네요. 비위를 맞춰 올인을 유도한 후 역습해서 빤스만 남기고 전재산을 털었다. 어쩌겠는가. 누런 빤스의 호구는 울며 떠나는 것이다 엉엉. 박카스 나재민은 담담히 배웅하는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장사는 잽싸게 막을 내린다. 하우스와 타짜들은 수익을 나눠 갖고 다음 호구를 찾아 지역을 옮긴다.

 그런가 하면 하우스가 역습을 맞는 일도 있었다. 간혹 일반 고객 혹은 호구로 위장한 개인 단위 타짜들이 하우스의 밑천을 긁으러 몰래 출두하기 때문이었다. 드문 일이랬으나 재민은 취직 일주일만에 겪었다. 마산, 신비의 도시. 호구 데려다 수술 완료했더니 이튿날 수술비가 몽땅 털리는 등가교환의 도시. 어리숙한 눈빛으로 포커를 치던 고객님이 막타에 판돈을 독식하고 휭 빠져나갈 줄이야. 초짜의 탈을 쓴 타짜였을 줄이야. 총책은 혀를 찼다. 그러나 침착을 유지했다. 잃었을 땐 다시 따면 된댔다. 말을 증명하듯 고용한 타짜들이 새 호구를 낚아 빤스를 벗겼다. 마산점 영업은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너 잡일만 하니까 질리지 않냐. 선수로 키워줘? 해운대로 돌아오며 총책이 물었다.
 아니요. 평생 잡일만 하고 싶은데요. 타짜 돼서 뭐 합니까 아버지처럼 어금니만 빠지지. 재민은 거절했다.

 다음 영업은 강원도였다. 속초와 고성을 오갔다. 오피스텔, 빈집, 폐농가. 한참 외곽이라 발각 위험이 적으니 판돈이 커졌다. 수십을 모아 타임비부터 걷었다. 구식 아도사끼를 후딱 돌리고 단속 낌새가 보이기 전에 해산했다. 주 고객은 중년의 농민이나 주부였다. 어리고 잘생긴 나재민은 종종 관심을 받았다. 아들 생각이 난다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이가 여럿이었다. 솔직히 무념했으나 재민은 대강 말을 맞췄다. 고맙습니다. 하하 제가 이런 데서 예쁨을 다 받구 어떡하나. (진짜 어떡하냐. 이 한심한 인간들을.)
 다음은 전라남도 나주의 혁신도시. 한적한 타임이라 설거지 중이었는데 중년 여자 셋이 재민을 끌어 판에 앉혔다. 로우바둑이 테이블이었다. 누나들 저는 말단 박카스예요. 이러시면 마음 아파요. 호구 잡으실 거잖아요. 메뉴얼을 따라 거부했지만 여자들은 막무가내였다. 돈을 빌려주고 백지로 칠 테니 상대를 해달랬다. 재민은 하릴없이 패를 받았다. 영업장 분위기를 살피던 선배가 눈짓으로 물었다. 너 왜 거기 끼었냐. 재민도 눈짓으로 대답했다. 그러게요. 기숙사 동료들끼리 야식을 걸어 포커를 두는 일은 자주 있었다. 허나 고객들 판에 앉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입장이 영 찜찜했다. 재민은 눈깔을 내려 베팅했다. 느슨하게 진행되는 게임이었다. 여자들은 저희만 아는 얘기를 떠들었다. 누구네 커피숍이 아예 망했다든지. 누구네 딸이 항공사엘 취직했다든지. 재민은 자꾸 거지패를 만졌다. 잘 맞춰야 4베이스 정도였다. 대가리 가동시켜 저녁까지 승부를 둬도 메이드가 쉽게 안 떴다. 2345로 5탑, 승리라 믿었는데 맞은편에 엠비씨초가 있어서 망했다. A24 베이스, 살짝 쫄았더니 기색을 읽었는지 판돈이 형편없어졌다. 다이를 외치면 필연적으로 개패가 튀어나와 쓸었다. 이거 백지판 맞나. 의심이 치켜드는 순간 갑자기 손안에 퍼펙트가 잡혔다. 역시 놀려먹는 거였다. 구렁이 같은 도박꾼들. 웃길 노릇이었다. 재민은 서글서글한 얼굴로 대처하며 털고 일어섰다. 누나들 심심하구나 아들뻘 데려다 장난질 하실 만큼. 제가 라면 좀 끓여드릴게요.
 다음은 전라북도 고창. 절정일 때 단속이 날려서 떠넘기고 튀었다. 그 다음은 충청남도 서산. 폐기된 비닐하우스의 뼈대를 주워 개조하니 쓸만했다. 그 다음은 경상북도 예천. 사장님이 미쳤다는 폐업정리 신발가게의 뒷방을 임대해 호구를 수술했다. 그 다음은 전북 영광, 충북 옥천, 경남 하동, 강원 영월, 제주, 서울, 제주, 부산, 서울……. 꼬박 삼 년간 재민은 도박으로 국토대장정을 조졌다. 막내를 탈출하고 아랫사람이 생기고 기숙사 퇴소의 자유가 주어졌다. 아무렴. 존나 피곤했다.

 제노를 만난 건 초봄이었다. 장소를 경기도로 옮겼을 때였다. 수원의 어두컴컴한 원룸촌에 자리를 박고 소수정예의 멤버를 참여시켜 영업을 돌리던 중이었다. 거창하게 설명해봤자 결국 사기판이었지만. 고용한 기사들이 섞여 있었고 잘 꼬드긴 호구도 있었다. 호구는 직업이 교수랬다. 기사들은 주부라며 신원을 속였다. 게임은 도리짓고땡. 흐름이 뻔했다. 도리짓고땡은 설계하기에 가장 적격인 방식이었다. 호구로서는 오장육부나 사수하면 다행일 거였다.

 뭐든 늘 재민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재민은 제 업무만 했다. 종이컵들을 치우고 컵라면을 끓였다. 에이드 만들고 분리수거를 했다. 재민아 장 봐와라. 예. 나나야 여기 컨디션 두 병. 예 컨디션이요. 동네 조용한가 살피고 와라. 예 잠바 아무거나 입을게요. 얼핏 맹숭맹숭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전력의 맹탕은 아니었다. 공기가 예민했다. 호구를 털자. 껍질을 벗겨먹어 얼른 정리하자. 다들 눈빛을 교환하며 양상을 읽고 있었다. 재민은 그냥, 커피나 탔다.

 며칠이 지났다. 마침내 호구가 설계에 넘어가 전재산을 꼴아박은 날이었다. 호구의 아들이 개털 된 아버지를 모시러 친히 걸음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이. 이제노였다. 제노는 흰 과잠바를 걸친 채 말간 낯으로 입장했다. 칙칙한 도박쟁이들과는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척 보기에도 곱게 자란 도련님이었다. 재민은 믹스커피를 내려놨다. 하우스 식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제노가 아버지를 부축해 업었다. 이제 집 가요 제발. 입술을 달싹여 처연한 부탁을 읊는데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역겨움을 견디는 표정이었다. 핏줄의 의무를 견디는 표정이었고 제게 할당된 생을 견디는 표정이었다.
 왜 견디나 그걸. 일순 뭔가가 나재민의 불씨를 당겼다. 왜 견디냐고 그걸. 천성이 무심한 재민으로서는 처음 겪는 격동이었다.

 재민은 그만 참견질을 해버렸다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판을 정리하던 선배들과 상사들과 기사들과 다찌들과 호구와 이제노가 다 놀랐다.


 ‘나나야.’


 총책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충고했다. 헛짓거리 하지 마라.


 ‘불쌍한데요. 뒤지게 털려갖고. 택시비도 없을걸요.’


 재민은 한결 시큰둥한 낯을 꾸며냈다. 나재민의 무색은 가히 재능이라 십여 년을 구른 기사들도 꿰뚫질 못했다.
 제노와 눈이 마주쳤다. 재민은 오래 응시했다. 제노가 먼저 피했다.

 이윽고 허락이 떨어졌다. 재민은 멀리 주차해둔 승합차에 제노와 제노의 부친을 태웠다. 어느덧 일출 무렵이었다. 부친은 뒷좌석을 차지하고 누워 곧장 잠들었다. 밤새 노름질을 해댔으니 게다가 살림을 모두 날렸으니 현기증에 졸릴 법도 했다. 넌 내 옆에 앉아. 재민이 턱짓했다. 제노는 고집 피우지 않았다.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주소 불러봐.’


 재민은 후드를 덮어쓴 채 시동을 걸었다.


 ‘수원 아니고 서울 살아.’
 ‘알았으니까 불러.’
 ‘마포구 하중동 101. ……지번이야.’


 이름도 나이도 모르면서 오로지 눈치로만 반말이 오갔다. 재민은 히터를 켰다. 음습한 차내가 데워지기 시작했다.

 골목을 벗어나는 내내 제노는 재민의 얼굴을 흘긋거렸다. 고작해야 스물을 겨우 넘겼을 법한 또래가 도박장 시다짓을 하니 신기한 모양이었다. 딴에는 몰래 보려고 노력하는 듯했으나 뻔히 티가 났다. 왜 쥐새끼처럼 훔쳐보는데, 평소였다면 쉽게 나갔을 소리가 유달리 내키질 않았다. 대신 재민은 물었다. 이름이 뭐냐고. 제노는 웅얼웅얼 대답했다. 이. 제노. 꼭 희극이나 소설에 쓰이는 예명 같았다.

 도로는 한적했다. 둘은 별 것 아닌 얘기들을 했다. 정말로 별 것 아닌. 너무 시시해서 해가 완전히 뜨고 새벽안개가 걷힐 때쯤엔 서먹해질 얘기들. 너는 이름이 뭐야. 나재민. 그래서 나나라고 불렀구나. 어 뭐, 너는 대학 다니냐. 응 기초과학과야 2학년. 멋지네 과학. 나도 멋있을 줄 알았어 배우니까 어렵기만 해. 근데 너희 집 좆됐는데 존나 태연하다 너. 응 전에도 이랬다가 아버지가 다시 따와서 구사일생했거든. 아버지 미친 새끼시네. 좀 많이 미치셨지. ……. ……. 재민아 너희 아버지는 무슨 일 하셔? 타짜인데 나 버리고 블라디보스톡으로 날랐어. 아 미안해 그럼 어머니랑 지내는 거야? 아니 어머니도 날랐어. 그렇구나 미안해. 뭐가 미안하대 난 너희 아버지한테 미친 새끼라고 했는데. 그건 사실이니까 괜찮아 재민아. 우리 부모님 튄 것도 사실이야 괜찮아.

 잠깐 정적이었다. 제노는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다. 일출과 더불어 서울이 소란해지는 중이었다. 어허헉. 허헉. 뒷자석에서 부친이 흐느꼈다. 잠결이었으나 넋이 단단히 빠진 목소리였다.

 재민은 혀를 찼다. 사고라도 났는지 성모병원 근처가 정체로 꽉 잡혀 있었다. 마포나 양화 쪽을 탈 걸 그랬나. 중얼거리니 제노가 물었다. 너 서울 출신이야?


 ‘호적은 청라. 사무실은 해운대. 서울 살아 본 적 없어.’
 ‘어떻게 잘 알어 근데?’
 ‘…….’
 ‘…….’
 ‘일이니까.’


 제노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하긴 도박장으로 사람 나르는 게 일이라니 개같네. 재민은 자평했다. 반포대교를 건너자 주홍색 햇빛이 창문틀을 따라 번졌다. 문득 제노가 차창에 머리를 쿵 박더니 한숨을 쉬었다. 자포자기한 기색이었다. 재민은 생각했다 존나 안쓰럽고 귀엽다고. 쓰레기다운 감상이었다.

 강변북로를 지나 마포구 하중동 101에 도착했다. 한강밤섬자이아파트. 맞은편은 래미안이었고 일대 건물들은 낮았다. 재민은 근처의 돼지갈비집 앞에 차를 세웠다. 한심한 혈육을 부축하며 제노가 하차했다. 재민은 제노의 과잠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제 전화번호를 찍은 후 되돌려줬다. 전화해. 피처폰이라 카톡은 없어.


 ‘……너 지금 작업 거는 거야?’


 제노가 미간을 좁혔다. 재민은 실소를 흘렸다.


 ‘재민아. 나 파산했어.’
 ‘어 나도 봤어 너희 아빠 오야 한 번 못 잡고 밑천 긁히는 거.’
 ‘…….’
 ‘난 속물 아니야. 살려줄게 연락해.’


 제노는 얼이 빠져 있었다. 재민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길게 빼어 조수석 문을 닫았다.

 왔던 길 대신 양화대교를 골라 탔다. 출근 시간대라 적잖이 혼잡했다. 빽빽한 차들과 버스들과 인간들이 대교 위를 채우고 있었다. 재민은 히터를 껐다. 담뱃불을 붙였다. 세 개비를 천천히 띄엄띄엄 피우자 겨우 길이 뚫렸다. 대교 남단을 지나는데 총책한테서 전화가 왔다. 혹시 모를 단속에 대비해 판을 시흥시로 옮겨야겠다는 알림이었다. 시흥 어디요. 목감이라고 숨기 좋은 동네 있어 주소는 문자 띄울 테니까 확인해라. 짧은 통화가 종료됐다. 재민은 담배를 지져 끄며 핸들을 꺾었다.

 차창에 머리를 박던 제노가 떠올랐다. 울음을 누르는 얼굴.
 계속 떠올랐다.


 ◆


 일주일 뒤 제노가 전화를 걸었을 때 재민은 시흥시 조남동의 낡은 빌라에서 컵라면 무더기를 치우는 중이었다. 마무리 작업이었다. 경기 쪽 일을 정리하고 슬슬 부산으로 복귀해야 했다. 구석에 떨어진 화투패가 없나 샅샅이 살피는데 뒷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잉. 지잉. 낯선 숫자의 나열들. 발신인이 뻔했다. 본디라면 경계해야 했지만 재민은 웃으며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의 단단한 목소리가 인사도 없이 물었다. 너 나 데리고 살 수 있어?

 재민은 나이 많은 막내에게 청소를 떠넘긴 후 한강밤섬자이아파트로 달려갔다. 제노는 야상 점퍼를 걸친 채 백팩을 메고 있었다. 보기 좋았던 얼굴이 퉁퉁 부어 꼴같잖았다. 아. 얘 진짜. 측은해서 환장하겠네. 재민은 제노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 좁은 골목으로 장소를 옮겼다. 제노의 스마트폰을 폐기하기 위해서였다.

 조그만 갤럭시를 박살낸 후 바퀴로 여러 차례 짓밟던 도중이었다. 제노가 덜컥 입을 맞추고 올라탔다. 이럴 줄 알았다. 재민은 승합차의 시동을 껐다. 급한 섹스가 시작됐다. 윗옷을 들춰 목이며 가슴께를 애무하는 내내 제노는 칭얼거렸다. 재민아. 네 생각이 났어. 아버지가 미쳐서. 미친 새끼라서. 집에는 남은 것도 없고. 네가 낫겠다 싶었어. 너랑 있는 게 낫겠다고. 너는.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똑똑하고. 아무것도 아니면서 착한 척 하고. 나도 미쳤나봐 네 생각이 났어. 재민아. 네 생각이 났어. 논리가 파괴된 말들이 축축한 입술을 탔다. 제노는 정신이 나가 있었다. 가여웠다.

 엉겨 붙는 몸을 달래며 재민은 의문했다. 왜 가엾지. 더 바닥인 인간들을 수없이 봐왔는데. 경남 사천, 아내 수술비를 마련하다가 결국 장기 뜯은 학원 강사. 전북 순창, 같이 지내 달라 애원하던 빚쟁이 누나. 서귀포시, 불치병에 걸린 제주대학생. 기타 등등. 재민은 그들을 무심히 내쳤었다. 지금은 어디서 죽었는지 잡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노는 왜. 이제노만 왜 가엾지. 이제노만 불쌍하지. 이제노만 살려주고 싶지.

 처음이야? 물으니 제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 없인 못 넣어. 재민은 얼렀다. 그럼 어떡해? 너랑 뭐라도 하고 싶어. 진심이야. 제노가 부탁했다. 의도 없이 사람을 발정시키는 말이었다. 이 도련님아. 불쌍하고 귀여운 제노야. 속으로만 혀를 차며 재민은 제노의 바지를 벗겼다. 제 바지도 벗었다. 부푼 성기들을 손아귀로 모아 잡았다. 주무르며 흔들자 제노가 경련처럼 엉덩이를 떨었다. 재민, 재민아. 아. 재민아. 생경한 감각에 놀란 듯했다. 재민은 신경쓰지 않고 움직임을 이었다.


 ‘이거, 이거 이상해. 재민아 이상해…….’
 ‘괜찮아. 괜찮아.’


 아아. 제노가 흐느꼈다. 속수무책의 낯이었다. 지탱할 곳 없는 얇은 몸체가 휘청거렸다.


 ‘원래, 원래 이런 거야? 재민아. 원래 이래?’
 ‘어 원래 좋은 거. 왜. 퓨즈 끊겨?’
 ‘응, 너무……. 어떡해. 아, 흑. 나 너무…….’
 ‘…….’
 ‘어떡해 나올 것 같아 나올 것 같아…….’


 말들이 노골적이고 또 직선적이라 꿈같았다. 제노가 허리를 꺾었다. 재민은 남는 손을 뻗어 제노의 회음부로 가져갔다. 젖은 살갗을 거칠게 매만지고 쓸었다. 그러다 입구 주변을 지분대니 교성이 높아졌다. 희열에의 면역이라곤 한 톨도 없는 몸이었다. 머잖아 제노가 사정했다. 재민은 호흡을 몰아쉬는 제노의 아랫배에 제 성기를 비비며 쌌다. 제노가 침을 삼켰다. 속삭였다. 이런 느낌일 줄 몰랐어. 좋을 줄 몰랐어.

 차내가 고요해졌다. 둘은 한참 숨을 골랐다. 문득 제노가 재민의 품으로 무너지듯 기댔다. 제노야 아직 자면 안 돼. 재민이 당부했다. 응. 제노는 피곤한 눈을 겨우 고쳐 뜨고 수긍했다. 재민은 제노의 백팩을 뒤졌다. 캡이 뜯긴 물티슈가 잡혔다. 흔적들을 닦고 제노의 옷을 입혀줬다. 제노의 백팩에는 별 짐이 없었다. 바지 두 벌과 후드 한 벌과 양말 세 켤레 속옷 다섯 벌이 끝이었다. 앞주머니에는 물티슈. 옆주머니에는 주민등록증과 아버지의 체크카드.


 ‘이거 버려.’


 재민은 체크카드를 집어 건넸다.
 제노는 망설이지 않고 카드를 반으로 꺾었다.


 ◆


 어. 그렇게 해 제노야. 그렇게, 좀 견디지 말고 살아.


 ◆


 제노를 챙겨 부산으로 돌아오자마자 재민은 기숙사를 퇴소했다. 쥐새끼 주워서 살림 차리는 거 보라며 선배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재민은 무시했다. 화가 안 났다 사실이었으니까. 재민은 제노와 살림을 차렸다. 부친이 남긴 재산과 그간 개같이 벌어먹은 급여를 합쳐 오피스텔을 샀다. 특정한 거처가 생기면 훗날 골로 가기 쉽다는 건 잘 알았다. 근데 좆까고 계약했다. 아무래도 아버지한테서 욜로 기질을 물려받은 것 같았다.

 공사 친 호구의 직계비속을 거뒀으니 값을 치러야 했다. 식구라도 자비는 없었다. 재민은 삼 일간 처맞았다. 손톱을 세 개 뽑히고서 지하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어디 갔었어 재민아. 오피스텔 문을 여니 제노가 달려들어 걱정했다. 빠진 손톱에 일일이 데일밴드도 붙여 줬다. 꼬마버스 타요 밴드였다. 취향 존나……. 귀엽군. 재민은 왼손 검지 중지 약지에 꼬마버스 타요를 부착한 채 제노와 살을 섞었다. 제노는 시트를 긁으며 밤새 앓았다. 애초부터 자극에 약하도록 빚어진 살갗이었다. 눅진하고 유연했다. 끌어안아 평생 잠들어도 모를 듯했다.

 이튿날의 출근길에 타요를 목격한 총책이 물었다. 나나야. 너 손톱 깼다고 시위하는 거냐?

 그럴리가요, 대답하는데 웃음이 실실 샜다.
 이런 또라이를 봤나. 재민은 결론지었다. 우리 집안. 역시 미친 새끼들뿐이다.


 ◆


 나재민이 아버지를 닮아 미친 새끼가 됐듯이 이제노도 아버지를 닮아 패를 쥐었다. 차이점은 제노가 제 핏줄에겐 없는 재능을 가졌다는 거였다. 세븐오디, 짓고땡, 식스투컷, 바둑이. 전적으로 타고난 센스에 의지해야 하는 베팅법까지. 하우스 게임은 말이 게임이지 실상 확률이 구린 운내기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제노는 제법 정직하게 치면서 승률이 높았다.

 시작은 밍밍했다. 따지자면 재민의 탓이었다. 어리고 맹랑해서 테이블에 자주 붙잡히는 나재민의 탓.
 재민아 혼자 있으니까 너무 심심해. 제노는 텅 빈 집이 외롭다며 몇 차례 재민을 따라나서 하우스 주방엘 박혀 있었다. 에이드 타는 걸 거들거나 휴지통을 비웠다. 다찌들 편의를 위해 외투 보관함 운영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동안 재민은 잔심부름이며 청소며 서빙을 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진 시기라 일이 바빴다. 바빴는데. 심술궂고 나사가 빠진 고객들은 열에 두어 번 정도 재민을 불러앉히려 들었다. 박카스야 여기 와서 앉아 봐. 힘들지 나나 인마. 게임 좀 하고 쉬어. 재민은 에둘러 거절하느라 대가리를 굴렸다. 누나들 죄송해요 형들 죄송해요 저 농땡이 피우면 꼬장한테 혼나요. 아시면서 섭섭하게 이러시는 거 맞죠. (발가락 닦고 집 가세요.)

 처음에 제노는 말끄러미 쳐다만 봤다. 개진상들의 향연을. 제 아버지도 저랬을까 싶은 눈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나나 대신 상대해드려두 될까요. 나나가…… 어…… 바쁘니까요. 제가 도와주고 싶어서요. 진상들은 아 대환영이라며 제노를 끌어들였다. 어리숙한 제노에게 오지랖을 부려 이런저런 룰을 알려주고 족보를 알려주고 야매 기술을 전파했다. 제노는 금세 흡수했다. 마치 제 길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셔플을 구사하기까지 딱 일주일이 걸렸다. 한 달 후 기술 없이 풀하우스를 띄워 판돈을 쓸었다. 제 부친을 파산시켰던 짓고땡으로 테이블을 독식해 천재 소릴 들었다.

 나재민도 놀랐다. 설거지하다 인기척에 돌아봤더니 애인이 지폐 뭉치를 쥐고 있어서. 재민아 이거, 내가 땄는데 어디 놔둬야 되는지 모르겠어. 제노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재민은 정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긴 뭘 몰라 제노야. 네 주머니에 놔둬. 놔뒀다가 사고 싶은 거 사. 옷 예쁜 거 사입고 나한테 자랑해.
 그래서 제노는 예쁜 니트를 사입고 자랑했다.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총책은 태세를 바꿔 제노를 한국소나무분재연구소의 직원으로 채용했다. 밑천이 바닥나 망령처럼 하우스를 맴도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줬다. 돈이 없고 더 이상의 꽁지를 빌려 쓸 깜냥도 없으나 게임은 좀 더 하고픈 인간들. 그러니까 결딴난 초짜들을, 제노의 테이블에 앉혔다. 한 게임당 얼마의 특수 타임비를 걷어 몇 판 어울려주다 곱게 귀가시켰다. 제노의 매뉴얼은 두 가지. 제 고객이 최대한 박카스를 많이 찾도록 할 것. (재민이 돈 벌어야 하니까.) 적당히 져 주고 적당히 이길 것. (괜히 깽판 치면 재민이가 고생이니까.)

 내가 속았어. 기껏 성실한 서방 물었는데 얘가 선수를 뛴다네. 이러기냐 이제노. 재민은 짐짓 속상한 척 칭얼댔다. 사실은 이제노가 조승우급 타짜가 되든 도박에 미쳐 사람을 담그든, 별로, 무념했다. 제가 하겠다면 내버려두거나 차라리 동참할 셈이었다. 그러라고, 뭐든 네 좆대로 살라고 제노를 데려온 거였으니 방임해야 했다.
 재민아 그게 아니라. 화났어? 우리 같이 일하면 좋잖아. 너는 항상 일하는데 나는 노는 거 나쁜놈 같아. 제노는 미안한 얼굴로 쩔쩔맸다. 절대 업무 외로 돈을 걸고 치지 않겠다며 손가락 도장도 찍었다. 알잖아 재민아 나 절제 못하는 멍청이 아니야. 존나 객관화가 잘 된 말까지 했다. 그게 석 달 전의 얘기였다. 제노는 그간 두 지역의 영업장을 돌았고 약속대로 말썽 없이 판돈을 지키며 월급을 받았다.

 재민은 그냥, 커피나 탔다. 패를 읽는 제노의 속눈썹을 종종 관망하면서. 제노는 주로 로우바둑이를 쳤다. 트럼프 네 장을 두고 승부를 따는 게임이었다. 무늬가 겹치지 않는 낮은 숫자의 카드들을 얻어야 유리하다. 땁. 투카. 하프요. 선생님 스틱이신가부다. 저 죽을게요. 선한 눈꼬리를 접어 호구를 달래는 이제노. 나재민과 시선이 얽힐 때마다 쑥쓰럽게 입술을 감쳐무는 이제노. 재민은 그 관망이 좋았다.

 자기야 여기 오로나민씨 타줘. 제노는 하우스 내에서 재민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자기야, 나나야, 두루뭉술한 호칭을 썼다. 그러다 침대로 장소를 옮기면 자기라고 불러 달래도 안 불렀다. 무조건 재민이었다. 재민아. 어떡해 재민아. 나 깊어 어떡해 재민아 재민아……. 선한 눈꼬리에 눈물을 단 이제노. 나재민과 시선이 얽힐 때마다 애타게 재촉하는 이제노. 자제력을 휘발시켰다. 재민은 급히 제노의 손을 당겨서 마디마디에 입술을 묻었다. 제노야 나 좋아? 응, 응 좋아. 좋아해. 애욕이 뚝뚝 고이는 즉답이 뇌를 절였다.

 아버지의 체크카드를 꺾어 접던 과거의 이제노는 없다. 없게 되었다. 마포구 하중동 101의 한강밤섬자이아파트도 기초과학과의 과잠바도 없다. 없게 되었다. 아무래도 반포대교의 새벽안개와 함께 증발한 모양이었다. 재민은 제 움직임에 맞춰 헐떡이는 제노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약간은 미안하고, 약간은 안타깝고. 그러나 역시 결국은 사랑스럽다고. 귀여운 이제노. 네가 잡을 패들은 풀하우스거나 퍼펙트겠지. 근데 나는 그게 바닥 족보인 개패라도 상관없어. 마지막 턴의 말살패라도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아. 재민은 오래 곱씹었다. 아름답게 위태롭던 서울의 이제노와 위태롭게 아름다운 나재민의 이제노를. 어느 쪽이든 숫제 탐났다. 가진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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