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체 ㅁㄴ







평가 기록 — 개체 M-06. 입소 연령 추정 6세. 전쟁고아.


신체 지표 평균. 공포 반응 높음. 고공 강하 과제 미수행.


훈련탑은 섬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철골 계단 아흔두 칸. 꼭대기 발판에서 바다까지 열두 미터. 교관이 호루라기를 불면 아이들은 한 명씩 발판 끝으로 걸어 나가 아래로 몸을 던졌다. 망설인 시간은 초 단위로 기록됐다. 삼 초를 넘기면 저녁이 없었다.


여덟 살의 6번은 발판 끝에서 사십 초를 서 있었다.


바람이 철골 사이를 지나며 휘파람 소리를 냈다. 아래 바다는 회색이었다. 교관이 시계를 보며 무언가를 적었다. 6번의 무릎이 제멋대로 떨렸다. 몸이 아래로 기울 때마다 발가락이 저절로 발판 모서리를 움켜쥐었다.


아래에서 첨벙, 소리가 났다. 먼저 뛰어내린 4번이 수면 위로 떠올라 탑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젖은 머리를 한 번 털고, 교관이 볼 수 없는 각도로 두 팔을 벌렸다.


입 모양이 보였다. 받아줄게.


6번은 뛰지 못했다. 사십일 초째에 교관이 6번의 뒷덜미를 잡아 계단 쪽으로 밀어냈다. 그날 6번은 저녁을 먹지 못했다.


밤에 막사의 철제 침대 위로 무언가가 굴러떨어졌다. 신문지에 싼 주먹밥 하나. 식당의 조리사 아주머니만 쓰는 신문지였다. 옆 침대에서 4번이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자는 척하는 등이 조용히 들썩였다.










*





평가 기록 — 개체 M-04. 입소 연령 추정 6세. 전쟁고아.




신체 지표 최상위. 전 과목 상위 2%. 결함 1건: 낙오 개체에 대한 자발적 회수 행동 반복. 교정 시도 4회, 효과 없음.


이름은 열 살 때 생겼다.


섬의 아이들에겐 번호가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훈련복 가슴팍에, 매일 아침 점호표에. 번호는 편리했다.

부르기 쉽고, 지우기 쉬웠다. 한 아이가 훈련 중에 돌아오지 않으면 점호표의 그 숫자에 줄이 그어졌다. 그게 다였다.


그해 겨울, 4번이 식당 뒤 쓰레기통에서 찢어진 책 한 권을 주워 왔다. 표지가 없고 절반이 뜯겨 나간, 낯선 이름들이 잔뜩 적힌 책이었다. 4번은 그걸 소등 후 담요 속에서 손전등으로 넘겼다.


"골라."

"뭘."

"이름."

4번이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거. 성빈."

"……무슨 뜻인데."

"몰라. 근데 너 같아."


그날부터 6번은 성빈이 되었다. 4번이 담요 속에서만 그 이름을 불렀다. 점호 때는 여전히 M-06이었다. 둘만 있을 때만, 둘만 아는 이름.


"너도 골라줘."


성빈은 오래 고민하다 책장이 찢겨 나간 자리 바로 위, 겨우 살아남은 이름 하나를 짚었다.


"성모."


4번이 그 이름을 입 속으로 굴려보았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웃었다. 이불이 들썩일 만큼, 소리 없이.


번호는 시설이 붙였고, 이름은 서로가 붙였다. 성빈은 그 차이를 오래 지나서야 말로 옮길 수 있었다. 번호는 지울 수 있었다. 이름은, 부르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지워지지 않았다.









◇








섬의 북쪽에는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 있었다.


창문이 없는 회색 건물. 교관들은 그곳을 본관이라고 불렀다. 열두 살 무렵, 둘은 본관 뒤편 배수로에 숨어 교관 둘이 담배를 피우며 하는 말을 들었다.


전쟁 끝나면 여기 어떻게 되냐. 다 지우겠지. 건물이고 서류고. 애들은. 애들도 서류잖아.


교관들이 웃었다. 담배 연기가 배수로 위로 흩어졌다. 성빈은 숨을 참고 있었다. 옆에서 성모가 성빈의 손을 찾아 쥐었다.


교관들이 가고 나서, 성모가 배수로 바닥의 젖은 흙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우리 서류래."

"……응."

"그럼 지워질 때 같이 지워지겠네. 같은 서랍에 있으니까."


성모는 그걸 농담처럼 말했다. 성빈은 대꾸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같이, 라는 말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


섬 앞바다에는 기뢰가 깔려 있었다. 바깥과 섬을 잇는 길은 보급선이 다니는 좁은 항로 하나뿐이었다. 시설의 아이들은 그걸 입소 첫 주에 배웠다. 도망치는 방법보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먼저.









*






평가 기록 — 개체 M-04, M-06. 만 19세 도달. 실전 배치 적격 판정. M-04: 섬 남부 해안 방어선 선봉. M-06: 섬 중앙 통신 거점. 페어 운용 권고 기각. 상호 의존도 기준치 초과.














마넨티아가 침략당한 지 삼 년째 되던 봄, 시설의 첫 기수가 실전에 나갔다.


전선이 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들이 지켜야 할 곳은 먼 국경이 아니라 자기들이 자란 섬이었다.


배치표가 게시판에 붙었다. 4번과 6번 사이에 굵은 줄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남부 해안과 중앙 언덕. 걸어서 사십 분.


"떨어뜨려 놨네."


뒤에서 성모가 말했다.


"우리가 같이 있으면 둘 다 망가진대. 서로 때문에 명령을 안 듣는대."

"……누가 그래."

"평가 기록."


성모가 웃었다. 이를 다 드러내고. 그 웃음이 성빈에게는 이상하게 아팠다. 시설이 성모에게서 끝내 고치지 못한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웃는 얼굴. 교관들은 그걸 정서 둔감이라고 적었다. 성빈은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





통신 거점은 언덕 꼭대기의 콘크리트 벙커였다.


헤드셋을 쓰면 섬 전체의 초소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정시마다 번호가 울렸다. 남1, 이상 없음. 남2, 이상 없음. 남3, 이상 없음. 남3이 성모의 초소였다.


첫 전투는 배치 열하루 만에 왔다.


새벽 네 시, 북쪽 바다에서 정찰정 세 척이 섬으로 들어왔다. 헤드셋 속이 순식간에 뒤엉켰다. 좌표, 고함, 사격 요청, 누군가의 이름이 아닌 번호. 성빈은 받아 적었다. 글자가 종이 밖으로 비뚤어졌다.


해가 뜰 무렵 정찰정은 물러갔다. 피해 보고 끝에 한 줄이 붙었다.


개체 M-04, 단독 회수 행동 개시.


성빈은 연필을 놓쳤다. 아직 적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해안으로, 낙오한 아이 하나를 찾겠다고.


두 시간 사십 분 뒤, 헤드셋으로 목소리가 들어왔다.


"남3. 이탈 개체 회수 완료. 생존."


규정대로의 보고였다. 짧고, 정확한. 성빈은 그 끝에 아주 작게 걸린 숨소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못 들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성빈은 허가 없이 사십 분을 걸어 남부 해안으로 갔다. 성모는 초소 뒤 바위에 앉아 있었다. 훈련복 소매에 남의 피가 말라 있었다.


"또 돌아갔어."

"교정 받으면 되지."

"성모야."


성빈이 그 이름을 불렀다. 담요 속이 아닌 곳에서, 소리 내어. 성모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왜 맨날 돌아가. 그러다 네가 안 돌아오면."

"그럼 네가 데리러 와."


낯선 목소리였다. 장난기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너는 나 두고 안 갈 거잖아. 그래서 나도 아무도 두고 못 가는 거야."


성빈은 대답하지 못했다. 바다가 저물었다. 피 냄새가 나는 어깨가 닿았다. 훈련탑 아래서 두 팔을 벌리던 열 살의 그 아이와 똑같은 어깨였다.








*






평가 기록 — 통신 거점, 야간 교신 로그 발췌 02:14 남3 → 거점. 비정규 호출. 내용: 기상 상태. 별이 많음. 02:15 거점 → 남3. 비정규 응답. 내용: 여기도.

비고: 개체 M-06, M-04 간 비인가 교신 반복 확인. 조치 보류. 현 전황상 통신 인원 교체 불가.









전쟁은 보름에 한 번씩, 조금씩 왔다. 그때마다 점호표의 번호에 줄이 그어졌다. 성빈은 그 줄을 무전으로 가장 먼저 들었다.




밤이면 정시 호출 사이로 남3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초소 뒤에 들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오늘 파도가 낮다고. 별이 많다고. 성빈은 매번 규정을 어기며 대답했다. 그 로그가 본관 어딘가에 쌓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름 끝, 그날 밤 남3의 정시 호출이 오지 않았다.
대신 남부 해안 전체가 한꺼번에 불붙었다. 정찰이 아니라 상륙이었다. 성빈은 헤드셋을 귀에 짓누르고 남3을 불렀다. 대답 대신 잡음이 돌아왔다. 금속을 긁는 것 같은, 아주 오래된 라디오 같은.


한 시간. 두 시간. 남1 후퇴. 남2 교신 두절. 남3 응답 없음.


성빈은 계속 불렀다. 교대 인원이 어깨를 잡았지만 헤드셋을 벗지 않았다. 남3, 남3. 그리고 송신 버튼에서 손을 뗀 채로,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한 번.


성모야.


네 시간 십일 분 뒤, 잡음이 찢어졌다.


"……거점. 여기 남3. 생존 둘. M-26 의식 없음."


성빈은 헤드셋을 쓴 채 책상 위로 이마를 떨어뜨렸다. 어깨가 흔들렸다. 열아홉 해 동안 교관 앞에서도, 훈련탑 꼭대기에서도 무너지지 않던 몸이었다.


헤드셋 너머로 규정에 없는 호출이 들어왔다.


"성빈아."


번호가 아니었다. 로그에 남을 걸 알면서, 성모는 그 이름을 무전에 실었다.


"……응."

"우냐."

"아니."


성모의 숨이 웃음처럼 새어 나왔다. 떨리고 있었다.


"나 무서웠어. 총보다, 무전 끊긴 동안 네 목소리 못 듣는 게."


성빈은 송신 버튼을 눌렀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도."


로그에는 두 줄로 남을 것이다. 비정규 호출, 비정규 응답. 내용 불명확. 그 두 줄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아무 서류에도 적히지 않을 것이다.


동이 틀 때까지 둘은 무전을 끄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숨소리만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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