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간 혐오 표현 주제 공모전


교환학생을 왔으면 배울 생각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한국말 잘 못한다는 말이면 다냐고. 진짜 재수없어. 중화 사상 있어서 그래. 쟤넨 아직도 지들이 최곤 줄 알아.

강의가 끝나고 가방에 책을 넣으며 들은 말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에 시선을 꽂으며 나갔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게 친구와 학식 메뉴를 고민했으며, 누군가는 저들의 말에 인정한다며 깔깔거렸다. 눈에 담기는 모든 장면이 이질적이었다. 지금 쟤들이 뱉은 문장이 나만 불쾌한 건가.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나 역시 책을 마저 가방에 넣고 대수롭지 않게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었고, 저 문장의 대상도 아니었으며, 굳이 끼어들 일도 아니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짧은 불쾌감을 지워 버리고 강의실 바깥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만난 상대에 짧게 탄식했다. 상대의 눈이 살짝 충혈돼 있었다. 당황한 나는 아무 말이나 뱉었다.

“아, 아직 안 갔어?”

죄 지은 사람마냥 목소리가 떨렸다. 얘는 교환학생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한국어를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그 애는 툭 치면 눈물을 떨굴 것 같은 표정을 하곤 나를 지나쳤다. 강의실로 들어가 자리를 뒤지더니 떨궈진 펜을 주워 뛰다시피 다시 나갔다. 그 애가 바닥에서 펜을 찾을 동안, 아까 걔를 향해 온갖 혐오를 뱉었던 애들은 입 싹 닫고 웃으며 이 강의실을 나섰다.

“…….”

순간 답답해져 한숨을 푹 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볼 걸 안 될 걸 본 기분. 오래 가지도 않을 같잖은 정의감이 나를 불쾌하게 했다.



-



걔도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과 애들과 밥도 먹고 웃기도 하며 소통하려 하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소통을 끊었다. 갑자기 날 세우는 태도에 대다수는 기가 차는 듯했으나 종내엔 무관심해졌으며, 몇몇은 술자리마다 걔 얘기를 꺼내며 뒷담화를 했다. 중국인들은 수준이 낮다, 국민성이 저급하다 주로 이런 이야기였는데 듣다 보니 의문이 생기는 거다. 그 애를 ‘중국인’이라는 세 글자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그 애가 살아온 이십 년이란 시간이 세 글자에 담길 수 있을까. 뭐, 난 이때도 침묵을 택했다.

그래서 지금 벌받는 건가.

“이번 팀플은 2인 1조 멘토 멘티 활동입니다.”

하필 또 2인 1조였다. 팀끼리 옆자리에 앉으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를 옮겼다. 서로를 알아가라며 인사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눈 꾹 감고 다시 입을 뗐다.

“…안녕.”

“…….”

“…니하오.”

걔는 여전히 무시로 일관했다. 나도 오기가 생겨 아무 말이나 뱉었다. 물론 한국어였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거 강아지 얘기부터 사는 곳까지 별 얘기를 다 했다. 그러자 걔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드디어 나를 쳐다봤다.

“别做作。” 가식 떨지 마.

“뭐라고?”

“你好烦。” 너 진짜 짜증 나.

“…이건 알아듣겠네.”

나도 이제 슬슬 짜증이 난다. 마음 같아선 팀플이고 뭐고 될 대로 돼라 하고 싶은데, 드랍 하기도 이미 늦었고, 나는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한숨을 푹 쉬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몇 초 간의 정적 뒤 고민하던 말을 뱉었다.

“나도 너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야. 팀플이니까 이러는 거지. 组(팀, zǔ). 알아 들어?”

나는 대뜸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번호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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