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이제는 악몽 안 꿔
참으로 기다림이란
이 차고 슬픈 호수 같은 것을
또 하나 마음속에 지니는 일이다,
- 이형기, 호수
ㅡ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어요.
‘힘드시겠어요, 멋지네요, 지치진 않으세요? 낭만적이네요.’
‘안 그렇게 보이는데 좀 미련하신가 봐요.’
들은 것 중에 가장 화가 나는 말이었어. 미련. 내 사랑을 왜 미련하다고 하는 거지 싶었어. 참을 수가 없었다?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주먹을 날렸어. 아는 사람을 잃어도 괜찮아. 내가 가장 두려운 건 너와 끝나는 거였으니까. 그리고 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처음으로 울었어. 너가 간절하게 보고 싶었다.
더는 좌절하던 그날의 꿈을 꾸지 않게 되었어. 간절하게 떨고 있던 너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열망을 포기한 너가 무기력해지고, 온전히 나한테 갇혀 인형이 돼버린 너를 지켜보는 꿈. 그게 나의 악몽이야. 서태웅이 정대만의 악몽이 된다니. 너를 책임질 수 없다는 비겁함이 다른 사람에게는 멋진 사랑으로 보여진다니. 참 웃겨.
그래서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던 걸지도 몰라. 너를 얼마나 잡고 싶었는데. 나와 같이 코트에서 서 있어 주면 안 되냐고. 국내 최고의 타이틀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그러나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포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에 천천히 너를 놓아줄 준비를 했어. 아침마다 너의 경기를 챙겨봐. 능숙하게 영어로 말하는 모습이 자랑스럽고, 웃음이 나고 동시에 울적해져.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사실은 계속 준비하고 있었나 봐. 작은 우물에서 만난 너를 더 큰 바다로 흘려 온전히 놓아줘야 하는 순간을 말이야.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에 이런 이야기를 써서 미안. 좋은 이야기만 써서 보내려고 했는데 써지지가 않더라고. 리그가 끝나고 MVP 상을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너한테 나 요즘 행복하게 지낸다. 내 걱정 말고 너도 잘해라. 라고 말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축하해 주는 사람들 사이에 서태웅이 없는걸 보고 조금 힘들어지기 시작했어. 티 안 내고 꾹 참으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나한테 미련하다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서 그간의 외로움마저 견딜 수가 없었어. 갑자기 내가 전화 걸었던 날 기억나? 그만하자고 말하려 했어. 그랬는데 목소리 듣자마자 목이 턱 막히더라고. 그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거였지. 너가 미국으로 간 순간부터.
조금 쪽팔리지만 솔직하게 적어 보내. 너를 많이 사랑해. 그래서 기다리기 힘들어도 기다려볼게. 코트 위에 서 있는 우리가 좋아. 나는 여기서 계속 잘하고 있으니 너도 최고가 되어서 나에게 꼭 돌아와. 정대만의 남자친구라면 그정도는 해야지.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탄 아이를 보았어. 너처럼 후드티를 입고 이어폰을 꽂고 열심히 달리더라고. 처음 네 뒤에 앉아서 달리던 날이 생각났어. 그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페달을 밟는 네가 귀여웠어. 땀 때문에 젖은 머리칼을 보고 내려달라고 할까 고민했는데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가 듣기 좋아서 모른 척했어. 적고 나니까 듣고 싶어진다. 돌아오면 우리 자전거 타러 갈까.
이거 읽고 감동받았으면 우는 시늉하면서 전화해 줘. 장난이야ㅋㅋ. 그래도 잘 읽었다고 전화해. 그리고 같이 보낸 사진 우리 엄마가 찍어준 거다. 애먼 사람한테 질투할까 봐 말하는 거야. 나도 서태웅 사진 갖고 싶어. 룸메한테 부탁 좀 해줘. 신문이랑 잡지에 있는 너 사진은 다른 사람들도 다 가지고 있어서 별로야.
팀원들이랑 싸우지 말고
보고 싶어.
4년째 너를 사랑하고 있는 선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