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개 外 (3)



 정수리를 집어삼킬 것 같던 폭염이 한풀 꺾인 시기였다. 돌연 교복 규정이 엄격해졌다. 하복 와이셔츠 아래엔 꼭 흰색 티셔츠만 착복할 것. 민소매 슬리브리스, 유색의 티셔츠 및 쿨토시 일체 금지. 발각 시 벌점을 십 점씩 부여한댔다. 전례 없이 살벌한 기강이었다. 당연히 불평이 치솟았다. 아 씨발 하다하다 티 색깔을 간섭하네. 여기가 학교야 군대야 수련회야.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화내는 급우들에 비해 제노는 딱히 거북하지 않았다. 원래 흰 티셔츠만 입고 다녔으니까. 이제노는 본디 지킬 수 있는 규율이라면 깡그리 지키는 타입이었다.

 재민의 입장도 비슷했다. 재민은 좆 까라는 평온한 얼굴로 계속 검은 티셔츠를 입었다.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가 앞뒤좌우로 인쇄된 것들이었다. 아디다스, 아디다스, 아디다스. 대놓고 엿 먹이는 짓이었으나 표정이 워낙 무료해서 의도가 아리송하게 읽혔다.
 교과목 지정 교사들이 복장을 꾸중할 때마다 재민은 시침을 뗐다. 아 선생님 죄송합니다. 교칙 바뀐 줄을 몰랐어요. 제가 결석이 잦잖아요 반에 친구도 없고요. 의뭉스러운 어조였다. 재민은 그런 식으로 항상 서늘했다. 언성을 높이며 한계까지 몰아세우고픈 위계적 욕구가 도무지 들질 않는 상대였다.

 제노야. 하나님한테 기도 좀 해봐. 어서 여름 끝내주세요, 더워서 체육을 못 하겠어요, 재민이랑 제노 고달파요.
 날씨를 핑계삼아 재민은 예체능 과목을 전부 빼먹었다. 얼결에 제노도 같이 빼먹어버렸다. 책상 위로 가짜 확인증들이 수더분히 쌓였다. 새까만 티셔츠의 나재민과 새하얀 티셔츠의 이제노. 둘은 체육 수업 대신 빈 교실에서 혀를 빨고 성기를 만졌다. 아, 재, 민아. 나 더, 더 해줘. 제노의 교성이 나날이 커졌다. 재민은 이러다 큰일 나겠다며 웃었다. 웃기만 했다. 입을 틀어막지는 않았다. 움직임을 따라 덜컹대는 책상을 부여잡고서 제노는 영영 혼미한 채 마구잡이로 발설했다. 재민아. 어떡해. 이상해. 무서워. 더 해줘. 재민아. 재민아.

 가끔은 재민의 티셔츠에 제노의 정액이 말라붙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금세 정체를 들킬 법한 자국이었다. 미안해. 세탁해서 줄게 새로 사 줄게. 제노는 안절부절 못했다. 됐어 그냥 둬. 내 티쪼가리에 아무도 관심 없어.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 인간이 모두 저처럼 무신경한 줄 아는 것 같았다.
 사실은 그런 점이 좋았다.


 ◆


 구월 하순. 재민이 결석한 날이었다. 불쑥 다가온 반장이 물었다.


 “사귀냐?”
 “어?”
 “나재민하고.”


 기세가 왠지 미심쩍었다. 확신하는 낯이었다. 제노는 십 초간 눈만 끔뻑였다. 사귀는 건가? 고백은 안 했는데. 우리가 사귀는 사이인가? 스스로도 헷갈렸다. 적막이 길어졌다. 침묵의 의미를 달리 받아들였는지 반장은 순식간에 태세를 바꿔 사과했다. 오해해서 미안하댔다. (오해. 무슨 오해? 내가 게이일까봐? 재민이랑 같이 면세담배 피우고 오토바이 타고 뚝배기 깰까봐?) 제노는 손가락 끝을 옴죽거렸다. 주춤주춤 반장이 멀어졌다. 걔한텐 말하지 마. 일말의 당부가 귓바퀴를 감았다. 걔. 나재민이 없는 장소에서 나재민을 지칭하기 꺼려하는 이들이 대용하는 호칭이었다.

 고리타분한 일과를 소화하는 동안, 저녁을 먹는 동안, 지쳐 하교하는 동안 제노는 괜히 재민을 곱씹었다. 그리고 밤이 깊자 익숙하게 호출했다. 나 보고 싶지 않아? 수화기에 대고 한 마딜 했을 뿐인데 얇은 져지를 걸친 재민이 슬리퍼를 끌어 제노네 공동현관으로 왔다. 하여튼 사람 꼬드기는 거 잘해 너. 칭찬 아닌 칭찬도 해줬다. 내가 언제 꼬드겼어, 시선을 피하며 제노는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화단 근처의 그늘로 숨기 위해서였다. 전부 파악했단 듯 재민은 자석처럼 따라와 입술을 겹쳤다. 목말랐던 타액이 오갔다. 해방감의 일종인지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재민아……. 만져줘, 나 만져줘. 탄성과 함께 조르는 말이 터졌다. 등 뒤로 팔을 뻗은 재민이 척추를 훑었다. 자극이 셌다. 기절할 것 같았다. 아, 흐윽. 진짜아. 부끄러운 본능이 울대를 짚어 발화됐다. 재민이 웃었다.

 인근의 발소리들을 무시한 채 한참 숨을 섞은 후에야 키스가 멈췄다. 조도 낮은 가로등 불빛이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제노는 넌지시, 아주 넌지시 물어봤다. 재민아 혹시 우리 사귀는 중이야? 어미가 떨렸다.
 재민은 밤안개 같은 눈으로 제노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어이가 없단 듯 되물었다.


 “사귀냐고 우리가?”
 “응 우리가.”


 당연하지 제노야 오늘 129일째야. 지금 자정 지났으니까 130일이네. 대답하며 재민이 뽀뽀했다. 예상했던 말이지만 들떴다. 제노는 재민의 팔목을 당겼다. 옥상 가자는 무언의 신호였고 애교였다. 이제노 갈수록 골 때려. 존나 밝히고 귀여워 죽겠어. 재민이 중얼거렸다.

 옥상의 스테인리스 조형물에 기대앉은 채 여린 몸을 얽는 일. 교실만큼이나 아찔했다. 제노는 눈두덩을 눌러 감으며 내내 신음을 참았다. 흐느낌을 닮은 소리가 입술 새로 빠져나갔다. 재민은 조용히 자세를 맞췄다. 제 속옷과 제노의 속옷을 무릎까지 끌어내린 후 이리 와, 손짓했다. 넋을 놓친 채 제노는 재민의 허벅지에 걸터앉았다. 뜨끈한 성기가 맞닿았다. 재민은 꼭 삽입이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선단을 마주잡고 비비며 간헐적으로 허리를 쳐올렸다. 가끔은 손바닥을 넓게 펴서 회음부를 문질렀는데, 그럴, 때마다. 그럴 때마다 제노는. 뒤통수가 통째로 증발하는 기분을 느꼈다. 재민이 진작 괴멸시켰던 세계가 쉼 없이 바스라지고 바스러지는 듯했다.


 “재민아, 재민아. 그만, 아으응……. 재민아.”
 “괜찮아. 괜찮아.”
 “어떡해. 너 때문에, 나, 나 어떡해?”
 “왜. 제노 무서워?”
 “아니 안 무서워. 무서운 거 아니구 나 좋아서, 그만 그만…….”


 산발적인 생각들이 여과 없이 혀를 도약했다. 재민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제노는 고개를 휘저으며 사정했다. 골반 아래가 발작처럼 튀었다. 제노의 성기를 쭉 쓸며 후희를 유도하던 재민이 빠득 이를 갈더니 이어 사정했다. 행위가 멎었다. 뚝, 뚝. 손가락을 타고 정액이 뭉쳐 흘렀다. 제노는 재민을 껴안은 채 늘어졌다.


 “너 오늘 심했어.”


 더운 밤바람이 앞머리칼을 흩뜨렸다. 제노가 훌쩍거렸다.


 “어 잘못했어. 근데 안 무서웠지.”


 매끄럽게 달래며 재민이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제노의 속옷과 바지도 한 손만으로 입혀줬다. 남은 한 손엔 끈끈한 정액이 범벅이었다. 제노는 떨어지지 않았다. 새끼 짐승처럼 재민의 품속에 계속 기댄 채 호흡을 골랐다. 재민은 불편한 내색 없이 져지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뱃갑을 꺼냈다.


 “나도 피울래.”


 제노가 부탁했다.


 “이거 독해. 조심.”


 무심히 경고하며 재민이 제노의 입술 사이에 필터를 물렸다. 불이 붙었다. 제노는 이전에 배운 대로 깊이 빨아들였다. 다음 순간 칼칼한 향이 혀뿌리를 눌렀다. 아래턱이 찡했다. 자제하기 어려운 토기가 관자놀이를 쳤다. 기침이 터져나왔다. 켁켁, 콜록 콜록. 뭐가 이래. 제노는 등 전체를 들썩였다. 목 따갑지 미안해. 제 잘못이 아닌데 재민이 사과하며 담배를 다시 가져갔다. 제노는 서둘러 갑을 확인했다. 이름은 영어, 경고 문구는 일본어로 적혀 있었다. 어둠 속이라서 자세한 건 안 보였다. 재민은 제노가 뱉어낸 담배를 묵묵히 마저 피웠다. 드문드문 밝은 아파트의 야경 틈으로 연기가 퍼졌다.


 “학교 가기 싫다.”


 제노가 투정했다.


 “왜? 너 좋아하는 애랑 짝이잖아.”


 재민은 남의 얘길 말하듯 흘렸다.


 “응 근데 걔 양아치야.”
 “잘생겼으면 봐주고 못생겼으면 걷어차.”
 “잘생겼어.”
 “그래? 고마워.”
 “재민아. 반장이.”
 “…….”
 “…….”
 “너랑 사귀냐고 했어.”
 “대답 뭐랬어.”
 “안 했어.”
 “잘했어. 개싸가지 컨셉 고수해. 넌 귀여워서 용서돼.”


 실없는 대화였다. 재민이 담배를 꺼트렸다. 제노는 먼저 입을 맞췄다. 말랑하고 화한 혀가 부딪혔다. 죽도록 삼켜도 죽지 않을 것 같은 숨이 오갔다. 재민은 제노의 목으로 제 입술을 옮겼다. 훤히 드러나는 위치에 이를 박고 핥아서 불그스름한 울혈을 만들었다.


 “야, 안 돼, 거기, 다 보이는…….”


 제노가 띄엄띄엄 앓았다.


 “어, 그치. 앞으론 누가 시비 걸 때 이거 보여주면 되겠다.”


 재민이 읊조렸다. 살가운 목소리였다. 애들한테 자랑해. 나재민이랑 사귄다고 해. 나재민 그 개새끼 내 거라고 해. 열상 같은 말들이 곳곳을 더듬었다. 재차 욕심이 솟았다. 제노는 고개를 꺾었다. 재민의 목을 물어 어설프게 쪽쪽거렸다. 빨아. 빨아야 자국이 남지. 재민이 알려줬다. 옅은 페브리즈 향이 났다. 제노는 달디단 살을 빨고 앞니로 잘근거렸다. 아야야. 아파라. 재민이 엄살을 피웠다.


 ◆


 이른 아침. 제노는 반창고를 붙인 채 등교했다. 아무도 관심이 없을 터였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다행이라면 면적이 좁아 눈에 띄지 않는단 거였다. 옆 분단의 급우가 몇 차례 힐끔거리더니 곧 관심을 거뒀다. 수학 수행평가 내라. 반장이 다가왔다. 제노는 엉거주춤 목을 감추며 수행평가지를 건넸다.

 재민은 이 교시가 마무리된 후에야 등교했다. 여전히 검은 티셔츠였다. 목에는 반창고가 없었다. 단풍 같은 울혈이 선명하게 보였다. 형태마저 요란했다. 미쳤나 봐. 이제노 미쳤고 나재민도 미쳤나 봐. 제노는 교과서에 머리를 박았다. 제노 안녕. 재민이 인사하며 앉았다. 마냥 미지근한 태도였다. 제노는 겨우 입을 뗐다. 안녕 재민아아. (악.)


 “반창고 붙였어?”
 “응 지식인에서 붙이래…….”
 “…….”
 “…….”
 “얼굴 좀 보자 제노야.”
 “아직 안 돼 부끄러워.”
 “별 게 다 부끄럽대.”


 결국 그 상태로 종이 울렸다.
 삼 교시, 빡빡하기로 소문난 생윤이었다. 제노는 슬그머니 고개를 일으켰다. 동시에 재민이 손을 뻗어 제노의 옆구리를 만지작댔다. 교복 셔츠를 들추고 흰 티셔츠를 쓸기까지 했다. 너 변태지. 제노가 입모양으로만 일렀다. 너는 아니고? 반박하며 재민이 슬쩍 눈을 내렸다. 제 울혈을 가리키는 거였다. 제노는 얼른 생윤 교과서를 꺼내서 또 머리를 박았다.

 생윤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재민을 지적했다. 일주일째 복장 불량이 개선되질 않으니 문제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재민은 좆도 안 죄송한 표정으로 정수리를 숙였다. 죄송하다는데 핏대를 세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생윤은 큼 헛기침했다. 목은 왜 그 모양이냐. 이번엔 애꿎은 살결을 트집했다. 아시면서. 쌈박질했어요. 재민이 대꾸했다. 교실의 이목이 일체 재민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누가 본대도 쌈박질이 도출한 상처가 아니었다. 속성부터 달랐고 정체가 자명했다. 기류가 금세 묘해졌다. 작은 웅성임들이 샜다. 쪼가리. 여자친구. 어쩌고. 저쩌고. 뻔히 퍼지는 가십이었다. 제노는 애써 태연한 척 턱을 괬다. 잠시 방조하던 재민이 문득 은근하게 중얼거렸다. 구경났지 씨발 눈 돌려라. 교탁까지는 미처 닿지 않을 목소리였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굳었다. 시선들이 각자의 원위치를 찾아 흩어졌다.

 내일은 흰 티셔츠 착용하도록. 일갈하며 잔소리를 거둔 생윤이 교과서를 폈다.


 “애들 겁주지 마 재민아.”


 한숨과 함께 제노가 힐난했다.


 “겁준 적 없어.”


 재민은 뻔뻔했다.

 선생님 에어컨 틀어주세요. 첨예한 공기를 전환하려는 듯 반장이 손을 들었다. 제노는 칠판의 글씨를 흘긋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재민이 발장난을 걸었다. 슬리퍼가 벗겨졌다. 야 자꾸 이럴래. 제노는 숨죽여 웃었다. 반창고를 붙인 자리가 당겨 따끔했다. 제노야 공부하지 마. 나랑 놀아줘. 재민이 소곤소곤 떼를 썼다. 제노는 짐짓 엄한 얼굴로 명령했다. 기다려.

 기다리래. 개를 키우는구나 아주. 재민이 늘어졌다. 에어컨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結


 이번 편 재민이 담배는 럭키 스트라이크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