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할로윈! (아닐 수도 있음)
"최영재 니임⋯⋯ 혈관이 안 보여서 잠시만 다시 잡을게요. 주먹 계속 쥐었다, 폈다 해 주세요."
"네."
영재가 얌전히 팔을 내밀었다. 그리고 간호사의 지시대로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눈앞의 간호사는 이제 갓 실무에 투입되었는지 한껏 긴장한 듯한 손으로 영재의 팔뚝을 잡았다. 팔뚝과 오목하게 들어간 팔오금을 쥐는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이 영재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한참을 그렇게 제 팔과 씨름하던 간호사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주사기를 들었다.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을 직접 보면 고통이 배가 될 테니까, 영재는 느리게 시선을 허공으로 옮겼다. 어라, 그런데 나 왜 병원에 왔더라. 주사는 왜 맞고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제 팔뚝에 날카롭고 축축한 것이 콱, 닿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 축축하다고?
영재는 그제야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간호사가 제 팔뚝에 이를 박고 황홀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런 미친. 영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제 얼굴을 빤히 응시하고 있던 간호사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뭐야? 뭔데?! 일그러지고 구겨진 얼굴은 어느새⋯⋯
"어, 깼다."
⋯⋯ 아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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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써여, 형?"
"아니, 너 지금 뭐 하는⋯⋯ 뭐 하는 거야, 지훈아."
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뗐다. 뭐 하긴요⋯⋯. 수줍어하면서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꼴에 영재가 눈을 뒤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제 침대 위에 왜 한지훈이 올라와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제 팔뚝을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런 이상한 꿈을 꾸었는지도 모르겠고. 지금 일어난 상황이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일순 머릿속이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억.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 위로 쓰러지자, 지훈이 걱정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영재를 붙잡았다.
"어어, 빈혈 와요? 좀, 좀 많이 빨았나."
"뭘 빨아⋯⋯?"
"피요."
영재가 지훈의 부축을 받아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뭔 소리야. 피를 빨았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보라고. 지훈은 설명 대신 꿀단지처럼 소중하게 잡고 있던 영재의 팔뚝을 내밀었다. 팔에서 피가 철철 흘러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사실 영재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제 이불을, 그것도 얼룩이 잘 사라지지 않는 피로 물든 이불을 빨아야 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자, 최영재 탐사자. 산치 체크를 합시다. 주사위가 데구르르, 굴러가고⋯⋯ 실패! 잡으려고 노력하던 이성을 놓아 버립니다. 영재가 다시 한 번 머리가 핑 도는 듯한 감각에 검지와 엄지로 제 미간을 꾹꾹 짚었다.
"지훈아⋯⋯. 이건 설명이 아니지."
"음, 믿을지 모르겠는데."
"말해 봐."
"제가 사실 뱀파이어예요."
"거짓말 치지 말고 빨리."
"진짜라니까예⋯⋯."
그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네가 뱀파이어라서 내 팔을 매일 밤마다 물었는데 나는 그걸 모기의 소행으로만 치부했고 그걸 보고 안심한 너는 오늘 안일하게 오랫동안 피를 빨아 버려서 내가 깨 버렸다는 사실을? 영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훈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제 입술을 들어 꼭꼭 예쁘게 자리하고 있는 송곳니까지 보여 주었다. 그냥 교정을 안 받은 거 아니야? 아니에요! 지금 억울한 게 누구인데, 세상 가장 억울하고 울적한 사람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영재는 그냥 말을 말기로 했다. 지훈도 할 말을 고르고 있는지―아니면 그냥 영재가 입을 다무니 무서워졌는지― 말이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영재는 지훈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초등학생 때 <Why? 응급처치>에서 본 지혈 방법을 떠올려 제 팔뚝을 직접 지혈하기 시작했다. 지훈은 그 모든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지훈이 슬쩍 영재의 팔뚝을 잡더니, 상체보다 위로 팔을 들어 올렸다.
"혀엉. 지혈할 때, 상처를 가슴보다 위로 둬야 해요⋯⋯."
"⋯⋯ 상처를 낸 사람이 누군데."
"그건 제가 정말 맛있었어요. 아니, 죄송해요."
신기하게도 지훈의 방법대로 하니 피가 금세 멎었다. 이미 젖어 버린 침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미 좀 맛이 가 버린 듯한 몸 상태도 어쩔 수 없었지만. 정신머리 하나만큼은 제대로 붙잡을 수 있었다. 영재가 그제야 차분히 지훈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훈은 계속 영재의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영재 형⋯⋯."
"⋯⋯ 왜."
"제가 싫어졌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제가 멋대로 그랬잖아요. 형 몰래⋯⋯. 잘못했어요."
아까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뱀파이어라느니, 뭐라느니 할 때는 언제고 한껏 주눅든 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우나? 들여다보니 눈물은 흘리고 있지 않았다. 영재가 하아아아,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 소리에 지훈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다, 당장 형 방에서 나갈게요. 앞으로 안 그럴게요. 다른 멤버들한테도요! 그러니까⋯⋯ 저 미워하지 마요. 네? 꼭 애원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영재는 어쩐지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 앞에서 손을 꼼질거리며 기어 들어갈 듯한 목소리를 내는 정수리가, 조금⋯⋯ 귀여워 보였다는 뜻이다. 아니지, 최영재. 미쳤어? 이거 상해라고. 잘못하면 과다 출혈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피를 너무 빨려서 머리가 이상해진 거 아니야? (맞다) 영재가 제 뺨을 후려쳤다. 그 소리에 지훈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혀, 형. 왜 그래요? 화났으면 저를 때려요."
"⋯⋯."
⋯⋯ 됐다. 제 뺨을 치라고 친절하게 고개를 돌린 채 영재의 손을 쥐던 지훈이, 영재의 말에 멍청하게 입을 헤 벌렸다. 영재는 지훈의 손을 꽉 쥔 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화 안 났다고⋯⋯. 그러니까 주눅들지 마. 기 죽지도 말고."
"지, 진짜여?"
"그래⋯⋯."
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기쁨으로 물들었다. 활짝 미소 짓는 입안에서 송곳니가 반짝, 하고 빛났다. 영재가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지훈을 보았다. 나한테 미움받기 싫어하면서 굳이 내 피를 빤 건 뭐 하자는 거지. 아마 최영재가 그 이유와 의미를 아는 것은 한참 뒤가 되겠지만, 당장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훈도 즐거워하고 있었고. 에헤헤, 소리 내어 웃는 지훈을 보며, 영재도 저도 모르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 자라고 하려는데, 지훈이 영재의 손에서부터 슬금슬금 손을 올려 가며 상처 부위를 가볍게 매만졌다. 읏. 따끔거리는 감각에 영재가 인상을 찌푸리자 지훈이 배시시 웃었다.
"혀엉, 그럼⋯⋯ 저 한 모금만 더 마시면 안 돼요? 아까 한창일 때 형이 깨 버려서⋯⋯."
당연히 쫓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