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부] 재회






“지훈이 형?”


꿈에서도 들려주지 않던 그리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1년 만에 보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살이 빠졌는지 얼굴선이 날렵해지고 차분한 갈색 머리를 한 승관이었다.

지훈이 멍하니 있는 사이 다가온 승관이 진짜 형이네. 잘 지냈어요? 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 애가 언제나 그랬듯이. 정신을 차려보니 지훈은 어느새 근처 카페에 들어와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주문했는지 모를 지훈의 손에 들린 커피를 보고 승관이 물었다.


“형 아아 마셔요?”
“어? 어… 가끔.”
“와, 나 형이 커피 마시는 거 처음 봐.”


승관과 헤어지고 나서 지훈은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먹어보니 역시 쓰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어째선지 다음에도 또 주문하게 됐고, 그렇게 종종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마시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쓰다고 안 마시더니. 먹어보니까 괜찮죠? 그렇게 말하는 승관의 앞에 놓인 건 따뜻한 라떼였다. 너도… 아메리카노 말고 다른 거 마시는 거 처음 보네. 저도 이제 카페인을 좀 줄여보려고요. 승관이 두 손으로 머그잔을 쥔 채 답했다.

그러고 나서 둘은 근황 얘기를 했다. 지훈은 작업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음악 작업을 시작했고 승관은 원하던 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했다는 얘기를 했다. 밥 챙길 정신도 없어서 덕분에 살이 좀 빠졌다며 웃었다.


“아무튼. 형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승관의 얼굴이 꿈결 같았다. 지훈은 승관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내내 몇 번이고 제 볼을 꼬집어볼 뻔했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몸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상상을 수백 번도 넘게 했지만,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귀는 동안 지훈은 승관보다 늘 한발 늦었다. 고백도 승관이 먼저, 이별도 승관이 먼저. 지훈은 승관이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래서 승관이 여기까지만, 하고 손을 놓았을 때 지훈은 그대로 길을 잃어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날부터 지훈은 승관과 다시 만나는 날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서툴러서 그렇다는 변명을 두 번이나 할 수는 없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승관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미안했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지훈을 단숨에 현실로 곤두박질치게 한 건 승관의 메신저 알림음이었다.

잠시만요, 지훈에게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확인하는 승관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지훈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승관의 볼 뒤쪽이 살짝 붉어 보이는 게 자신의 착각이길 바랐다. 답장을 하는 손가락이 액정 위에서 가볍게 움직였다.

누구야? 지훈이 애써 무덤덤한 척 물었다. 아, 그냥… 아는 사람이요. 담백한 대답이었지만 꺼진 핸드폰 화면을 스치는 시선 끝에 수줍음이 묻어났다. 지훈도 아는 눈빛이었다. 어떡하죠, 형. 저 지금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승관이 눈썹을 팔자로 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나도 금방 일어나려고 했어. 지훈은 목소리를 떨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작년 겨울. 승관이 이별을 말했던 그때처럼.


“형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어요.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정말로.”


미련도 후회도 더 이상 남지 않은 듯한 다정하고 담담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지훈은 깨닫는다. 이제 정말로 끝이라는 걸. 나는 마지막까지 너보다 늦는구나. 저 갈게요. 어. 가.

아, 형. 가버린 줄 알았던 승관이 돌아왔을 때 우습게도 그 잠깐 사이에 다시 희망이 차올랐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승관이 건네준 건 따뜻한 핫팩이었다. 손을 델 만큼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원래 그 애가 가지고 있는 다정함 딱 그만큼.


“이제부터 추워진대요. 따뜻하게 입고 다녀요.”


승관이 떠난 후에도 지훈은 그 자리에 남아 승관이 주고 간 핫팩을 쥐고 있었다. 그 애가 전해준 손안의 온기가 완전히 식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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