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다녀오면술같이마셔준다면서요

야 숨은 쉬고 말해라 영균아. 인성은 눈을 질끈 감으며 그렇게 대답한다. 이럴거면 복학하지 말걸. 걍 휴학 걸어놓고 취직이나 할 걸.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곧 그만두었다. 영균의 얼굴이 바싹 가까이로 다가온 탓이었다. 얘는 무슨, 제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면서, 머리가 이렇게 길어... 나 제대 할 때도 이랬나. 꼰대같은 생각을 하며 동방 소파 구석에 바짝 웅크렸다. 영균이 점점 다가오는 중이었다.

솔직히 제 잘못 맞았다. 김인성은 쿨하게 인정한다. 척 봐도 자기한테 관심 있어보이는 신입생 안 잘라내고 가만히 냅둔거 말이다. 그 뿐만인가. 형은 뭐 좋아하세여 물어보면서 몸 붙여올때도 가만히 뒀다. 그야 관심이 없었으니까. 영균에 대해 인성은 잘 몰랐다. 그냥 좀 마른 애. 행동하는 게 투명해서 눈에 잘 보이는 애. 가끔 눈을 들여다보면 영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인성은 영균과 함께 있을 때면 눈을 깜빡이는 척 두 눈을 자주 감아버리는 게 버릇이 되었다. 이 이상 들여다보아서는 안될 것 같았다.

그건 인성이 제 세계에 영균을 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싶지 않았다. 관심이 가는 것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잘 해내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밖의 여러 관심이 가지 않는 일에는 미적지근한 온도로 대했다. 미안하지만 영균은 인성에게 바깥 세계의 사람이었다. 좀 애처로운 눈빛을 한 후배. 가끔 눈이 마주쳤고 영균은 그때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웃었다. 아주 가끔은 챙겨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성은 눈을 감는다.

술약속은 정말 갑작스러웠다. 1학기 끝나고 영균이 대뜸 뱉은 것이다. 저 이번 학기 끝나고 군대 가요. 동방에 있는 모두가 수군댔다. 올해 마치고 가는 게 아니라 이번 학기 끝나고 간다고? 네. 1년 단위로 휴학하는 거 아니면 학사 일정 꼬여서 힘들텐데. 괜찮아요. 묻는 족족 3초 안에 대답이 나왔다. 무슨 결연함까지 엿보였다. 인성도 휩쓸려서 한 마디 했다. 제대하면 술 한 번 먹자. 물론 빈말이었고 영균은 대답했다. 꼭 마셔주세요. 인성은 물론 그때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지금. 3학년의 막바지를 동방에서 장식하던 인성에게 영균이 찾아온 것은. 놀랍다면 놀라웠고 아니라면 또 아닌 일이었다. 동방에서 몬스터 빨며 전공 과제 PPT 만들다 바깥이 시끌시끌하길래 문을 열어본 게 시작이었다. 문 바깥에는 영균이 있었다. 인성은 벙쪘고 영균은 전과 똑같이 웃었다. 이제는 안 한 지 오래되어 습관이라고도 부를 수 없어진 행동을 꺼내려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더니 영균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학교도 안 다니면서 뭐 하러 왔어.
다음 학기 복학하는데요. 동아리도 다시 할 거에요.
나는 나갈건데... 뭐 열심히 해라.
술 마셔준다면서요.

그제서야 그 빈말이 생각 난 것이다. 어어 술 좋지 근데 다른 사람들 다 불러서 먹을까? 우리 둘이 마시면 좀 그렇잖아. 뭐가 그런데요. 아 좀 그렇잖아. 형 돈 없어요? 그게 그런 문제가 아니고 너랑 마시는 거 좋지 좋긴 좋은데.

우리가 그렇게 막. 친한 사이였나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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