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와! 진짜 잘어울려요. 이걸 오늘만 입는다는게 정말 아까울정도로요!”
“아…다행입니다.”
눈앞의 소녀는 한손엔 솜사탕을 다른 한손으론 엄지를 들어올리며 해맑게 웃어보였다. 여행가방에 머문 이래 한번도 들어가지 않은 개인실을 이런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신의 방에 처음 들어가다니, 문밖에서 혹시 도와줄 일이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외치는 앳된 목소리가 들리는거 같기도 했지만 그간 익숙하다 못해 한몸이 된 너덜한 군복과 잠시 작별을 하는것에 골몰해 있었기에 차마 신경쓰진 못했다. 옷을 갈아입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다만 원채 평소에도 느릿느릿하다고 듣는지라 단순한 구조의 옷임에도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제법 넉넉한 품의 의상이었지만 내 자신의 형태가 어떠한지 스스로가 잘 알기에 혹여 깨끗하고 새로운 옷이 망가지지 않을까 갈아입는 내내 긴장도 되었다
“음, 카론씨 혹시 많이 불편하세요?”
들떠있던 소녀가 살짝 걱정되는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처음입어보는 종류의 옷이니 불편한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동남아시아에 있는 어느 나라의 전통의상이라고 했던가, 나를 이루는 형태와 특수성 때문에 개방되어있거나 복잡한 방식의 옷을 입기 어려운 것을 고려해 최대한 넉넉한 품에 어울릴 의상이 좋겠다며 골라준 옷이었다. 무늬가 없는 감청색 상의가 무릎 바로 위까지 이어져있는데 왼쪽의 목깃으로부터 가슴까지 잠기지 못한채 개방되어 그 사이에 양귀비꽃과 새잎들이 훤히 드러나있는 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일자로 떨어지는 하얀 통바지, 발목이 드러나지 않는 워커화 그리고 늘 수의천으로 가리고 있던 머리에는 삼각뿔에 가까운 형태로 대나무로 엮고 끝에 두께가 있는 휜베일을 몇겹이나 달아둔 모자, 나에겐 너무 과분한 의상이었다. 긴장과 침착하지 못함을 진정시키려 원래 쓰고 있던 수의천을 고이접어 늘 가지고 다니는 노트와 함께 품에 꼭 안았다.
“불편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에겐 과분한 의상이라 조금 진정이 안되는군요.”
처음 이 옷을 받았을땐 이런 기쁨과 즐거움의 자리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지만 이내 자신을 보며 기대에 차 울망울망하게 바라보는 소녀와 옷을 건내주며 당신에게 어울리는 치수에 맞춰 준비한 옷이니 불편하진 않을거라고 말하는 의상 디자이너의 눈빛에 지고 말았다. 이곳엔 전쟁도 재해도 없다. 자신의 존재의의가 희미해지는 것이 곧 좋은 일임을 안다. 그렇기에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전까지만 누릴 수 있을 “더할나위 없는 스스로의 무쓸모함”을 천천히 받아들이고자 했다.
“카론씨 잠시 그 천을 저에게 주실래요?”
아무래도 그건 영 쉽지 않을것 같다.
의아해하며 천을 그녀에게 건내자 소녀는 나를 다시 방에 밀어넣고 신발장 앞 빌트인 거울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곤 천을 펼쳐 내가 평소에 하고 다니는것과 비슷하게 어깨로부터 두어번 걸쳐주었다. 어때요? 이러면 좀 평소같지 않을까요? 나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이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상상한다. 표정을 직접 드러낼 수 없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을테지만 그것이 나의 말로 전해질때 담길 수 있길 바래본다.
“제법 네, 진정이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메릴”
“후후, 준비끝! 어서 가요! 안드레아스가 기다리겠다. 아, 바르카롤라씨가 개회식 공연을 한다고 해요!”
나는 곧 로비 너머 형형색색의 만국기가 걸린 맑은 하늘 너머로 손을 흔들며 달려가는 소녀를 따라 한걸음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