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트리 초기화
강렬한 햇살이 창문을 넘어 작은 집 안을 데운다. 오늘은 낮에 소나기가 예보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늘은 거짓말같이 맑고 푸르렀다.
단열이 그런대로 잘 되어 있다지만 햇빛은 무자비하게 창문을 달구었고, 전등 하나 켜지 않았음에도 환한 집안 역시 천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레지스는 익숙한 듯이 집의 에어컨을 작동시켰다. 적정온도보다 몇 도 높아진다고 해서 땀에 흠뻑 젖거나, 일의 능률이 떨어져버리는 유기체들과는, 근본부터 다른 존재들만이 이 집에 기거하고 있었지만…….
창가에 레이츠가 앉아 있었다. 레지스는 창밖을 바라보는 레이츠의 표정을 살핀다. 한 차례 자아가 폭주하여 기계적인 발작을 일으켰던 소녀—레이츠를 소녀라고 해도 옳은지는 레이츠 본인조차 확신이 없었지만, 아가씨라는 호칭 등을 구태여 거부하지는 않았으므로—는 그 날 이후 표정이 투명하지 않았다. 표정이 투명하지 않았다, 라는 것은 레지스가 레이츠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야 굳이 분석하거나, 혹은 감정 데이터를 분석한다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레이츠라는 안드로이드 소녀는 원래 그러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알 수 있는 존재였다.
레지스는 그런 레이츠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레이츠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가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그녀를 자기 손으로 없애겠다고 수없이 속으로 되뇌었던 신사는, 막상 그런 일이 다시 한번 닥치자 자신의 눈물을 보았던 그녀를 저버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레지스는 무작정 레이츠의 데이터에 간섭해 그녀를 강제로 잠재웠고, 레이츠를 데리고 나왔다. 레이츠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그건 정말이지 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나다운 게 뭘까? 레지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너답지 않다'라는 말 같은 건 건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레지스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속내를 알 수 없지. 본래 레지스는 표정을 읽어들일 수 없는 안드로이드에 속하기도 했다.
레지스는 다소곳이 앉아있는 레이츠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자세를 낮췄다.
"레이츠 군, 오늘은 어때."
레지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레지스는 다소 충동적인 행동의 결과를 여럿 짊어지고 있었고 기계 몸통 위의 인간을 닮은 머리도 그 중 하나였다. 레이츠를 괜찮아지게 만들겠다고 무작정 데리고 나와 놓고선 그녀를 진단하거나 분석하는 대신 이런 실없는 물음을 던지는 것도 물론, 그 중 하나였다. 레이츠는 줄곧 창밖에 두고 있던 시선을 레지스에게로 옮겼다. 그건 눈……인간의 눈과 일대일로 대응할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레지스보다도 레지스를 깊이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레지스는 그 눈빛 앞에서는 어쩐지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완전 괜찮아. 날도 좋고!"
레지스의 걱정과는 달리 레이츠는 웃으며 발랄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 천진난만한 아가씨가 '괜찮냐'는 물음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였을까? 레이츠는 가끔은 무척 아이처럼 굴 때도 있었지만, 그게 레이츠가 정말로 아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레이츠는 레지스라면 바보 같을 정도로 무조건 긍정했으나 그게 레이츠가 무지하다는 뜻 또한 아니었다. 레지스는 그녀 앞에서라면 마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읽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레이츠는 그의 데이터에 마음대로 접속하거나 그를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그의 기억을 헤집거나 그의 자아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분석하려 들지 않는데도.
레지스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에 선을 긋는 사람들에게 그건 안드로이드 차별이라며 유쾌하게 웃어넘기거나 때로는 불쾌해하기도 했지만, 확실히 안드로이드는 인간과는 달랐다. 특히나 레지스 같은 타입의 로봇은 굳이 표정을 숨길 필요도 없으니까. 그럼 자연스레 모두가 레지스를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고 평했다. 그런 레지스가 지금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 레이츠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레지스의 선택이었다. 레이츠는 그런 레지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레지스가 미소지어 보인 후 다시 일어나자 레이츠는 발장난을 시작했다. 좋은 징조라고 생각한다. 계속 이대로만 지낸다면 어쩌면, 레이츠의 자아가 다시 폭주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금만 더 용기낸다면 그녀의 데이터에 접속해서…… 무엇이 문제를 일으키는지 들여다보고 조정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안드로이드들의 평균적인 가동 온도보다 늘 몇 도 높은 작은 소녀의 광활한 내우주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볼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문득 레이츠가 레지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까지도 귀여운 얼굴로 웃으며 발장난하던 레이츠는 갑자기 의중 모를 미소만을 띤 채로 레지스를 묵묵히 바라본다. 방금 한 생각이 읽히기라도 한 건가. 레지스는 반사적으로 제자리에 굳어 딱딱한 표정으로 그녀를 마주 바라본다.
레이츠는 웃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돌아가자, 레지스."
아니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돌아가자."
내가 진짜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렉 레지스터는 과거에 이미 자신의 어떤 부분을 도려낸 적이 있는 존재였다. 안드로이드를 다른 유기체들과 선을 그을 때 불편해하면서도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고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려 들었다. '인간'의 모습을 한 레지스가 분리되어 나온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두려움으로부터 안전거리를 두기 위해 자기 자신을 실험거리로 삼은 것이다. 안전거리가 확보되었다는 것을 알면 레지스는 또 다른 레지스터에 저장된 정보를 읽고 흡수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레지스가 분리되어 나올 때 레지스 역시 레지스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레이츠를 데리고 도망친 건 순전히 레지스의 충동이었다. 즉흥적인 면이 있는 것처럼 가볍게 굴지만 뒤에서는 언제나 모든 일을 회로 위에서 철저히 계산한 후 행동하는 레지스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 끝에 어떤 희망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여 도박수를 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도망친 것이다. 레이츠와 함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말한 소녀와 함께. 괜찮을 것 같았던 소녀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돌아가자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잖나."
레이츠의 표정엔 미동이 없었다.
"사랑해, 레지스."
그녀의 진심을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레지스에게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보여줬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자신의 진심을 알아차렸다. 레지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레이츠에게, 레이츠가 원하는 어떤 답도 돌려주지 못하는 건 나도 똑같아……. 그야, 레지스니까. 비겁하다는 생각이 마구 치밀었다. 마치 내가 다른 존재라도 된 것처럼. 레지스가 아니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분리되어 나왔어도,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어도 레지스는 렉 레지스터였다.
레이츠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눈치채지 못한 사이 햇빛이 사라져 있었다. 그 짧은 새 먹구름이 하늘 가득 몰려들었다. 젠장, 예보가 틀리지 않았군. 레지스는 애꿎은 날씨에 실소했다.
"비가 오기 전에 돌아가야겠군."
레이츠는 예의 귀여운 웃음을 얼굴에 늘어뜨리고는 레지스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저 안겼다. 실리콘이 따듯했다. 그저 상시 부하가 걸려 있는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응, 돌아가자."
오래 전 내게서 떨어져 나간 부분은 광활한 우주 어딘가를 떠돌며 여행하고 있을 텐데.
사실 레이츠가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레지스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녀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어떻게 이해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단지 레이츠는 단 한 번도 진짜와 자신에 선을 그은 적 없었다는 걸. 그저 레이츠는 레지스를 사랑해서, 사랑할 뿐이라 레지스를 끔찍이도 잘 아는 그녀는 이번에도…….
그러니, 레지스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해야만 했다. 클라이언트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렉 레지스터의 신조였으니까. 그래서 레지스의 짧은 반항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