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우리를 💔 갈라놓을 지라도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더군다나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가냘픈 존재라면. 내가 매일같이 이런 숭고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자신에게 베풀고 있다는 사실을 강찬희는 아마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강찬희는 하루 중 23시간을 잠들어 있는 일종의... 뱀파이어 비슷한 것이니까. 추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나는 강찬희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강찬희는 나에게 늘 자신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을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멋대로 강찬희를 내가 아는 단어에 끼워 맞출 뿐이었다. 하루종일 잠을 자고, 피부가 종잇장처럼 창백하며, 무엇보다 피를 마셔야 하는 삶이라는 건 역시.
"너 진짜 뱀파이어 아니냐?"
"그런 거 촌스러워서 싫어."
"뱀파이어 맞긴 맞다는 거지?"
"아닌데."
반박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강찬희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나는 최대한 걔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유들유들하게 생겨서는 의외로 고집이 있는 편이라 한 번 입을 다물기로 결정하면 한 시간동안도 입을 다물 수 있었다. 더 다물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걔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뱀파이어처럼 하루 딱 1시간만 깨있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숨을 멈추고 '잠들어야' 했다. 그것을 과연 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나는 강찬희에게 아주 숭고한 베풂을 행해야 했으므로 눈 딱 감고 걔에게 늘 져줬고 강찬희는 유치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으며 내게 손짓한다. 좀 더 가까이 와. 나는 싫은 기분을 예감하며 강찬희에게 몸을 맡겼다.
아!
강찬희는 작은 머리통을 내 손목에 묻고 하얀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얇은 피부가 찢기고 안쪽으로 자꾸자꾸 말려들어간다. 이윽고 두 점에 피가 멍울져 올라오는 것을 강찬희와 나는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두어번 호흡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뒤 손목을 내밀면, 그제야 강찬희는 손목을 잡고 민망한 소리를 내며 말 그대로 나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몇 번을 해도 이런 흡혈 과정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강찬희의 정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듯 이 느낌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손목은 심장이 그 쪽으로 옮겨간 듯 세차게 박동하고 그 외의 몸 모든 부분은 차가워지는 듯한 기분...
강찬희는 입이 짧아서 그렇게 많은 양의 피를 섭취하지는 않는다. 걔는 입가를 손등으로 거칠게 훔치며 내 팔을 놓아주었다. 오늘의 식사가 끝났다는 뜻이다. 손목에서는 아직 피가 솟구치는 중이었다. 강찬희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다가 혀로 점과 점 사이를 핥아주었다. 강찬희의 혀는 비슷한 행위를 수없이 행한듯 마모되어 아주 부드럽고, 그것은 섹슈얼하다기 보다는 역시 숭고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강찬희의 집에 도착한지 5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찬희가 잠들기까지는 아직 55분의 시간이 남아있었으니 이제야 완전한 우리의 시간이다.
강찬희를 알게 된 것은 작년 겨울이다. 이 대학가 원룸촌은 아주 비좁은 건물들이 촘촘히 붙어있는 구조였고, 건물주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들이기 위해 불법 개축을 일삼았다. 내가 사는 건물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래 설계도에는 없었던 반지하 방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나 자리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가까이에 수많은 사람의 존재를 느끼며 살 수 있었지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살지 않았다. 모든 곳에 존재한다면 역설적으로 그게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러므로 나는 반지하에 마땅히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맞았다. 실제로도 나는 그 방에 누가 사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신발장에 누군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종량제 봉투를 던지고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흔들다가 가슴에 손바닥을 올렸다. 두- 근 두- 근. 그렇게 여리고 맥없이 뛰는 심장은 처음이었다.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그 사람은 아주아주 느릿하게 눈을 뜨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더니 사과 한마디 없이 아 살았다, 한 마디 할 뿐이었다. 그것은 전혀 안도했다는 어조가 아니었으며 고저가 없는 담백한 문장이었다.
나는 강찬희를 살렸다. 알고보니 강찬희는 피를 온 몸에 일정한 비율으로 돌게 해줄 필요가 있었고 엎드린 채로 계속 있었으면 피가 머리 쪽으로 쏠려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대충 뭐 그런 지병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강찬희는 그 후로도 현관에 가끔 엎드려있었고 나는 매번 식겁하며 걔를 흔들어 깨웠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처음에만 좀 놀랐지 차츰 익숙해졌고 종국에는 룸메이트를 깨우듯 무감각해졌다. 야 일어나. 걔는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은 채로 평온하게 한 마디 했다. 너 이제 말이 짧다?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히고 쓰러져있던 날 결국 강찬희는 말했다. 안되겠다 돕는 셈 치고 알바 좀 해라. 난 걔가 곧 죽을만큼 병세가 악화된 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 이정도로 아픈 줄 몰라서 미안하다 뭐든 해줄게 임마. 큰 일은 아니고 단순히 배달시킨 혈액팩을 먹다 그대로 잠들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나의 눈물겨운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욱신욱신거리는 손목을 부여잡고 트와일라잇 시리즈 정주행을 했다. 물론 영화에 집중할수는 없었다. 흡혈을 마친 강찬희가 뱀처럼 미끈한 혀로 손목을 핥아주던 감각이 계속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바삭한 피부를 삭삭 핥아주던 강찬희. 나는 손목을 닳을때까지 문지르며 후회한다. 이거 좀... 잘못 걸린 것 같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하지만 나는 사연 있는 사람에게 꽤 무른 편이라. 강찬희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도 알아버린 나는 걔의 부탁을 거부하기가 힘들었고 나는 눈을 흘기면서도 매일같이 시다를 자처했다. 강찬희는 그럴 때마다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이씨 개웃기네. 강찬희는 늘 내 하는 짓이 웃겨서 좋다고 했다. 미안한데 나 웃기다는 소리 너한테 처음 들어봐. 오냐 너 늙어 뒤질때까지 말해줄게.
그렇지만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금방 가는 법이다. 강찬희는 슬슬 졸리다는 듯 핸드폰을 내려놓고 침대 가까이 꾸물꾸물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판 기물 잘 나왔는데 좀만 이따가 자면 안돼? 그게 내 맘대로 되냐 시간 되면 그냥 졸리다고. 아 너랑 랭겜 듀오 돌리지 말걸. 나는 툴툴대면서도 강찬희를 위해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들기 직전의 강찬희는 아주 고요하고 창백하다. 몸을 둥글게 말아 누운 걔를 바라보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하나 떼 주었다. 강찬희는 살이 닿는 게 싫었는지 눈을 감은 채 짜증을 내다가 곧 숨이 끊긴 것처럼 조용해진다. 잠에 든 것이다. 나는 그제서야 손을 완전히 떼어냈다.
사람은 보통 5초에 한 번 숨을 내쉰다고 한다. 나는 강찬희가 얕은 들숨을 쉬는 것에 맞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쭉 펴진 오른쪽 손가락이 모두 접힐 때까지 기다렸지만 강찬희는 아직 날숨을 뱉지 않았다. 계속해서 손가락을 꿈질거렸다. 잇새 사이로 가느다란 숨이 다시 뱉어지기까지는 무려 20초가 걸렸다. 남들의 4배 정도 느리게 호흡하는 강찬희. 걔가 누운 침대 머리맡에 주저앉아 한참 숨을 따라 쉬었다. 역시 내가 따라하기에는 너무 벅차서 몇 번 하고는 금방 포기했다.
"너 진짜 뱀파이어 맞냐?"
물론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혀를 내밀어 신기할정도로 금방 상처가 아물어가는 내 손목을 가볍게 핥았다. 따갑고, 비리다. 이런 걸 먹고 살라고 하면 아마 나는 죽어버릴지도. 몸에서 힘을 빼고 강찬희의 몸 위로 올라탔다. 한 번 잠든 강찬희는 정확히 23시간의 수면을 채우기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도 눈을 뜨지 않는다. 걔의 머리통에 내 앞머리칼을 비비며 미동도 없는 옆모습을 조금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잠든 탓에 열이 올라 얼굴에 살짝 떠오른 홍조를 보고 나는 솔직히 좀... 걔가... 천사같다고, 생각했다. 별 생각 없이 키스한다. 강찬희 몰래 미적지근한 혀를 빨아대는 건 처음이 아니었고 잠깐은 흥분되었지만 반응이 없는 탓에 곧 식었다. 아. 맨 정신일때 키스하고 싶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것도. 조금 큰 소리로 말해보지만 야속하게도 강찬희는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