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씁... 이거 진짜 한참 뒤에 쓰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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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죽히죽...
#파판14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경 쓰시는 분들께는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만약 이 문제로 독백 감상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리베주한테 스포 없는 요약을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파판14의 인게임 대사를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있습니다.
#욕설, 부상 묘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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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스의 확인사살을 해야 했다. 영웅의 이름을 등에 업은 자의 의무 중 하나였다.
그러나 리베리우스는 ─ 에르킨은 움직일 수 없었다. 혹사당한 몸은 비명을 질러댔고 에테르는 바닥이 나는 걸 넘어서 신체를 구성하는 에테르조차 쥐어짜내진지 오래였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겨우 들어올린 고개는 부러진 뿔의 방향으로 자꾸만 기울어져 바닥에 처박힌다.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제는 포기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제는 멈춰야 할 때일 수도 있었다.
제노스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 이 세계에 태어나, 이름을 얻고, 살아오며......"
시끄러워. 하나도 안 들려. 리베리우스는 그를 비웃어주고 싶었지만 얼굴 근육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 걸어오며......"
소리를 들어야 할 뿔을 부러뜨린 게 네놈이지 않느냐. 반병신을 만들어 놓은 게 자신이면서 대화를 청하려 하느냐.
대꾸를 하기보단 억지로나마 몸을 끌고가는 것을 택했다. 저 놈이랑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린지 오래였다. 왼팔은 움직여지지 않으니 오른팔로만 바닥을 쓴다. 굼벵이만도 못 한 속도로, 제노스를 향해 기어간다.
"무엇을 생각했지......."
전투 도끼가 이렇게까지 무거웠었나? 안간힘을 다 써야 겨우 조금 끌고 올 수 있을 따름이다. 손가락 끝에 제노스의 몸이 닿는 것 같자 리베리우스는 도끼자루를 지지대 삼아 상체를 일으켰다. 숨을 몰아쉬는 입에서는 침이, 뒷목과 관자놀이에서는 폭포수같은 땀이 흘렀다.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부연 시야 너머로 제노스가 보인다. 허공을 좇던 것 같던 제노스의 눈동자는 얼마 안 가 리베리우스와 시선을 맞춘다. 그 눈동자 또한 생기가 없다. 모든 것을 불사른 뒤의 적막이 그 곳에 있었다.
리베리우스는 그것이......
"...... 충분히 즐거웠나......?"
......
리베리우스가 무너졌다. 더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풀썩 소리와 함께 엎어지자 풀린 눈으로 제노스의 턱을 바로 코앞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다.
"...... 나는...... ......"
제노스의 숨이 꺼져간다.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을 리베리우스는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옳은지 모르겠다.
"......"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 곳, 세상의 끝에는 오로지 너와 나 둘 뿐이니까.
"계속, 널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어."
리베리우스가 자조했다. 말을 듣지 못 할 상대에게 말을 거는 건 서로 똑같구나.
"타협의 의지가 없는, 세계의 위험 요소는 제거하는 게 맞으니까... 그게 옳으니까. ... 그 이전에... 네가 미웠으니까, 너를 증오했으니까......"
눈이 감긴다.
"............ 그런데 지금은 널 살리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
눈을 감는다.
"끝까지 내 말을 전혀 안 들은 개같은 자식........."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전투를 했다. 더없이 시원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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