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의... 글조각



#파판14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경 쓰시는 분들께는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만약 이 문제로 독백 감상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리베주한테 스포 없는 요약을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젬 = 196인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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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설명]
리베리가 톡방에서 상태창을 말했더니 상태창이 열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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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과 차원 사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첫 번째 아젬은 좆되는 느낌을 받아 몸을 벌떡 일으킨다. 허둥지둥 자세를 잡으며 앉은 아젬이 심각한 표정으로 0번째 리베리우스의 차원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을 본 또다른 아젬이 아젬의 옆으로 기어와 기웃거린다.)

- 왜 그래? 무슨 일 있니?
- 0번째 "내"가 캐릭터 특성창을 열었어.
- 오.
- 특성창을 열었다고? 어떻게?
- 초차원 오픈 카톡방에서 이용자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야.
- 이런 일까지 생길줄은 예측하지 못 했는데.
- 역시 미리 조치를 취해뒀어야 하나? 리베리우스한테 나쁜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 하지만 우리가 개입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굳이 건드릴 이유도 없잖니.
- 그건 맞아.
- 그건 맞아.
- 건드리는 게 더 싫어.
- 리베리우스는 어쩌지? 우리와 우리의 세계가 창작물이라는 걸 알면 안 되는데.
- 그러게 리베리우스가 초극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흡수하자니까.
- 아냐, 그래도 상태창을 연 것만으로 거기까지 도달하지는 않을 확률이 더 높잖니. 마법의 일종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더 높아.
- 그건 더 살펴봐야 해, 왜냐하면 상태창이 차원적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단서가 리베리우스한테 주어졌거든.
- 누가 그런 말을 한 거야?
- 초카방 이용자가.
- 젠장! 욕도 못 하겠구나.
- 그래도 역시 나는 리베리우스가 진실에 도달하진 못 할 거라고 보는 입장이란다.
- 나 역시 그래. 추가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을 거야.
- 나 또한 나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야. 예상치 못 한 사태임은 확실하지만 과하게 신경을 기울일 사안은 아니라고 봐.
-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선 기억을 지우는 게 깔끔하지 않겠니?
- 우리의 걱정을 덜겠다고 우리와 독립적인 개체의 기억을 건들겠다고? 그건 이기적인 선택이야.
- 다른 이야기 미안한데, 나의 영웅은 리베리우스가 아니었어서 그런데, 리베리우스가 이 사안을 더 탐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니?
- 음.
- 나라면 할 거야.
- 나도.
- 나를 물은 게 아니라 리베리우스를 물은 거야.
- 그런데, 봐봐, 상태창은 리베리우스만 쓸 수 있잖아. 본인이 특수 케이스라는 걸 안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려 하지 않겠니?
- 오, 나라면 정반대로 행동할 거라고 판단할 거야. 보편적 활용 방안을 내놓을 수 없다면 굳이 더 탐구할 필요가 무엇 있겠니?
- 빛의 전사니까 특별한 거라고 넘어갈지도 모르겠구나.
- 아젬 만세야.
- 아젬 만세.
- 아젬이라는 두 음절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
- 자화자찬이 수준급이구나.
- 그래도 거부감 정도는 심어두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단다.
- 앞선 얘기를 반복하게 하지 마렴.
- 어느 쪽으로 흘러가든 리베리우스의 이야기에서 물러난 우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야.
- 그렇지만 나는 리베리우스가 우리의 진실에 가까워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야.
- 신한테 기도해볼까? 처음 해보는 거라 조금 설레는구나.
- 나는 조디아크한테 할게.
- 혹시 어둠의 사도니?
-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렴.
- 하이델린님이 정석이잖니 이 배신자야.


(리베리우스의 차원이 시간을 멈춘다. 첫 번째 아젬이 차원을 양손으로 꾹 붙들고 있고, 아젬들의 수다가 잠시동안 멈춘다.)

- 첫 번째 나야. 왜 시간을 멈췄니.
- ......
- ......
- ......
- ...... 리베리우스가 alt f4를 입력했어.

(침묵.)

- 단축키 설정 안 해놨니?
- 해놨겠니? 플레이어가 없는데?
- 지금 우리 차원 설정대로라면 운영체제 기반 명령어가 실행되지 않아?
- 게임 설정이 우선이 아니라?
- 우리 차원이 게임을 그대로 가져온 차원이 아니라서 안 될걸?
- 그럼 0번째 나의 차원은 이제 삭제되는 거야?
- 삭제돼?
- 삭제하게 둬?
- 삭제시킬 거야?
- 삭제되게 해야지?
- 삭제 못 되게 막아야지?
- 왜 막아?
- 막고싶다는 추동이 생겼잖니?
- 삭제를 막고 싶다는 정서가 지금 이 사태를 인지한 나들의 7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 맞아. 나는 삭제를 막고 싶다고 생각해.
- 이렇게 지극히 허무하게 죽는 걸 보고싶었던 게 아니야.
- 하지만 그건 내가 늘 느끼던 감정이잖아.
- 맞아.
- 나는 아모로트가 멸망하는 것도 보고싶지 않았어.
- 불타는 고향의 하늘을 보고싶지 않았는데.
-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기에 멸망을 방치했었고.
- 우리의 고향은 멸망하도록 방관한 우리가 리베리우스의 죽음을 막을 권리가 있니?
- 공정함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 죽음을 막지 말아야 해.
- 이것 또한 리베리우스가 만들어낸 미래이자 삶 중의 하나야.
- 하지만 0번째의 내가 없었으면 우리는 우리가 되지 못 했을 거잖아.
- 은혜갚기라는 거지.
- 그래도 안 돼. 규칙에 예외를 둘 수는 없어.
- 우리는 리베리우스의 주체성에 개입해서는 안 돼.
- 0번째 나를 멸망에서 구한다면 다른 '실패한 빛의 전사'를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 나는 개입하지 않기로 이미 정했잖아.
- 만약 가능했다면 나도 내 영웅을 살리고 싶었어...
- 나도.
- 나의 영웅도.
- 하지만 그건 생각해야 해. 0번째 나는 우리의 고향 외의 다른 차원에도 인연이 있어.
- 0번째 내가 죽으면 분개할 초차원 존재들이 꽤 있어.
- 싸우러 쳐들어 와?
- 우와. 내가 싸울래.
- 나도.
- 나도.
- 나도.
- 제발 정신을 좀 차려 너네가 이러니까 내가 정신줄을 잡아야 하잖아.
- 고향 차원의 안위를 생각해서라도 0번째 나를 케어해야 한다는 말이지?
- 하지만 고향 차원이 멸망하는 것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 우리가 차원 관리자인 것도 아니잖아?
- 우웩.
- 진짜 싫어.
- 우리 중 하나를 0번째 나의 차원의 관리자로 앉힐까? 그러면 차원을 관리하는 게 의무가 되잖니.
- 첫 번째 나야.
- 싫어.
- 싫구나.
- 진짜 싫어.
- 진짜 싫구나.
- 그럼 다른 나 중에는 없니?
- 있겠니?
- 일은 완전 극혐이란다.
- 아젬 말고 빛의 전사 출신인 나한테 맡길까.
- 그건 더 안 될 것 같은데.
- 0번째 나를 질투할 것 같단다. 실패한 빛의 전사들뿐이 없잖니, 우리한테는.
- 그들이 차원 관리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우리가 감시하는 건?
- 그럴 바에는 그냥 우리가 관리자를 하고 말지.
- 이 안은 폐기하는 걸로 하자꾸나.
- 이야기를 원래대로 되돌리자. 그래서 우리는 리베리우스한테 개입해도 될까? 안 될까? 좋은 의견이 있는 나 있니?

- 잠깐만. 초차원 오픈 카톡방의 이용자한테서 좋은 의견이 나왔어.
- 오.
- 소개해주렴.
- 무엇이니?
- '타 차원의 개체와 리베리우스 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된 사건을 리베리우스 고유의 사건으로 인정한다면, 리베리우스와의 교류로 인해 발생한 타 차원의 개체 주도의 차원 복구 또한 리베리우스 고유의 사건으로 인정해야 한다.'
- 검토할만한 가치는 있네.
- 흠.
- 즉 우리를 주체적인 결정자가 아니라 도구적 객체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니?
-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 말장난이로구나.
- 하지만 마음에 들어.
- 그럼그럼. 우리는 우리의 의지 없이 휘둘렸을 뿐이야.
- 웃기네.
- 대다수의 내가 이 논리를 받아들여 0번째 리베리우스의 차원을 구제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 같은데, 내가 파악한 것이 옳니?
- 나는 이견 없어.
- 나 또한.
-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 사람 죽는 걸 보는 것도 기분이 좋진 않잖니.
- 좋아, 그러면 한번 삭제시켰다가 다시 복구시키는 것에 대한 거수 투표를 진행하도록 할게. 이 자리에 참석한 나는 이 제안에 찬성한다면 모두 손을 들어주렴.

- 그런데 이것은 미봉책이라는 걸 다들 알 거야.
- 그럼.
- 물론이지.
- 우리의 질문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어.
- 리베리우스의 생명의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서 경험에 의거해 행동해도 괜찮은가? 간단히 말해, 우리가 리베리우스를 살려도 되는가?
- 토론할 나.
- 나.
- 나.
- 말은 안 해도 되니까 손만 들렴.
- 나.
- 여기 모인 나들이 한꺼번에 말하면 시끄러우니까 말 하지 말라고.
- 논거 준비 시간이 필요하니? 얼마 정도면 될까?
- 이번 토론에서 결정된 내용대로 우리의 행동 방침이 수정되는 게 맞니?
- 아젬 출신의 나 말고 빛의 전사 출신의...
- 통계 데이터를 보면...
- ...
- ...
- ...







- 그래서 차원 전쟁은 언제 하러 가니?
- 넌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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