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폐

톤또





이찬영이 죽었다. 내가 죽였다. 직접 숨통을 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죽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대가로 내 숨통이 트였다. 나는 영원히 이찬영의 숨을 쉬었다.











날 때부터 몸이 약했다. 남들보다 한 뼘 정도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를 가졌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진짜 좆같은건 몸뚱아리 중앙에 떡하니 자리 잡은 폐 두 짝이었다. 양수로 꽉 차오른 폐를 가진 채 세상밖에 던져졌으니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게 당연했다. 어미의 품에 안겨보기도 전에 인큐베이터에 갇혔다.



남들은 뛰어다닐 때 나는 빠르게 걷지 말라며 혼이 났다. 소희야 천천히 걸어. 귀에 딱지가 백만 겹 쌓일 만큼. 뛰는 건 엄두도 못 냈다. 그랬다간 정말로 죽을 것 같아서. 폐가 압축기에 터지는 고통. 한계치까지 차오른 숨. 헐떡거리는 입으로 흘러드는 식은땀. 빠른 걸음 몇 번이었을 뿐인데 병신 같은 폐는 그마저도 버티질 못했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나는 학교 대신 병원에 갔다. 병실에 가만히 누워 엄마가 틀어놓은 지루한 뉴스를 텅 빈 눈으로 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티비에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또래들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짜증나. 나는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들어 아무렇게나 채널을 돌렸다.



“고래는 물 속에서 두 시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폐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신기한 동물이죠?"


대충 채널을 몇 번 돌리자 지식채널에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리모컨을 누르던 손가락을 멈추고 화면 속 고래를 멍하니 눈으로 좇았다. 숨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그 몸짓이 부러웠다. 긴 시간 숨을 참아내는 그 크고 단단한 고래의 폐가 탐이 났다.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고래가 되고 싶었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기겁을 하며 단칼에 거절했다. 나는 포기를 몰랐다. 결국 엄마는 항복했다. 사실 내 고집 때문이라기보단 수영이 폐활량 높이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의사의 말이 엄마를 설득하는데 9할을 차지했을 것이다.



동네에서 제법 큰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게 됐다. 거기서 이찬영을 처음 만났다. 일곱 살의 이찬영은 한마디로 벙어리에 울보였다. 그런데 이 벙어리울보는 나만 보면 졸졸 쫓아왔다. 딱히 말을 거는 것도 아니고 같이 놀자고 하지도 않았다. 왜 자꾸 따라다니냐? 물으면 입을 앙다문 채 말이 없었다. 고개를 푹 숙여도 벌겋게 익은 그 애의 귀는 숨겨지지 않았다.


이찬영은 물 밖에서는 거북이였고 물 속에서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중학생 이상만 들어가는 상급반에서 유일하게 나이가 한 자릿수인 사람이 이찬영이었다. 게다가 상급반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다. 수영 신동이 나타났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이찬영이 싫었다. 부러움이 심술로 터져 나왔다.











“따라오지 마.”


그날따라 내 뒤로 들려오는 이찬영의 발소리에 짜증이 났다. 확 뒤돌아 쏘아붙이자 이찬영은 또 바닥만 쳐다보며 발끝을 통통거렸다. 찰박거리는 마찰음만 둘 사이에 울렸다. 날카로운 말투에 쫄은 건지 이찬영의 어깨가 잔뜩 움츠렸지만 절대 도망가지는 않았다. 걔는 그랬다. 맹한 얼굴과 다르게 고집이 나만큼 셌다. 야. 어깨를 툭 치자 흠칫 고개를 들어 보인 이찬영이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작게 무어라 말했다. 너무 작아서 들리지도 않았다.



“뭐라고? 크게 말해.”

“…형이랑 같이 수영하고 싶어요.”



이찬영과 나는 같이 수영할 수 없었다. 나는 초급반이고 걔는 상급반이었으니까. 평소였다면 너랑 나랑 반이 달라서 안 돼 하고 말았을 일이었지만 그날은 내 자격지심이 유달리 꿈틀거렸다. 지금 상급반이라고 자랑하냐? 너도 내가 우스워? 수영을 배우기엔 몸이 작고 약한 탓에 같은 수영부 또래들에게 무시당했던 서러움이 기어이 폭발했고 그 불똥은 이찬영에게 고스란히 튀었다.



이찬영을 밀치고 무작정 상급반 레인으로 갔다. 초급반보다 두 배는 깊어 바닥이 보이지도 않았다. 시커멓게 울렁거리는 물이 꼭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무서웠다. 그래서 화가 났다. 고래가 되고 싶었는데 정작 나는 거북이도 못 됐다. 뒤따라오던 이찬영이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크게 말하라니깐. 나는 보란 듯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찬영의 외침이 귓가에 웅웅거리며 울려 퍼졌다.



호기롭게 뛰어든 물속은 춥고 어두웠다. 발이 닿지 않는 건 예상을 뛰어넘는 공포였다. 나는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동안 배웠던 수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점점 숨이 차오르더니 폐가 터질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살려주세요.


아무한테나 빌었다. 나 좀 살려달라고. 죽기 싫다고. 멀리서 들려오는 커다란 마찰음을 뒤로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이찬영의 얼굴이었다. 울면서 뭐라뭐라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그럴 정신이 없었다. 와중에 이찬영이 날 구했다는 건 알았다. 그 뒤로 이찬영을 마음껏 미워할 수 없었다. 생명의 은인을 미워할 만큼 심성이 고약하진 못했다.


솔직히 이찬영과 노는 건 재밌었다. 한 살 차이지만 생일로 따지면 고작 4개월밖에 차이가 안 났다. 그래도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르게 했다. 마지막 심술이었다. 자존심 상했지만 가끔 이찬영에게 수영도 배우면서 나름 친해졌다. 그리고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이찬영은 여덟 살에 미국으로 갔다.



“형 저 미국 가도 잊으면 안 돼요.”

“이제 한국 안 올 것처럼 얘기하네.”

“한국 언제 올지 몰라요. 그러니까 저 잊으면 안 돼요. 약속해요.”

“너 하는 거 봐서.”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울먹거리는 이찬영을 앞에 두고 괜히 틱틱거렸다. 아쉬워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이찬영은 나를 뚫어져라 보더니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피할 새도 없이 말캉한 촉감이 입술에 퍼졌다. 뭐야? 그대로 굳어버린 나를 두고 이찬영은 귀를 붉히며 웃었다.


“이제 못 잊겠죠.”

“야, 너…”

“잊지 마요. 그럼 진짜 배신자.”



그러더니 흘깃 째려본다. 첫 뽀뽀를 그렇게 벙어리울보에게 뺏겨버렸다. 작전성공이네. 절대 못 잊겠다.











하지만 시간은 첫 뽀뽀 같은 건 우습다는 듯이 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런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들보다 늦게 입학한 학교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남은 시간은 수영에 꼴아박았다. 천성이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수영을 하기엔 턱없이 작은 몸은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그게 나를 더 독하게 만들었다. 시합에서 지는 날이면 분에 못 이겨 기록을 깰 때까지 물 밖으로 안 나왔다. 작은 소희가 맵다. 다들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 악바리 근성 때문인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수영으로 전국에서 꽤나 이름 좀 날렸다. 이제 폐가 안 좋은 건 전생같이 느껴졌지만 의사는 항상 나에게 당부했다. 내 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그때마다 나는 돌팔이새끼라고 속으로 씹었다.



수영에 조금이라도 발 담가봤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고 수영부 주장까지 꿰찼다. 전국에서 수영 좀 한다는 애들은 다 모이고 수영 국가대표는 다 여기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학교였다. 멀대같이 키 큰놈도 보디빌더같이 덩치 큰 놈도 나한텐 수영으로 쨉이 안됐다. 수영부에 들어간 순간부터 쭉 1등 자리에는 이소희 석 자만 쓰였다.











아침부터 교실이 시끄러웠다. 전학생이 온다고 했다. 고삼에 전학 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 시끄러울 만했다. 전학생이 뭐라고 난리야. 나는 책상에 엎어져 졸린 눈을 감았다. 일 년을 꿇어서 사실상 스무 살인 나는 그것도 성인이라고 자잘한 것엔 별 감흥이 없었다. 전학생도 수영부래. 그 말에 엎드려 있던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다. 수영부? 발끝에서부터 흥미가 돋았다.


전학생은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앤톤 리. 미국놈이라 그런지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잘생겼다. 남자 보고 이런 생각 잘 안 하는데 잘생기긴 더럽게 잘생겼다. 근데 피는 한국인 아니야? 미국에서 자라면 다 저렇게 되나. 남은 자리가 내 옆자리 뿐이라 당연히 전학생과 짝이 됐다. 걔는 자리에 앉자마자 내 어깨를 톡톡 쳤다.


“형 저예요.”

“…응?”

“저라구요. 찬영이.”

“그게…누군데?”



찬영? 너 누군데? 나는 뭔 소리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전학생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망울로 폭탄발언을 했다.


“형 진짜 너무해요. 제 첫 키스 뺏어가 놓고 잊은 거예요?”



뭐?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첫 뭐? 나는 여자친구도 한번 안 사귀어봤는데. 썸도 한번 안 타봤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입이 떡 벌어진 나와 달리 걔는 뭐가 좋은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수줍어 보이기까지 했다. 귀는 왜 빨개지는데? 순간 머릿속에 빔프로젝터가 켜진 것 마냥 한 장면이 재생됐다. 형 저 잊으면 안 돼요 하며 뽀뽀하던.


“…이찬영?”



벙어리울보가 앤톤 리가 됐단다.










반가움은 잠깐이었다. 수영부 첫날 테스트에서 이찬영은 너무도 쉽게 내 기록을 밟아버렸다. 3년 내내 굳건했던 수영부 1등 자리가 바뀌었다. 1등 앤톤 리. 2등 이소희. 그 소식을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곧장 학교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주먹이라도 한대 꽂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영장 문을 열자마자 이찬영이 보였다.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는 이찬영이.



"아."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주먹을 내리꽂겠다는 생각은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한참을 발이 땅에 붙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서 이찬영을 눈으로 좇았다. 창문 너머로 들어온 햇살이 이찬영을 완연히 뒤덮었고 물방울에 반사된 빛이 쉴 새 없이 아른거렸다. 그 속에서 헤엄치는 이찬영의 모습은 마치,



고래 같았다.



이찬영은 10년 만에 고래가 되어 나타났다.











“한국엔 갑자기 왜 온 거야?”



왜 와서 내 1등을 뺏어가.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보고 싶어서요. 누가? 있어요, 비밀. 그래라. 사실 하나도 안 궁금했다. 얼른 보고 미국으로 가버려. 이 말도 속으로 꿀꺽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찬영을 못 이겼다. 이찬영은 50m를 25초에 끊었다. 나는 26초였다. 고작 1초 그게 뭐라고 사람 피를 말렸다. 더 열이 받는 건 이찬영은 기록 따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그냥 수영 자체에 별로 흥미가 없어 보였다. 너는 수영 왜 하냐? 그것도 비밀이란다. 비밀일 것도 쌨다. 재능충 새끼. 충? 그게 뭐예요? 몰라도 돼, 양키야.


시합에서 이찬영에게 기록으로 질 때마다 밤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분해서 죽을 것 같았다. 이찬영 앞에서 나는 거북이었다. 고래가 된 줄 알았는데 고작 거북이 새끼였다. 그래서 이찬영을 이기면 꼭 고래가 될 것만 같았다. 이찬영은 항상 내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매번 같이 하교했다. 걔는 가만히 나를 구경하고 연습은 나만 했다. 그게 진짜 꼴 받았다. 하지만 이찬영이 싫진 않았다. 1등 자리를 뺏겼다고 해서 그 옛날 여덟 살의 이소희처럼 못되게 굴만큼 철이 없지도 않았다. 평소엔 잘만 떠들면서 지냈다. 그러다가도 시합에서 이찬영에게 진 날에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집에 가는 길 내내 눈도 안 마주쳤다. 열등감까진 아니었고 자격지심 쪼끔 그래 그거였다.








“사귀는 사람 있어요?”


뜬금없는 물음에 눈만 끔뻑거렸다. 겠냐. 그럼 사겼던 사람은요? 아 겠냐고. 슬슬 짜증이 났다. 모솔이라고 호구조사 하는 거야 뭐야. 얼굴을 확 구기는 나를 보며 이찬영은 뭐가 만족스러운지 배시시 웃었다.


“다행이다.”

“뭐가.”

“완전 배신자는 아니었네요.”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저 놈의 귀는 또 빨개지네.



“저도 없어요. 없었어요.”

“의외네. 여자 존나 많을 것 같이 생겼는데.”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그러더니 흘깃 째려본다. 여자 많아 보인다는 거 칭찬 아닌가. 쏴리. 형은 왜 없었어요? 혹시 저랑 첫 키스해서 그런 거예요? 푸학.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었다. 야 키스 아니라고. 그거 뽀뽀였다고. 뽀뽀? 그게 키스랑 뭐가 달라요? 뽀뽀는… 한국말이고 키스는… 영어지. 그니까 뽀뽀도 영어로 키스인 건 맞는데... 아 아무튼 달라 새꺄. 그리고 그거 좀 잊어 언제 적이야. 그걸 어떻게 잊어요? 제 첫 키스 뺏어갔잖아요. 야 누가 뺏어가 네가 멋대로 한 거잖아. 아 됐어 꺼져 꺼져. 남자새끼 둘이서 뽀뽀니 키스니 남사스러웠다. 아 더워. 3월인데 왜 이렇게 열이 나는지 연신 부채질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이찬영이 나를 이겨도, 내 1등 자리를 빼앗아도 그게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연히 기분이 좋은 건 아니고. 그니까 다른 새끼들이었으면 죽여버리고 싶었을 텐데 이찬영은 그냥… 모르겠다. 걔는 나한테 고래 같은 존재였다. 동경의 대상 뭐 그런 거였다. 나보다 어린 놈한테 이런 감정이 드는 게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난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이찬영을 동경한다. 나의 고래. 이제 나는 이찬영을 이겨 먹고 싶지 않아졌다. 대신 고래 옆에서 함께 수영하고 싶었다. 작은 소희가 덜 매워졌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즈음부터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잠잠했던 폐가 조금씩 경고를 보내는 듯했다. 잊고 있었나 본데 시한폭탄이 아직 여기 있다고. 그 경고를 애써 무시했다.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와도 대충 물로 씻어냈다. 병원엔 가지 않았다. 가봤자 수영 금지령이 내려질게 뻔했다.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버텼는데. 국가대표를 눈앞에 두고 포기할 순 없었다.



기록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점점 숨이 버거운 일이 잦아졌고 이러다 진짜 죽겠다 싶은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내 폐가 병신인 건 아무도 몰랐다. 이찬영도 몰랐다. 나는 동정심이 제일 싫었다. ‘폐가 병신인데도 수영을 잘하는 이소희’ 같은 타이틀 따위 필요 없었다. 아무런 건덕지 없이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했다. 아프면 아픈 대로 숨이 차면 차는 대로 죽을 것 같으면 그런대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일주일 앞두고 수영부 마지막 시합이 열렸다. 그날 아침부터 기침이 유독 심했다. 시합 직전까지 마른기침이 나왔다. 이찬영의 걱정 가득한 물음에도 괜찮다며 속에서 올라오는 피를 삼켰다. 들키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핏물을 삼켰더니 도저히 비릿한 맛을 참을 수가 없었다. 화장실 세면대를 양손으로 집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꾸역꾸역 차 있던 피가 한데 뭉쳐 쏟아져 나왔다.


“안 괜찮잖아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언제 왔는지 내 뒤에 서 있는 이찬영이 거울 속에 비쳤다. 이거 뭐예요. 왜 이래요. 어디가 아픈 거예요. 질문을 퍼붓는 이찬영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알 거 없잖아. 대충 입을 씻어내고 나가려는데 손목이 붙잡혔다.



“왜 알게 없어요?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제가,”

“네가 뭐. 알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말을 끊고 쏘아붙였다. 폭발하려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몸이 벌벌 떨렸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안 그러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아서. 내 폐가 시한폭탄이래. 병신이래. 나 이러다 진짜 뒤지나 봐. 나 진짜 열심히 했는데. 수영만 보고 살았는데. 그게 내 전부였는데. 이찬영에게 모두 털어놓을 것 같아서. 이찬영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나는 이찬영을 거칠게 밀어내고 숨 막히는 정적에서 뛰쳐나왔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몸을 풀었다. 찬물로 몸을 적시고 4번 레인 앞에 섰다. 삐- 소리가 들리자마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악물고 팔다리를 뻗었다. 숨이 차오르고 폐가 찢길 것 같아도 정신력으로 버텼다. 물속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숨이 차도록 빠른 시간을 필사적으로 쫓았다.


마지막 터치를 하고 물 밖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 기록은 여전히 26초였다. 그런데 내가 1등이었다. 이찬영은 27초. 2등이었다.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몰려왔다. 나는 레인 밖으로 나오는 이찬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남아있는 모든 힘을 실어 주먹을 갈겼다.


“이 씨발새끼야!”

“…..”

“누가 너보고 져달래? 내가 우스워?”



나는 안다. 이찬영이 일부러 져준 것을. 피를 토하는 나를 보고 이찬영이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자존심이 짓밟혔다. 나의 고래가 나한테 졌다. 내가 불쌍해서. 고래가 나를 동정한다. 비참해서 죽고 싶었다. 이찬영은 거칠게 돌아간 고개를 내버려둔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벙어리새끼. 나는 악을 쓰며 울었다.








나한테 처맞은걸 까먹은 건지 이찬영은 그날도 저녁까지 나를 기다렸다.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이찬영도 연습을 했다. 하루 종일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시합 다시 해볼래요? 연습이 끝나갈 즈음에 이찬영이 먼저 입을 뗐다.


결과는 뻔했다. 내가 졌다. 나는 이찬영을 절대 이길 수 없었다. 정정당당하게 졌더니 기분이 나아졌다. 지는 꼴은 못 보던 내가 이젠 지고 나서야 속 시원하게 웃음이 났다. 오직 이찬영에게만 허락된 패배였다. 이찬영이 뭐라고. 그니까. 걔가 뭐라고. 내가 진짜 제대로 미쳤나보다. 나는 왜 이찬영을 이기고 싶지 않을까. 결론은 언제나 하나였다. 이찬영은 나의 고래니까. 그 외에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어쩌면 다른 이유일까봐 무서워서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넌 꿈이 뭐냐?”



발만 담근 채 나란히 앉아 물 위로 울렁거리는 달을 멍하니 보다 물었다. 꿈이요? 그런 거 없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싱거웠다. 뭐야 자라나는 청소년이 꿈도 없어? 이거이거 안 되겠네. 아 어른인 척하지 마요. 어른인 척이 아니라 어른이야 임마. 나 스무 살인 거 잊었어? 미국에선 우리 친구거든요. 응 아니야 여긴 한국이고 내가 형이야. 약이 올랐는지 째려보는 눈빛이 일곱 살 때랑 똑같아서 와하학 웃었다. 아 웃지 마요. 웃긴걸 어떡함. 아 웃지 말라구요!


“그러는 형은 꿈 있어요?”

“당연히 있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거.”



이찬영은 그런 나를 말없이 볼 뿐이었다. 왜. 뭐. 원래 꿈은 크게 가져야 그 발톱만큼이라도 가는 거랬어. 괜히 틱틱댔다.


“저도 꿈 생겼어요.”

“갑자기? 뭔데.”

“비밀이에요.”



뭔 다 비밀이래. 그러세요 그럼. 벌떡 일어나 발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늦었다 집 가자. 짐을 챙기는 등 뒤로 이찬영이 소희 형 하고 불렀다.


“꿈 이루고 나면 저 형한테 할 말 있어요.”

“누구 꿈? 내 꿈 아님 네 꿈.”

“둘 다요.”


꿈을 두 개나 이루려면 오래 걸리겠는데 그냥 지금 말하지. 안 돼요. 그래 맘대로 해라. 대충 대답하고 짐을 마저 챙겼다. 언제 싸웠냐는 듯 집 가는 길에 이찬영이 어깨동무를 해왔다. 야 무거워. 참아요 오늘 저 때린 벌이에요. 야 그건… 미안. 아팠어? 아프라고 때린 거잖아요. 하여튼 한마디를 안 져요. 져주는 거 싫다면서요. 아오 시끄러! 저 조용히 말했는데…








국가대표 선발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무리하게 연습하지 말고 일찍 집에 가서 쉬라는 코치님 말에 다들 훈련이 끝나자마자 짐을 쌌다. 나도 오늘만큼은 곧바로 집에 갈 참이었다.



“형 오늘 저랑 놀면 안 돼요?”

“내일이 선발전인데 뭔 소리야.”


이찬영이 뚱딴지 같은 소리를 했다. 긴장해서 돌았나. 오늘 한번만요. 싫어 나 피곤해. 대충 손을 휘휘 저으며 돌아섰다. 저 오늘 생일이란 말이에요. 그 말에 빙글 다시 뒤돌았다. 놀자.



이찬영은 놀자면서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대충 피시방이나 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방문하게 된 이찬영의 집은 사람의 온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구도 소파, 식탁, 티비 딱 필요한 것만 있었고 짐이랄 것도 없었다. 요리도 안 해 먹는 것 같았다. 집이 아니라 모델하우스에 더 가까웠다.



"집이 왤케 텅 비었냐. 부모님은?"

"미국에요."

"뭐야, 너 혼자 살아?"

"네. 제가 한국에서 수영한다니까 반대가 심하셔서 그냥 저 혼자 왔어요."

"아니 뭐 하러 한국까지 왔어? 미국이 환경도 더 좋잖아."

"보고 싶은 사람 있어서 왔다니까요."



보고 싶은 사람. 저번에 들었을 땐 관심도 없었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겠다. 그게 누군데? 묻고 싶은데 그냥 입술만 꽉 깨물었다. 왜 짜증이 나지? 이게 무슨 감정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도 너 보고 싶어 해? 글쎄요. 형은 어떨 것 같아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야 모르지. 괜히 틱틱거리면서 눈을 피했다. 안 보고 싶어 했으면 좋겠는데. 이 말은 속으로 또 꿀꺽했다.



대충 거실에 퍼질러 앉아 피자를 배달 시키고 넷플릭스를 보고 게임을 하고 폴라로이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무슨 사진이냐며 질색을 했지만 생일 선물로 한 번만 같이 찍어달라길래 맘대로 해라 그랬다. 그냥 그러고 놀다가 슬슬 졸려서 거실 바닥에 둘 다 대자로 뻗었다. 한참을 천장만 멍하니 보다가 찬영아 하고 입을 열었다.


"나 폐가 병신이야."



폐가 물에 잠긴 채로 나왔거든. 애가 나왔는데 숨을 못 쉬더래. 죽을 뻔했대. 그래서 계속 병원에서 살았어. 그러다 하루는 티비를 봤는데 고래가 나오더라. 너 그거 알아? 고래는 두 시간 동안 숨을 참을 수 있대. 멋지지 않냐.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병신인데. 그래서 고래가 되고 싶었어. 안된다는 엄마한테 떼써서 수영 시작했어. 근데 죽겠더라. 남들은 잘만 하는데 난 너무 아프더라고. 의사가 내 폐는 시한폭탄이래. 언제 터질지 모른대. 근데도 그냥 했어. 좆만한게 수영한다고 무시당하면 이 악물고 더 연습했어. 그 새끼들 결국엔 내가 다 발랐어. 이제 전국에서 내 이름 모르는 수영선수 없어. 나는 내가 드디어 고래가 된 줄 알았다? 근데 갑자기 네가 나타났어. 사실 전학 첫날에 너 수영하는 거 몰래 봤거든. 고래 같더라. 고래는 너였더라. 태어나서 고래를 실제로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 나 원래 누구한테 지고는 못 살아. 근데 너한텐 져도 괜찮아. 왤까. 네가 고래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는 너를.


고개를 돌리자 나를 향해있던 두 눈과 시선이 얽혔다. 이찬영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동정하지 마. 나 그거 딱 질색이야. 괜히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애써 웃어 보였다. 야야 나 괜찮아. 내일 선발전 내가 다 발라. 일부러 오바도 했다. 아 근데 왜 눈물 날 것 같지. 사실 안 괜찮아. 나 솔직히 무서워. 나 이러다 진짜 죽으면 어떡해. 나 올림픽 나가야 되는데. 금메달 따고 싶은데. 어느새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이찬영은 말없이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형 울어도 돼요. 그 말에 나는 아이처럼 울었다. 눈물콧물 다 흘리면서 울었다. 이찬영의 품에서 나는 울보가 됐다.








한참을 잤는지 일어났을 땐 벌써 저녁이었다. 옆을 보자 이찬영이 아이 같은 얼굴로 자고 있었다. 꼭 일곱 살 때의 그 얼굴이었다. 어두운 거실로 들어온 달빛이 이찬영의 얼굴을 비추자 기다란 속눈썹 그림자가 말간 볼 위를 덮었다. 가만히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살살 만졌다.


“어. 깼어?”



이찬영의 눈꺼풀이 예고 없이 뜨였다. 내 손은 갈 곳을 잃고 허공에서 멈췄다. 멋쩍게 웃으며 일어나려 하자 이찬영이 손을 확 잡아끌었다. 나는 억 소리를 내며 이찬영 위로 엎어졌다. 뭐야 갑자기. 당황해서 몸을 일으키려 하자 이번엔 허리를 꽉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이찬영을 덮친 자세로 한참을 서로 말없이 눈만 맞췄다. 아이 같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남자의 얼굴만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가슴 속이 간질거렸다. 폐가 또 말썽인가 보다.


“소희 형.”

“…어.”

“뽀뽀랑 키스 차이점이 뭔지 알려주면 안 돼요?”


상상도 못한 요구에 그대로 벙쪘다. 진짜 선발전 하루 전이라 정신이 나갔나보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뿌리치고 일어나려 했다. 분명 그랬다. 그랬는데. 나도 같이 정신이 나갔나보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조심스럽게 이찬영의 입술 위로 다가가 짧게 닿았다 떨어졌다. 이게… 뽀뽀고. 그다음엔 조금 길게 입을 맞대고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이게… 키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보이는 이찬영은 어쩐지 다른 사람 같았다. 두 눈동자는 까맣게 가라앉았고 이를 꽉 깨물고 있는 탓에 턱 옆으로 근육이 툭 튀어나왔다. 확 몰려오는 민망함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밤이라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한참을 뜨거운 정적에 숨이 막힐 때쯤 이찬영이 픽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성인이 고등학생한테 키스해도 돼요?"

"뭐? 야 언젠 친구라더니 이럴 때만 성인이냐? 그리고 네가 먼저,"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변명은 이찬영이 맞춰오는 입에 속절없이 먹혔다. 순식간에 몸을 뒤집은 이찬영이 내 위로 올라탔다. 이 새끼 키스 안 해 봤다는 거 개구라 뻥이었다. 혀가 얽히고 입술이 빨리고 숨이 가빴다. 첫 키스는 구름을 걷는 것 같다던데. 심장이 간질거린다던데. 이것도 개구라 뻥이다. 내 첫 키스는 락스 냄새가 났고 폐가 터질 것 같았다.









국가대표 선발전 당일날 다행히 컨디션이 좋았다. 기침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올림픽 출전권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이찬영은 시합장에서 날 보자마자 달려왔다.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 오늘따라 괜히 더 다정하게 들리는 것 같아 손끝이 간질거렸다. 나는 눈도 못 마주치고 대충 얼버무렸다. 어 존나 쌩쌩해. 어제 키스 이후로 이찬영과 내 사이가 달라지진 않았다. 그냥 잠결에, 선발전 전날이라 정신이 없어서, 생일이라서.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관계 정리는 선발전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4번 레인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께를 적셨다. 오늘따라 물 온도가 폐를 얼려버릴 듯이 차갑게 느껴졌다. 수영모를 고쳐 쓰고 수경을 조였다. 후. 깊게 숨을 내쉬었다. 팔다리를 탈탈 털며 긴장을 떨쳐냈다. 야 이소희 할 수 있어. 어차피 다 고래밥이야.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3조였고 이찬영은 5조였다. 대기하고 있는 이찬영을 돌아봤다. 주먹을 쥐고 흔들며 화이팅 입 모양으로 나를 응원했다. 이찬영은 무조건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것이다. 여기서 이찬영보다 기록 좋은 선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나만 잘하면 됐다. 이찬영과 함께 올림픽을 나가고 싶다. 거기서 함께 물살을 가르고 싶다. 어쩌면 은메달을 따도 좋을 것 같았다. 금메달을 목에 건 고래를 볼 수 있다면 말이다.



삐-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스타트가 좋았다. 팔도 다리도 가벼웠다. 옆 레인을 볼 정신은 없었지만 내가 선두로 앞서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25m 지점에서 빠르게 턴을 했다. 이제 절반만 남았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아."



폐가 난도질 당하는 고통이 몰려온 건 순식간이었다. 지금껏 느꼈던 통증은 우스울 만큼,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고통이었다. 기어이 시한폭탄이 터졌다. 꿈이 눈앞에서 산산조각 났다. 그 조각들이 나를 어두운 물밑으로 천천히 끌어내렸다. 벌어진 입속으로 물이 쉴 새 없이 들어찼고 팔다리는 차갑게 굳었다.



살려주세요.



그날처럼 빌었다. 나 좀 살려달라고 몸부림치던 여덟 살처럼. 폐에 락스물이 차도록 빌었다.











눈을 뜬 건 꼬박 이틀이 지난 후였다. 죽은 사람처럼 미동도 없이 잠들었다고 했다. 그동안 내 몸엔 이것저것이 붙었다. 산소호흡기도 꼈다. 엄마는 계속 울기만 했다. 왜 우는데. 혹시 나 죽어? 의사가 나 죽는대?



폐를 못쓰게 됐대. 이식받아야 된대. 그 뒤로는 아무것도 안 들렸다. 병신같던 폐가 기어이 죽었다. 그냥 나도 그때 죽을걸. 살려달라고 빌지 말걸. 이제 다시는 수영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나는 거북이도 못 됐다.



이찬영이 찾아왔다. 온몸에 덕지덕지 기계를 붙인 채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날 보더니 일곱 살처럼 울었다. 나는 이제 눈물도 안 났다. 너무 많이 울어서 눈물샘이 텅 비었다. 선발전은?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야 선발전 어떻게 됐냐고. 불안한 마음에 다그쳤다.



"저 미국 가요."



이찬영은 생뚱맞은 소리나 했다. 갑자기 뭔 소리야 미국을 왜 가.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벙어리처럼 서 있던 이찬영이 씩 웃으며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기권했어요. 미국 가서 선발전 나가려고요. 아무래도 한국보단 미국에서 수영하는 게 더 조건이 좋아서요."

"...뭐?"

"다음 주에 미국 가요. 이번에 가면 한동안 한국 못 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야... 이 씨발새끼야."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씨발 뭐? 기권? 난 지금 병신 돼서 다시는 수영을 못하는데 넌 팔자 좋게 기권했다고? 나한테 다시는 없을 기회를 넌 쓰레기 버리듯 그냥 그렇게 내팽겨쳤다고? 씨발 존나 부럽네. 넌 그래도 기회가 또 있네. 넌 미국 가서 국가대표로 올림픽 나가겠지. 어쩌면 메달도 따겠지. 넌 씨발 빌어먹을 고래의 폐를 가졌으니까. 너 같은 새끼 말고 내가 가졌어야 했는데. 그 폐가 내 것이어야 했는데.



말라비틀어진 눈물샘에서 홍수가 났다. 그때 나 살리지 말지 그랬어. 그냥 여덟 살에 뒤지게 냅두지 그랬어. 왜 날 살려서 이렇게 좆같은 삶을 살게 해. 나 폐 기증 못 받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된대. 어쩌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왜 날 살렸어. 왜!!! 나는 악을 쓰며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이찬영이 나를 꽉 안았다. 숨 막히게 안았다. 밀치고 때리고 소리를 질러도 꿈쩍도 안 했다. 거대한 고래처럼.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내 뒤틀린 자격지심이고 화풀이라는 걸. 이찬영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이찬영을 탓했다. 누구라도 탓해야 내가 살 것 같았다.



"미국에서 돌아오지 마. 다시는 너 안 보고 싶어."

"...연락할게요."



연락하지 마. 죽을 때까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등을 돌린 채 나가라고 소리쳤다. 그렇게 나는 이찬영의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폐를 이식 받으면 재활치료 후 다시 수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빌었다. 고래처럼 튼튼한 폐를 달라고. 그렇게만 해준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원망했다. 왜 내 폐는 익사한 채로 태어났냐고.



이찬영이 미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연락은 없었다. 말 존나 잘 듣네. 그래 다 잊어버리자. 수영과 관련된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갑작스런 수술이 잡힌 건 그날 저녁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폐가 기증되었고 당장 수술실에 들어가게 됐다. 엄마는 기적이라며 울었다. 기적인가. 누군가 죽음으로써 내가 살아난 게 그게 기적이 맞나. 꼭 내가 폐를 달라고 빌어서 그 사람이 죽은 것 같았다. 남의 목숨을 앗아간 나쁜 놈이 된 것 같았다. 수술대에 누워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고 빌었다. 이왕 나쁜 놈 된 거 염치없지만 제 소원 꼭 들어주세요. 저한테 고래처럼 튼튼한 폐를 주세요.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재활치료도 빼먹지 않고 했다. 반년을 병원에서 썩었다. 이찬영에게선 단 한 번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나는 혹시나 싶어 스팸메세지함까지 뒤지며 궁시렁거렸다.



다시 돌아온 학교는 텅 빈 것 같았다. 없어진 건 이찬영 하나뿐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허전했다. 힘들게 재활치료를 해놓고선 정작 수영부는 그만뒀다. 더 이상 수영장 근처에 가고 싶지 않았다. 지독한 락스 냄새만 맡으면 이찬영이 떠올랐고 락스 맛이 났던 첫 키스가 생각나서 괴로웠다. 이찬영에게 잊혔다는 건 꽤나 속이 쓰린 일이었다. 나쁜 새끼. 마지막까지 못되게 굴었던 건 나였으면서 나는 또 이찬영 탓을 했다.



"야 이소희!"



복도 끝에서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같은 수영부였던 상혁이 있었다. 야 오랜만이다. 너 몸은 괜찮냐? 나 진짜 그날 식겁했잖아. 달려오더니 쉴 새 없이 떠든다. 원래부터 말이 많은 애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도 많고 아는 소문도 많고 한마디로 소식통이었다. 얘라면 이찬영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도 있겠다 싶었다.



"너 혹시 이찬영 뭐 하고 사는지 아냐?"

"이찬영? 걔가 누군데?"



아. 앤톤. 생각해 보니 이찬영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다들 앤톤이라고 불렀지 이찬영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앤톤 미국 갔다던데 연락이 없길래. 뭐 하고 사는지 알아?"



그 말에 상혁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야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앤톤 죽었잖아.











걔 너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실격당했잖아. 그래서 미국 가게 된 거고. 근데 공항 가던 중에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죽었대. 너 진짜 몰랐어? 실격당한 거 일부러 너한테 말 안 했나 보네. 걔가 착하긴 해. 장기 기증도 하고 갔대잖아. 수영 잘했으니까 아마 폐 기증했겠지.



나는 상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장실로 뛰쳐가 변기에 머리를 처박았다. 구역질이 났다. 속에 있는 걸 전부 게워 냈다. 울음이 터졌다. 쓰러지듯 벽에 기대앉아 머리를 쾅쾅 박으면서 한참을 울었다.



나를 구하려고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래서 실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아니 어쩌면 그날 여덟 살의 나를 구하지만 않았어도. 이찬영은 살았을 것이다. 살아서 올림픽에 나갔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헤엄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찬영을 죽였다. 내가 고래를 죽였다.



장기 기증을 받은 사람은 누구의 것을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건 이찬영의 폐다. 이찬영이 죽은 날 나는 폐를 받았다. 기적이 아니었다. 내가 빌었다. 고래의 폐를 달라고. 나 좀 살려달라고. 그리고 매번 그 기도에 응했던 게 이찬영이었다는걸 이제야 알았다. 대체 너는 나를 몇 번이나 살리는 거야. 마지막까지 이기적이었던 내가 원망스러워서 숨도 못 쉴 만큼 울음을 토해냈다.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숨도 쉬기 싫었다. 숨 쉴 때마다 내가 이찬영을 죽이는 것 같아서. 이찬영의 폐로 쉬는 숨은 괴로웠다. 고래의 폐는 나에게 너무 버거웠다. 이 크고 단단한 폐는 숨 쉬는 매 순간 내가 이찬영을 죽였다고 괴롭히는 것 같았다.



졸업식 날 마지막으로 학교 수영장을 갔다. 수술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락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의 고래를 처음 봤던 그날처럼 이찬영이 반짝이게 수영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찬영이 없다. 어디에도 없다. 물 속에도, 물 밖에도. 나는 아직도 그날의 네가 선명한데. 네 옆에서 함께 물살을 가르고 싶은데.



한 번만 더 너한테 지고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깔끔하게 옷을 입고 머리도 열심히 만졌다. 오랜만에 보러 가는 건데 못생겨 보일 순 없지.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납골당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꽃다발도 하나 샀다. 선물하실 거냐고 묻는 직원에게 고백하러 간다고 했다.



납골당 복도를 지나 이찬영 앤톤 리 라고 새겨진 작은 유리 벽 앞에 멈춰 섰다. 이찬영이 죽은 이후로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제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는지 눈이 뜨끈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먹을 꽉 쥐면서 참았다. 모양 빠지게 울면서 고백 하고 싶진 않았다.



너무 늦게 왔나. 쏴리. 그래도 너 생일에 왔으니까 용서해 주라. 나 수술 잘 받았어. 이제 쌩쌩해. 네 폐가 좋긴 하더라. 막 뛰어도 숨도 안 차. 나 수영 다시 시작할 거야. 같이 시작하자. 올림픽도 나가자. 금메달도 따자. 우리 합치면 다른 새끼들 다 고래밥이야. 우리가 다 발라. 찬영아, 나는 여전히 너한테 지고 싶어. 너한테 져도 괜찮았던 건 네가 고래여서가 아니라 너를 좋아해서였던 거 같아. 그니까 나 잊으면 안돼. 첫 뽀뽀도, 첫 키스도, 첫사랑도 전부 네가 뺏어갔으니까 나 잊으면 너 진짜 배신자 되는 거야. 네 폐로 숨 쉴 때마다 네가 보고 싶어. 진짜 보고 싶다. 생일 축하해, 이찬영.



좋아해. 너는 영원히 나의 고래야.



유리문을 열고 꽃다발을 넣다가 그대로 손이 멈췄다. 구석에 세워져 있는 사진을 집은 손이 떨렸다. 이찬영의 생일날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기어이 터졌다. 사진 뒷면에 적힌 편지를 읽고 그대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레인 앞에 서서 수영모를 고쳐 쓰고 수경을 조였다. 눈앞에 물이 까맣게 울렁거렸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락스 냄새가 폐를 가득 채웠다.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나는 이찬영과 함께니까. 숨 쉴 때마다 이찬영을 느낄 수 있으니까. 나는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쉰 채 힘껏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찬란한 파동이 물 위로 퍼졌다.







고래의 폐를 가진 나는 두려울 게 없다.























제 꿈은 은메달 따는 거였어요. 그래서 금메달을 목에 건 형을 옆에서 보고 싶었어요. 제 꿈이 이루어지면 형 꿈도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제가 우리 둘 다 꿈 이루면 하고 싶은 말 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요? 사실은 고백하려고 했어요. 형 때문에 고래가 되고 싶었다고. 어렸을 때 형은 항상 고래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 말을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는 형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고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럼 형이 저를 좋아해 줄까 해서요. 저 수영 관심 없어요. 형 때문에 했어요. 형 보고 싶어서 계속했어요. 꼭 고래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형을 만났을 때 멋지게 고백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다시 만난 형은 고래가 되어 있더라고요. 형이 그랬죠. 제가 고래 같다고. 그치만 저한테 고래는 형이었어요. 우린 서로의 고래예요. 그러니까 저 잊으면 안 돼요. 이번에 미국 가면 또 언제 올지 몰라요. 그래도 꼭 다시 올게요. 그땐 얼굴 보고 말할게요.



좋아해요. 고래만큼.
Report ab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