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집에 침묵을 싫어하는 사람은 살지 않았다. 윤대협은 묵묵히 자신을 바라보는 서태웅의 자귀나무꽃처럼 빽빽한 아래 속눈썹을 구경하며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두 번째 모금을 넘길 때쯤 서태웅이 불쑥 말했다.
“헤어졌어.”
윤대협은 따끔따끔한 탄산이 기분 좋게 식도를 넘어가는 걸 느끼며 눈을 깜빡거렸다. 다소 바보 같다는 자각이 있는데도 굳이 물었다.
“여자친구?”
서태웅은 달리 누가 있냐는 한심한 표정으로 윤대협을 바라보았다. 대답은커녕 끄덕여주지도 않는다.
“음… 한잔할래?”
왠지 헤어진 사람한테 해야 할 것 같은 말을 던져본다. 질색하며 고개를 흔든다. 아까부터 일관적으로 평소의 서태웅이다. 별로 실연의 상처가 깊어 보이진 않았다. 왠지 웃음이 나서 그걸 가리려고 윤대협은 맥주잔을 크게 위로 기울였다. 얼마 남지 않은 맥주엔 거품이 거의 없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즐긴 뒤. 윤대협은 굳이 물었다.
“왜?”
서태웅은 윤대협을 빤히 바라보았다. 윤대협이 맥주를 마시는 걸 구경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평소의 눈빛으로. 나직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졸업하면 결혼하자고 해서…”
윤대협은 한 번에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몇 번 머릿속으로 반복해 본다.
서태웅보다 한 학년 위인 여자친구. 그녀의 입장에선 내년이 대학 마지막 해. 윤대협의 재빠른 머리가 숫자를 계산한다. 입학 전부터 사귀었으니 3년인가. 아주 뜬금없는 제안은 아니다. 프로 선수 사이에서 일찍 결혼해 내조받는 건 복이라고 한다. 무성한 소문에 따르면 서태웅의 여자친구는 활발하게 SNS를 하다 많은 구설에 오르는 모양이었지만. 윤대협은 반쯤 실체 없는 대중의 질투겠거니 짐작했고, 막상 당사자인 서태웅은 여자친구를 나쁘게 말한 적이 없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윤대협 앞에서 아예 여자친구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어쨌든 과한 SNS는 결별 사유가 아니다.
턱을 긁적이던 윤대협은 뭐라도 반응해 보았다.
“독신주의였던가?”
서태웅의 나직한 목소리가 천천히 대답을 내려놓는다.
“그건 모르겠는데…”
윤대협은 서태웅의 자귀나무꽃처럼 빽빽한 아래 속눈썹을 구경했다.
“결혼하면 너랑 못 살잖아.”
서태웅은 그렇게 말했다. 윤대협은 가만히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강렬하게 두 번째 캔맥주가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