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씨발새끼들아 너희 알아서 잘 해 먹고 잘 살아 슈게이징이고 뭐고 니네 다 알아서 처 하라고]

하… 씨발. 인성은 잘 쓰지도 않는 욕을 뱉으며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락 안 된지 삼일 만에 보내는 답장이 달랑 이거 하나라니. 그것도 공연 일주일 남은 시점에, 밴드 안 하겠다고 통보하고는 잠수 탄 일렉이.

일렉, …그러니까 이명현이 갑자기 잠수를 탄 이유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라든가 급박한 상황에 처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단순한 이유로 번진 싸움이었고, 그 싸움에 자신의 자존심이 꺾였다는 이유로 그야말로 탈주를 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삼년을 같이 밴드를 했는데. 겨우 삼일만에 끝이 났다.

음악은 중학교 때부터 김인성이 놓지 않았던 꿈이었다. 가족이 알게 모르게 주는 압박에 못 이겨 전공을 그 방향으론 잡지 못했으나 그래도 인성은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자신은 음악을 꼭 할 것이라는 굳은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인성이 가장 하고 싶었던 건 밴드였다. 중학생 때 어느 밴드의 팬이었던 인성의 친구가, 같이 갈 사람이 없다며 인성을 끌고 간 것이 시작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무슨 노래를 부를지도 몰랐으면서 인성은 그날 관람석에 앉아 그들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니까 열여섯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마치 마라톤 완주를 한 것 같은 것.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다가, 다시 서서히 커지며 그 무대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밴드의 음악소리만 귀에 선명히 들려오는 것. 소리를 지르는 관객들, 그리고 그 관객들의 눈을 보며 오늘 하루에 목숨을 던진 듯 무대를 하는 그들. 그 순간 김인성이 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난 사랑에 빠졌다고.

김인성은 그다음부터 미친 듯이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인성을 끌고 갔던 친구마저 마음이 식어 공연을 더는 보러가지 않게 됐을 때도 인성의 마음은 여전했다. 그 밴드는 인성이 열아홉 살이 되던 무렵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해체를 하게 됐는데, 마지막 은퇴 공연 관람석에서도 (그것도 고등학교 삼학년인) 인성이 있었으니, 그의 사랑 알만했다.

오랜시간 동경을 하다보면 동경을 뛰어넘어 이 사람을 닮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 밴드가 해체되고 나서 인성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학교에 있는 밴드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전교권을 날아다니던 인성이 뜬금없이, 그것도 고등학교 삼학년처럼 제일 중요한 시기에 밴드부에 들어오니 밴드부원들은 다들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학생회장까지 해본 학교의 얼굴인 인성이 밴드부에 들어오는 것은 밴드부의 인기를 더 끌어올리는 것에는 도움을 주었으나, 밴드부원들은 그런 인성에게 고마워하긴커녕 탐탁치 않아할 때가 많았다. 집에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게다가 밴드부에서 노래까지 잘 불러버리니 그 또래의 남자애들에게 시기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다. 그렇다고 해서 인성을 퇴출시키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표팔이를 더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인성 덕분이었으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인성의 밴드부원 생활도 끝이 났다. 고등학교와 멀리 떨어진 대학교로 입학하게 되면서 당시 밴드의 기수도 해체했기 때문이었다. 인성도 현실적으로는 자신이 이제는 음악과 잠시 거리를 두고 현재 전공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언제나 먼저 움직이는 쪽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었다.

인성은 군대 전역과 동시에 한 사이트에 글을 올려 밴드를 같이 결성할 멤버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는 인성과 당시 같은 기수였던 고교 밴드 부원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밴드 CROX 는 삼년동안 활동을 해왔지만 그리 큰 인기는 끌지 못했다. 세상에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내로라 하는 밴드도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인성이 그 모든 것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음악을 사랑해서였다. 공연을 하면 오십명이 겨우 찰까말까였지만 그마저도 감사했다. 학교에서 높은 성적으로 우수장학생으로 선정될 때보다 반밖에 채워지지 않은 무대의 관람석을 보며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행복했다. 무대의 조명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노래는 절정으로 치닫았을 때 자신과 함께 하는 밴드의 멤버들의 얼굴을 둘러보고 있자면 마치 세상엔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은 희열감이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다니.

그것도 신곡을 메탈락으로 할지 슈게이징 스타일로 할지 그 고민하다가 삼일 만에.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밴드 일렉 세션 구합니다. 급함. 급여는 추후 결정.

“하…….”

게시물 업로드를 누른 정인이 머리를 감싸쥐며 책상에 얼굴을 처박았다.

“씨발 공연 일주일 남은 시점에 어떤 또라이 새끼가 이딴 글 보고 연락을 주겠어.”
“저번에도 도경이 아팠을 때 드럼 세션 빨리 구했었잖아.”
“그건 공연 삼주는 남았을 때고, 씨발.”

합주실 책상 위로 주먹을 내려친 정인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암묵적으로 합주실 내에서는 흡연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아무도 예민한 정인을 건들지 못하고 있었다.

정인은 명현과 싸운 당사자였다. 술 먹고 앞으로 할 음악의 장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언성이 높아진 것이 화근이었다. 정인은 명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고 보기좋게 한 대맞은 명현은 다시는 너희 같은 좆같은 새끼들과는 밴드를 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사라졌다.

평소에 하던 공연처럼 관람객이 오십명도 채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공연을 취소하고 양해를 부탁한다고 하겠지만, 하필이면 이번에 올라간 무대는 운 좋게 올라가게 된 한 공연장의 1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매주 한 밴드가 공연장에 오르게 되고, 온라인 송출도 된다고 하니 유명세가 없는 밴드에게는 유명세를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이게 어떻게 잡은 기회인데. 정인이 담배를 빨아들이다가 제 분에 못 이겨 바닥으로 담배를 내던졌다. 의자에 앉은 채 이마를 짚고 있던 인성이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정인의 어깨를 잡았다.

“야, 손정인. 진정하고 정 안 되겠으면 그냥 일렉 없이 편곡을 해버리든가 아니면 공연을 취소하든가….”
“놔, 이 씨발.”

정인이 인성의 손을 뿌리쳤다.

“뭐?”
“부잣집 도련님 김인성씨. 니는 없이 살아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게 곧 돈벌이고 기회야, 알겠어?”

정인이 던진 말에 합주실 분위기가 냉해졌다. 단순히 정인이 언성을 높여서가 아니었다. 저 한 문장에 정인이 지금껏 보컬 김인성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너무도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은 고교 시절 인성과 같이 밴드부였던 베이스 멤버였다. 정인은 그때부터 인성에게 묘한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었고, 인성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같이 밴드 하는 입장에, 그리고 음악 앞에서는 둘 다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성은 알게모르게 자신을 배척하는 것 같은 정인과 다른 밴드 멤버들의 말을 들을 때면 무력해지곤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인과 같이 언성을 높일 수 없는 이유는 정인이 무대를 생각하는만큼 인성 역시도 이 무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성이 애써 웃으며 정인을 달래주려했지만 정인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너 그렇게 쪼개는 게 씨발 마음에 안 들어.”
“…….”
“너 같이 잘난 새끼들 말이야. 굳이 우리 같은 바닥에 들어와서 그렇게 고장난 웃음이나 짓고 있는 거. 씨발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고.”
“형, 정인이형. 형 진짜 취했어요? 그만해요. 인성이 형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지켜보던 예빈이 도저히 안 되겠는지 정인의 팔을 붙잡아 당겼다.

“야, 놔. 이 씨발. 야. 박예빈. 너도 말해봐. 니도 예전에 그랬잖아. 인성이형 같은 사람이 왜 굳이 우리 밴드에 들어와 있는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같이 있으면 존나 꿀리는 거 느껴진다고. 니가 알바 두탕 세탕 뛸 동안 김인성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오는 게 부럽다고.”
“형…. 지금 그게, 그 말이 아니….”

나 모르게 뒤에서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것쯤이야. 다 알고 있었다. 인성은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이 화를 내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는 태도들을 봐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이런 것에 상처받지 않는다. 난 괜찮다. 난 괜찮다……. 이 밴드만 지속할 수 있다면……. 인성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야, 말해보라고. 씨발. 박예빈. 말해보라고.”
“아, 정인이형 제….”

정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정인의 휴대폰으로 쏠렸다. 예빈이 잡고 있던 자신의 팔을 거칠게 뺀 정인이 휴대폰을 들었다.





“어. 태양씨. 일단은 이 코드 대로만 연습해주시면 되고요. 애드리브는 그냥 감이 오시면 넣어주시면 돼요. 오래 세션으로 활동하셨다니까… 특별히 걱정은 없는데요.”
“네.”

그러니까 연락이 왔을 때는, 이게 되네… 이런 생각이나 했다.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으니 그 어떤 기타리스트여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는데,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을 하고서 아무 기타리스트도 아닌 경력이 꽤 있는 일렉이 왔으니 완전히 쌍수 들고 환영이었다. 말을 험하게 하는 정인과 말재주가 없는 예빈, 그리고 도경을 제외하고 나니 남는 사람이 인성 하나여서 인성이 태양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설득을 오랜 시간 동안 시켜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이 구세주 일렉 기타남은 별다른 설득 없이도 공연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요즘 일이 없어서요. 그런 짧고 간결한 답이 끝이었다.
이름은 유태양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봐도 크게 될 사람인지 아닌지 보인다던데. 인성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태양의 이름을 듣고 실감했다. 이름부터 태양이라니. 공인이 될 팔자처럼 보였다.

태양은 공연 기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이 시점에서도 밴드에 꽤 적응을 잘 해주었다. 과묵해 별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이상하게 한 마디 던질 때마다 다른 밴드 멤버들의 마음을 저격하는 면이 있어, 금세 친해졌다. 기타 실력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코드 딴 걸 보여줬더니 그 다음날까지 완곡을 해왔다.

웃기는 사실은 태양이 들어온 이후로 태양이 있는 이 밴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인성 하나뿐이었다는 거다.

이상하네. 어딜 가서든 나만한 친화력이 없는데. 인성은 스스로가 의아했다. 처음엔 낯을 조금 가려도 결국엔 이 사람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부러 더 말을 많이 얹어가며 대화를 이끌어나가다가 결국엔 서로 마음을 열어 친해지곤 했는데. 유태양과는 도저히 사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태양이 특별히 인성에게만 다르게 대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일찍 왔네?”

연습하기로 한 건 오후 두시부터 였으니 앞으로 세 시간이나 더 남아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태양이 합주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전엔 할 일이 없어 합주실에 먼저 와있던 인성이 어색하게 태양을 맞이했다. 태양의 얼굴을 보자마자 고장난 채로 소파에서 일어나는 인성과 다르게 태양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 기타케이스에서 일렉을 꺼냈다.

아니, 사실은 이게 맞지. 어색해하는 게 이상한 일인데. 짧은 시간이긴 해도 얼마 남지 않은 공연을 위해 합주실에서 같이 잠든 것만 사일 째인데 아직까지 불편한 게 말이 되나. 더군다나 나 김인성이. 서로 불편해하는 것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자신만 불편해하고 있으니 인성도 제 속이 답답해졌다. 인성이 눈동자를 굴리며 어색하게 악보를 뒤적일 동안 태양은 엠프와 기타를 연결하고 있었다.

“인성 형.”
“…어?”
“형 따로 연습하실 거 아니면 그냥 저희 둘이라도 맞춰볼까요.”

갑작스러운 태양의 제안에 인성이 소파에서 스프링 튕기듯이 일어났다. 어어, 그래야지. 그러자. 바보같이 답해놓고 바보같이 말한 것을 후회했다. 어어 그래야지 그러자, 가 뭐냐? 나름 밴드의 프론트맨이면 세션을 잘 이끌어줘야 할 텐데. 그것도 못하고 뚝딱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해졌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인성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란함을 껴안은 채 마이크를 잡았다. 태양이 먼저 피크를 잡은 채 기타 줄을 그으며 연주를 시작하자 다음으론 인성의 보컬이 이어졌다. 공연장 셋 리스트에서는 제일 마지막에 부르게 될 곡이었다.

드럼과 베이스, 키보드 없이 단 둘만 맞춰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른 악기 사운드가 없으면 당연히 허전해야 하는데, 허전하기보단 또 다른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기분이었다. 오직 일렉과 보컬 이 두 파트로만 이렇게 풍부한 사운드를 낼 수 있는 곡이었나. 인성은 제가 만든 곡이지만 꼭 태양이 완성해낸 곡 같아 묘한 기분이 느꼈다.

“인성이형.”
“…어?”
“이거 누가 작곡한 거예요?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라는 곡.”
“아… 이거 내가.”

다른 곡은 내가 안 해. 타이틀은 보통 정인이가 만들어. 내가 작곡 실력이 막 좋은 편이 아니라서. 아무리 프런트맨이라지만. 하하, 어색한 웃음까지 섞어가며 인성은 태양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까지 변명을 대고 있었다. 멤버들이랑 수십번은 더 연습했던 곡인데, 왜 작곡가를 물으니 이렇게 부끄러워지는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평소 성격 같았으면 어 내가 만든 거야, 곡 좋지, 하고 너스레나 떨었어야 했는데 말이다.

“좋아서 물어봤어요.”
“…….”
“저 이런 곡 좋아하거든요. 저 여기 세션 한다고 지원한 것도.”
“…….”
“이 곡 때문이었어요.”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그 곡은 인성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만든 곡이었다. 사랑은 날 헷갈리게 하지 않는다는, 유치한 가사에 별 것 없는 멜로디.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곡은 아니었으나 공연 셋리스트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은 곡이 좋고 말고를 떠나서, 그저 이 곡이 가진 의미 때문이었다. 처음 인성이 밴드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작곡한 곡.

그렇기에 얼마 없는 팬들 사이에서도 사실 이 곡은 마지막 곡이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있을 뿐 곡 자체로는 그리 화자 되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인이 만든 타이틀이나 도경이 가끔씩 가져오는 특이한 스타일의 자작곡들이 더욱 관객들에게 먹혔지, 인성이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곡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는 그저 그게 전부였다. 마지막 곡.

유태양은 그 곡을 이 밴드의 세션으로 지원하게 된 이유라고 했다. 김인성은 그 말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았고, 그 감정이… 조금 두려웠다.

어느새 공연 날이 되었다. 밴드를 결성하고 이런 이름 있는 공연은 처음이라 다들 잔뜩 긴장한 채였다. 매번 의젓하게 굴던 인성마저 속으로는 떨고 있었으니 백스테이지의 분위기는 알만했다.

“태양이와는 오늘 이후로 헤어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원래 우리가 한 팀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놀자. 최선을 다해서.”

하이 파이브가 끝나고 무대 위로 올라가자 조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졌다. 미리 세팅 되어있던 악기를 잡자 공연은 시작되었다. 인성은 제 정면에 있는 스크린 속 셋리스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연은 완벽했다. 한 번도 공연이 끝나고 ‘완벽하다’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날의 공연은 완벽했다. 인성은 무대를 끝나고 내려와 자신이 완전해짐을 느꼈다. 마치 열아홉 그때, 공연장에서 사랑했던 그 밴드의 무대를 보고 나왔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다.

무대를 하는 내내 김인성은 유태양을 바라봤다. 각자 포지션 때문에 서로를 바라볼 수 없는 위치이기도 했지만, 꼭 그게 아니었어도 인성은 태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대 위의 유태양은 합주실과 같았지만 또 달랐다. 분홍색의 화려한 조명이 어울리는 사람. 김인성은 유태양을 그렇게 정의했다.

마지막 곡은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이었다. 이 곡을 마친 뒤 쏟아지는 관객의 환호 소리를 들으며 김인성은 고개를 돌려 유태양을 바라보았다. 유태양은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는데도 꼭 눈으로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형 곡.
좋다고 했잖아요, 내가.




정인이 태양을 정식 멤버로 섭외하자는 말을 했을 때 인성은 반대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말에 인성은 정인에게 온갖 쌍욕을 다 들어야만 했다. 네가 드디어 미쳤지. 씨발 새끼야. 너 유태양 같은 일렉 놓치면 우리 좆 되는 거 몰라?

사실 인성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정인의 말이 맞았다. 태양 같은 일렉 멤버는 다시는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꾸만 태양의 영입을 반대하고 싶어지는 건 머리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판단하게 됐다. 데려오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인성은 이 감정에 대해 완벽히 정의할 수가 없어 제대로 태양을 반대할 수도 없었다. 이건, 질투인가? 정식 멤버가 되어 합주실에 자신의 짐을 하나둘씩 놓기 시작한 태양의 모습을 보며 인성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질투인가. 인성은 제 감정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대에 올라가 있는 유태양을 볼 때마다 김인성은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빨라짐을 느꼈다. 분홍색의 조명 아래 기타를 매고서 눈을 감고 있는 유태양.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곡 속에 섞여있는 것 같은 유태양. 이런 기분을 예전에도 느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김인성은 유태양이 자신이 만든 노래를 좋아하는 것이 점점 싫어지기 시작했다. 유태양은 틈만나면 합주실에서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를 연주했다. 예빈이 질리지도 않냐며 투덜거리고, 정인은 지금 프론트맨이 작곡한 곡이라 아부라도 떠는 거냐며 비꼴 정도였다. 인성 역시 태양에게 질린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태양은 꿋꿋했다. 이게 손에 익었어요. 습관이 되어버려서요.

인성이 태양이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를 연주하는 것이 싫었던 이유는 걔가 걔 마음대로 그 곡을 연주하지 않아서였다. 전에 있던 명현은 자신의 마음대로 그 곡을 연주했다. 여러번 편곡해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자신의 곡을 그렇게 마음대로 바꿔버리면 기분나쁘기도 하건만, 하필이면 수정된 버전이 자신의 귀에도 더 좋게 들려서 인성은 화 한 번 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유태양은 아니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인성이 만들어낸 그대로 연주하려 했다. 꼭 오래 전부터 이 곡을 연주해온 사람처럼. 인성은 그게 싫었다.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어서. 자꾸만 마지막 곡이었던 자작곡을 마지막이 아니게 만들고 싶어서. 더 곡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자꾸만 심장을 동하게 하는 유태양이, 김인성은 불편했다.

그러니까 이런 걸 꼭 하나의 감정으로 정의해야 한다면 무슨 단어를 붙여야하는 걸까. 김인성은 고민했다. 유태양의 실력이 부럽고, 질투 나고 밉고. 그러면서도 자꾸만 눈이 가고. 가끔 걔와 걔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벅차오름을 느끼고. 걔가 나와 가까워졌으면 하는데도 어쩐지 편하게 대할 수 없고. 정의를 내릴 수만 있다면 답답해지는 속도 풀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의 내리지도 못하는 이 감정은 인성의 속에 끝도 없이 쌓일 뿐 개운하게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그날은 예빈이 예비군으로 인해 늦어진다고 연락을 한 날이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정인은 제 애인과 데이트를 갔고, 도경에게서는 제 레슨생과의 레슨이 길어지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본의 아니게 연락을 받기도 전에 합주실에 도착해버린 인성은 또 태양을 혼자서 맞이해야 했다.

다른 애들은 둘이 있어도 한 번도 불편했던 적이 없었는데. 벌써 태양이 정식 멤버가 된지 한 달하고도 반이었는데 인성은 여전히 태양과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네 이름이 태양이라 그런가. 진짜 지구와 태양의 거리처럼 가까워질 생각을 안 하네. 그런 멍청한 생각도 하면서.

“형.”
“…어?”
“부탁이 있는데요.”
“응.”
“저희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한 번만 맞춰보면 안 될까요.”
“…또? 그건 연습 많이 했잖아. 그것보단 이번에 정인이가 새로….”
“한 번만요. 기타랑 보컬 두 개만으로는 전에 한 번 한 게 다였잖아요.”
“……그래, 그럼.”

여기서 더 거절하기도 이상했다. 그 짧은 곡 하나 맞춰보자는데 싫다는 사람이 더 이상한 거지. 얜 정말 일부러 그러는 걸까. 내 곡이 좋다고 해줘도 내가 얘만 잘해주거나 그럴 일은 없을 텐데. 인성은 입 밖으로는 내지도 못할 거면서 그런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이크를 잡았다.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헷갈리는 건 나야. 그러니 사랑해서 헷갈리는 거야.

그날, 그 밴드가 해체했던 날. 공연장에서 나오며 인성은 엉엉 울었다. 그 밴드를 다시 볼 수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그 사실도 인성을 슬프게 만들었으나 인성을 제일 울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이 그동안 이 밴드를 좋아한다는 감정보다, 이 밴드가 되고 싶다는 감정이 더 크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이 감정을 모르고 살았다는 게, 이상하게 그 사실이 슬퍼서 인성은 눈물을 쏟아 부었었다. 그날 인성은 집으로 돌아와 무작정 종이를 꺼내들었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 연필을 들고 가사를 썼다. 그게 시작이었다.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헷갈리는 건 나야.

노래의 가사를 부르며 인성은 그런 생각을 했다. 유태양이 이 곡을 좋아하는 게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때 자신의 어렸던 시절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곡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좋아하는 게, 제 어렸을 적 사연을 다 말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쟤를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쟤는 나를 자꾸만 알아버리는 것 같아서. 그러니까 이건 무서운 거다.

방심한 사이에 들어올까 봐.

노래가 끝나자 인성이 마이크를 내려놓고서 제 의자에 앉았다. 묘한 정적이 돌았다. 다른 애들 같았으면 이쯤돼서 장난을 쳤겠지만 유태양 앞에서는 그러질 못했다.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하고 있는 인성을 보며 태양이 입을 열었다.

“형.”
“……어?”
“내가 헷갈려요?”

인성이 고개를 들어 태양과 눈을 마주했다.

“난 형 안 헷갈리는데.”

그러니까 나도 사실 알고 있다. 인성이 중얼거렸다. 내가 왜 무대 위의 유태양을 보고 심장이 뛰는지. 왜 그렇게 유태양은 어렵고 먼 기분이 들었는지. 다가가고 싶다가도 더 멀어지고 싶기도 하고, 질투가 나다가도 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인성은 이런 감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열아홉, 자신이 사랑했던 밴드의 공연을 보고 있을 때와 같은 감정이었다.

정의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정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으니까.






“이 밴드부에 들어오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고교 밴드부라도 오디션은 통과해야만 했다. 음악 쪽에는 아무런 연이 없던 태양은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는 학생들의 맞은편에 앉아 제가 매고 온 기타를 열었다.

“사실은 제가 연주를 할 줄은 모르는데요. 꼭 배워서 연주를 하고 싶은 곡이 있어서요.”

태양의 엉뚱한 말에 학생들은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무슨 곡이기에 밴드부 오디션에서, 연주를 할 줄도 모른다면서 연주를 하고 싶다고 들고 와요.”
“제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곡이에요.”

유태양이 악보를 펼쳐들었다.




사랑은 헷갈리게 하지 않아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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