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음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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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나──'
'어서── 를──'
'── 줘── 제발──'
'좀── 줘요──'
'제발──'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은 청각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러고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그야 물론 생을 마쳐 별의 바다로 돌아간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고 활동을 계속 이어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모성을 벗어나 사망했으니 별의 바다로 가지 못 하리라 예상했건만. 행성 하이델린에서 태어난 생명은 그 어디에서 죽더라도 하이델린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가? 이 예측이 사실이라면 세기의 발견이 될 거다.
그렇지 않다면......
'그게 마지막이라니 절대 용서 못 해......! 일어나란 말이야......!'
귀애하는 어린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이의 분노는 두려울 정도로 매섭다, 어서 화를 풀어줘야 하는데......
머리를 쓰다듬어줄 요량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손가락에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눈을 맞춰 웃어줄 요량으로 눈을 떴다. 그러자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빛이 쏟아져 내렸다. 무어라 말을 하고자 하니 숨이 터져 나왔고, 그제야 나를 둘러싼 동료와 소음과 에테르가 흐르는 감각을 전부 지각할 수 있었다.
나는, 그래, 동료들한테 돌아왔다.
"자네, 정신이 드나......?!"
둥실둥실, 영혼이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다. 멍한 정신으로 시선을 내리니 늘 그렇듯 자랑스러운 쌍둥이의 모습이 양쪽으로 보인다. 연상인 알피노는 내 몸에 치유마법을 걸고 있고, 동생인 알리제는... 울고 있는 건가?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아서 확실하진 않다. 전투 뒤에 수분 손실이 많이 발생하면 회복이 더뎌질 텐데 걱정이다.
눈동자를 바삐 굴리느라 알피노의 질문에 뒤늦게 반응해 버렸다. 대답다운 대답은 하지 못 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다행히 알피노한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던 모양이다.
"아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저 아이가 기쁘다면 나도 기쁘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한테 웃어주었다.
그러면서도 나의 머리는 바쁘게 돌아갔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대한으로. 내가 누워있는 이 공간은 눈에 익은 곳으로 우주선 라그나로크의 내부일 것이다. 일곱의 동료 모두가 선내에 있으니... 내가 전투 중 작동시켰던 비상 탈출 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모양이고. 진심으로 한시름 덜었다.
그리고 동료들을 전송시켰던 그 공간에 내가 있다는 건. 그러니까, 다시 말 해.
"............ 저 지금 살아 있는 건가요...?"
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실하게도 내 질문에 답을 해주는 동료가 있었다.
"그래, 제대로 살아있어......!"
붉은 눈이 특징적이던 그라하는 그 눈가에 눈물방울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말은 대답이기도 했지만 스스로한테 되새기는 말같기도 했다. 울음이 벅차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살아있나요......"
영락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살고싶었나 봐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습관적으로, 좋은 인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웃음이 아니었다. 이들과 함께 할 때면 충족된 마음이 저절로 자아내는 미소가 있었고, 지금 터져나오는 환희는 그것들의 정수만을 모으고 또 압축시켜 가장 순수한 부분만을 남겨놓은 것만 같다.
소리를 낼 때마다 폐가 터질 듯이 아팠지만 멈추지 못 했다. 내 웃음 소리는 피 섞인 기침과 함께였고 온몸을 수놓은 고통이 그 뒤를 따랐다. 머리맡에서 치유사 동료가 내 어깨를 지그시 누른다.
"아직 상처가 깊습니다. 움직이시면 아물지 못 한 부상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간담을 더 서늘하게 할 생각이 아니라면 가만히 있어줘요. 심장이 떨어질 듯한 경험, 이젠 더 하고싶지 않네요."
마도사 동료의 책망하는 듯한 어투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이 불가능한 부탁을 한다고 생각했다. 실없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연다.
"......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몇몇이 몸을 굳히는 게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너희라면 알 거예요, 내가 얼마나 싸움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싸움에 목말랐는지......"
"너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싸움터 속에서 죽을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어요...... 아아... 이번 전투는 정말로 완벽했어요...... 이대로 죽어버려도... 후회는 없을 거라고...... 그럴 것 같았는데......"
"리베리우스! 당신 그렇게 말 할 거야?!"
"... 그런데 나는 살아남았네요."
제노스는 이 곳에 오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숨을 내뱉던 모습을 기억한다.
"너희들과 살아가고 싶었나봐요......"
그리고 그것이 자신과 제노스의 유일한 차이일 것이다. 같이 걸을 수 있으며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지가, 죽어버린 제노스가 채우지 못 했던 결핍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보다 더... 훨씬 더... 너희를 좋아했던 것 같아......"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을 살렸을 것이다. 이 세상은 사람의 마음에 대답해주는 상냥한 세상이니까.
이야말로 세기의 대발견이다.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이보다 놀라지는 못 하며 이만큼 행복하지도 못 하리라. 이제라도 알았으니 괜찮다. 이것만 있어도 나는 괜찮다......
"... 이봐, 정신 차려! 잠들면 안 돼!"
"당신 진짜... 그 말만 남기고 떠나기만 해봐...!"
긴장이 풀렸기 때문일까, 고양감과 함께 다시 한 번 의식이 꺼져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내가 다시 여기로 돌아오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일어나면 동료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줘야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수마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