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원의첫사랑
“야, 너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하냐?”
남성모는 김밥을 씹으며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지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회사 동기인 현수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와서는 주말에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 같았으면 없다고 했을 것이다. 성모는 주말에 집 밖으로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토요일 오전에는 죽어도 늦잠을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수가 덧붙인 말이 제법 흥미로웠다.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인데, 두 시간만 앉아 있으면 십만 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십만 원?”
“어. 식사도 제공이고.”
“뷔페?”
“호텔 예식장이라니까.”
“몇 시.”
오전 열한 시까지 강남에 있는 호텔로 오면 되고, 신랑 측 대학 동기인 척 축하해 주다가 식 끝나면 밥 먹고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신랑이 워낙 집안 좋은 사람이라 하객 숫자를 맞춰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서 친구들을 많이 부르지 못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부잣집 아들이 친구가 없을 수도 있나? 돈 많은 놈들도 참 불쌍하게 산다. 성모는 마지막 김밥을 입에 넣고 업체 연락처를 받아 적었다.
토요일 오전, 남성모는 평소 출근할 때보다도 말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결혼식장에 청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오랜만에 검은 슬랙스를 꺼냈고, 셔츠는 전날 밤 다림질까지 해 두었다. 지하철에 앉자마자 업체에서 보낸 안내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호텔 주소와 집합 장소, 주의 사항이 길게 적혀 있었다. 신랑 측 하객으로 참석할 것, 사진 촬영 시 자연스럽게 웃을 것, 신랑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것. 성모는 대충 읽다가 맨 아래 첨부된 신랑 프로필을 눌렀다.
신랑 박석준 / 만 28세 / 대학 동기 역할
남성모는 화면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왔다.
박석준.
세상에 박석준이라는 이름이 한둘인가. 성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굳이 프로필 사진까지 눌러 보았다. 로딩이 잠깐 걸렸고,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깔끔하게 넘긴 머리, 조금 휘어진 눈꼬리, 웃을 때마다 유난히 말려 올라가던 입매까지. 오 년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얼굴이 조금 성숙해졌을 뿐, 사진 속 남자는 틀림없이 성모가 아는 박석준이었다.
“……씨발.”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성모는 황급히 휴대폰을 내리고 허공을 바라봤다. 아직 두 정거장이 남아 있었다. 지금이라도 내려서 집으로 돌아갈까. 십만 원 때문에 전 애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런데 당일 취소는 급여 지급이 어렵다는 업체 안내 문구가 머릿속을 스쳤다. 성모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오 년 만에 보는 얼굴인데 뭐 어떻겠는가. 결혼 축하한다고 한마디 하고, 밥 먹고, 돈 받으면 그만이었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니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담당자는 성모에게 축의금 봉투 하나를 건네며 접수대에 제출하라고 했다. 봉투 안에는 업체에서 준비한 돈이 들어 있었고, 겉면에는 남성모라는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성모는 봉투를 받아 들고 잠깐 멍해졌다. 박석준 결혼식 축의금 봉투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우스웠다. 예전에는 둘이 같이 결혼식장을 구경하러 다니자고 농담했던 적도 있었다. 석준이 먼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고, 성모는 비행기 값이 싼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다고 대답했다. 석준은 그 말을 듣고 한참 웃었다.
“남성모 씨, 이쪽으로 오세요.”
담당자의 부름에 성모는 정신을 차렸다. 축의금을 내고 다른 하객들과 함께 신랑 대기실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동안에도 성모는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생각했다. 십만 원을 벌겠다고 전 애인의 결혼식에 와서, 그것도 친구인 척 연기해야 한다니. 친구는 무슨. 헤어질 때 박석준한테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자기였다. 성모는 대기실 문이 열리기 직전까지도 돌아갈 기회를 계산했다. 문 안쪽에서는 누군가 크게 웃고 있었다. 성모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은 웃음소리였다.
“야, 박석준!”
앞서 들어간 하객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석준이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성모는 석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는 것을 보았다. 석준은 처음에는 사람을 잘못 본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에서는 신랑이 왜 저러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성모는 먼저 입꼬리를 올렸다.
“야, 오랜만이다.”
“……남성모?”
“결혼 축하한다.”
성모가 손을 내밀었다. 석준은 잠깐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마주 잡았다. 악수를 하자마자 성모는 손에 힘을 주었다. 석준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성모는 개의치 않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축하한다, 잘 살아라, 행복해라. 입에서는 온갖 좋은 말이 쏟아졌지만 손아귀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석준은 끝내 참지 못하고 성모의 손목을 붙잡았다.
“야, 아프다고.”
“어? 미안.”
“너 일부러 그러지.”
“내가 뭘.”
성모는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다른 하객들이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자 석준은 겨우 손을 놓았다. 성모는 그 틈을 타 뒤로 물러났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그는 맨 뒷줄에 서서 적당히 웃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석준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봤다는 사실은 애써 모른 척했다.
대기실을 빠져나온 성모는 복도 끝에서 물 한 잔을 마셨다. 종이컵이 손 안에서 조금 구겨졌다. 석준의 얼굴을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기분이 더러웠다. 오 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았나. 성모는 종이컵을 버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직 예식 시작까지 이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
“근데 신랑 정략결혼이라며?”
옆에서 들려온 말에 성모의 손이 멈췄다. 다른 하객 아르바이트생 둘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 집안이 호텔과 유통업을 하고, 다른 쪽도 사업하는 집안이라 부모들끼리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오갔다고 했다. 신랑이 원래 결혼 생각이 없었다느니, 집안에서 밀어붙였다느니 하는 소문도 있었다. 성모는 조용히 물을 한 잔 더 받아 마시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 년 전에도 석준의 아버지는 성모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성모의 직업과 집안 형편을 묻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따로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호텔 라운지에서 마주 앉은 남자는 성모에게 석준과 헤어져 달라고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는 꽤 두꺼웠고, 성모는 그 자리에서 금액을 확인했다. 거절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고 결국 돈을 받았다. 석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관계를 끝냈다. 그 후로 오 년이었다. 석준은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성모는 휴대폰 화면을 껐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으니까. 이제 와서 석준이 누구와 결혼하든 무슨 상관인가. 성모는 예식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화장실에 들르기로 했다. 손을 씻고 세면대 앞에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문이 열렸다.
“남성모 씨.”
성모는 거울 속에 비친 석준을 보았다. 정장을 입은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대기실에서 봤을 때보다 표정이 훨씬 좋지 않았다.
“왜요.”
“제 결혼식에 오신 소감이 어떠세요?”
“좆같은데요.”
“그러시구나.”
성모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석준은 문 앞에서 비켜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모가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돌아서자 석준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진심이에요?”
“아뇨.”
석준이 웃었다. 옛날부터 성모가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석준은 꼭 저렇게 웃었다. 성모가 진심으로 하는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구별할 줄 안다는 듯이.
“너 아직도 똑같다.”
“넌 많이 변했네. 결혼도 하고.”
“아직 안 했어.”
“십 분 뒤에 하겠지.”
“…….”
“가라. 신부 기다리겠다.”
석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성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너한테 돈 줬다며.”
성모의 표정이 굳었다.
“얼마 받았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얼마 받았냐고.”
“삼억.”
석준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모는 괜히 셔츠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석준은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랬구나.”
“…….”
“그래서 나 버린 거였구나.”
“그렇게 생각하든가.”
“넌 내가 그 돈보다 못했어?”
성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석준은 한참 기다렸지만 끝내 대답을 듣지 못했다. 복도에서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신랑을 찾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성모는 그쪽을 턱짓했다.
“너 이제 가야 돼.”
“성모야.”
“왜.”
“나 아직 너 좋아해.”
성모는 헛웃음을 쳤다. 결혼식 십 분 전에 전 애인한테 할 말인가 싶었다. 석준은 성모가 웃든 말든 계속 바라봤다.
“야, 너 오늘 결혼해.”
“알아.”
“아는 새끼가 왜 이래.”
“그러게.”
석준이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복도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직원이 신랑을 찾고 있었다. 석준은 잠깐 문 쪽을 돌아봤다가 다시 성모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진짜 나한테 축하한다고 못 해?”
“아까 했잖아.”
“진심으로.”
성모는 입술을 깨물었다.
“……못 하겠는데.”
석준은 그제야 웃음을 거두고 성모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술이 맞붙었다. 성모가 석준의 멱살을 틀어쥐고 몸을 화장실 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좁은 공간에 둘의 몸이 엉키며 들어갔고, 뒤이어 문이 잠겼다.
좁은 칸 안의 공기는 금세 뜨거워졌다. 입술이 맞물리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거칠고 다급했다. 석준은 성모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매달려왔다. 단정한 신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성모의 손이 석준의 정장 바지 속으로 파고들었고, 석준은 낮은 신음과 함께 성모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하, 씨발……”
성모가 욕을 짓씹으며 석준을 변기 커버 위에 앉혔다. 좁은 공간 때문에 무릎과 허벅지가 계속 부딪혔지만, 그게 오히려 긴장감을 부추겼다. 석준은 무언가 원하는 듯 성모의 바지를 내리고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 잘 다려진 바지가 무릎 아래로 내려가고, 석준이 성모의 것을 빨기 시작했다. 좁은 칸 내부에는 질척한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석준은 눈을 치켜뜨고 성모를 바라보았다. 성모는 그 축축한 눈빛이 어딘가 새신랑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성모는 뜨끈한 감각을 느끼며 석준의 뒷통수를 꽉 쥐었다. 곧 뜨거운 정액이 석준의 뺨과 눈가로 흩뿌려졌다. 석준은 그걸 훈장이라도 되는 양 받아내며 웃었다. 성모는 휴지를 뜯어 석준의 얼굴에 묻은 것을 거칠게 닦아냈다.
“…정신 차려, 박석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성모는 이성의 끈을 놓기 직전이었다. 성모는 석준을 일으켜 세워 벽으로 밀어붙였다. 뒤에는 차가운 벽이, 앞에는 뜨거운 석준의 몸이 느껴졌다. 성모의 손가락이 파고들자 석준이 숨을 들이켰다. 오 년 만이라 좀 뻑뻑하네… 동시에 앞을 살살 만져주자 석준이 입술을 깨물며 콧소리를 냈다. 으응, 응, 아. 익숙한 위치의 한 곳만을 집요하게 찔러대자 석준의 손가락이 바짝 섰다. 긁을 구석도 없는 판판한 벽을 마구 긁어댔다.
“아, 아윽! 성모야, 남성모……!”
성모는 무시하고 빳빳하게 선 제 것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석준이 소리를 지르든 벽에 머리를 처박든 계속해서 추삽질했다.
“아응, 헉, 아, 성모야, 아, 아퍼…”
석준이 쾌감과 고통이 섞인 신음을 낼 때마다 성모의 안에서 울컥거리는 것이 치밀어 올랐다. 오 년간 억눌러왔던 원망과 애정이 뒤섞인 분노였다. 성모는 석준의 허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니가 나한테 몇 번을 박혔는데, 씨발 니가 여자랑 결혼을…….”
성모가 짓씹듯 내뱉은 말은 격렬한 움직임 속에 녹아들어 석준의 귓가에 박혔다.
“하으, 응. 맞아, 맞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헉,”
예식장에서는 예정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신랑이 나타나지 않아 소란이 벌어졌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잡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세 번째 반복했고, 신부 측 부모는 호텔 직원에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따지고 있었다. 석준의 큰형은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복도를 오갔다. 동생에게 전화를 열두 번이나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러다 삼십 분쯤 뒤 복도 끝에서 석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 박석준! 너 어디 갔다 왔어?”
큰형이 성큼성큼 다가와 석준의 팔을 붙잡았다. 석준은 잠깐 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팔을 빼냈다. 넥타이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도 아침처럼 단정하지 않았다. 형은 그런 석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너 지금 장난하냐? 아버지 난리 나셨어. 빨리 들어가.”
“형, 나 결혼 못 하겠어.”
“뭐?”
“못 하겠다고.”
큰형은 석준이 평소처럼 농담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동생은 웃지 않았다. 그제야 형의 표정도 굳었다.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알아?”
“알아. 그래서 내가 직접 말씀드릴게. 신부한테도 사과하고.”
“박석준, 너 미쳤어?”
“응. 그런 것 같아.”
석준은 형을 지나쳐 예식장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뒤로는 한동안 소란이 이어졌다. 양가 부모가 따로 모였고, 신부 측에서는 격렬하게 항의했으며, 호텔 직원들은 이미 준비된 식사와 예식 진행 문제를 놓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석준은 신부에게 직접 사과했다. 자신이 너무 늦게 결정을 내렸다는 것도,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무례를 저질렀다는 것도 인정했다. 신부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렸다.
그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남성모는 이미 호텔을 빠져나와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신랑이 갑자기 결혼식을 취소했다며 혹시 무슨 사정을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성모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자기도 박석준이 진짜 결혼식을 취소할 줄은 몰랐으니까.
“아무튼 오늘 현장이 완전히 난리 났어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기요.”
“네?”
“그러면 일당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일당이요?”
“네. 제가 시간 맞춰서 출근했고, 축의금도 냈고, 신랑이랑 악수도 했거든요.”
“그건 그런데…….”
“결혼 취소는 신랑 사정이잖아요. 제가 취소한 게 아니고.”
담당자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성모는 역 앞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날씨가 좋았다. 햇볕은 따뜻했고, 맞은편 카페에서는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성모는 그 평화로운 풍경이 어쩐지 얄미웠다. 자신은 오늘 아침부터 전 애인을 만나고, 그 애인이 결혼을 취소하는 꼴까지 보고 왔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 휴대폰에는 입금 알림이 떴다.
100,000원 입금
성모는 한참 그 숫자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십만 원 벌자고 나왔다가 인생이 아주 지랄이 났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나 결혼 안 해
성모는 발신자를 확인하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알아
-너 어디야?
-집 가는 중
-나 만나러 가도 돼?
성모는 답장을 쓰다 말고 화면을 껐다. 오 년 만에 다시 나타나서는 남의 주말을 망쳐 놓은 인간이었다. 심지어 결혼식까지 취소해 놓고 이제 와서 만나러 오겠단다. 성모는 벤치에 앉아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휴대폰을 켰다.
-밥 니가 사
답장은 거의 바로 도착했다.
-응
-비싼 거 먹을 거야
-그래
-진짜 비싼 거
-알았어
성모는 그제야 벤치에서 일어났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면서도 자꾸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개찰구를 통과하기 직전, 석준에게 문자가 하나 더 왔다.
-근데 성모야
-왜
-우리 아버지한테 받은 삼억은 아직 있어?
성모는 걸음을 멈췄다.
-왜
-그냥 궁금해서
성모는 잠깐 화면을 노려보다가 답장을 보냈다.
-너 혹시 그거 돌려달라고 만나자는 거냐?
-아니ㅋㅋㅋㅋㅋㅋ 보고 싶어서
남성모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계단을 내려가며 혼잣말했다.
“씨발, 진짜… 재수 없는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