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타카 첫문장 합작
시작점을 알 수 없을 만큼 희미해졌다.
긴파치가 타카스기 신스케와 얽히게 된 것은 타카스기가 진학반으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진학반에 든 학생들은 열렬하게 관심을 주고 관리를 해야 한다지만 사카타 긴파치는 선생 노릇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선생 노릇도 못 하는 자식이 담임 일에 적합할 리는 더욱 없었다. 그래도 긴파치는 모르는 정보와 이미 지난 정보를 이것저것 주워와 제시하는 것보단 무관심으로 일갈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걸 알았다. 간섭 많은 멍청한 선생님보다 간섭 없는 단순한 선생님이 진학에는 더욱 도움이 될 터였다. 그 성정을 아는 탓인지 긴파치를 찾는 학생도 없다시피 하였다. 진학반이라 부담이 많다는 다른 선생들과 달리 편했다. 이제 와선 편할 뻔했다고 정정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3월 둘째 주 점심시간이었다. 긴파치는 동료 선생들이 붙잡는 것을 뒤로 하고 옥상 키를 들고 올라갔다. 쇠사슬을 풀어내자 맑은 풍경이 바로 비추었다. 작렬한 햇빛이 투과하여 작은 먼지들이 옥상을 솔솔 떠다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 낮잠 자기 좋은 날씨다. 옥상 구석에 대충 밀어둔 매트리스를 질질 끌어 자리에 누우려고 할 무렵이었다. 뒤에서 꽂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라, 타카스기였나? 멀리서도 눈에 띄는 외모 탓에 얼굴은 금세 알아 보았지만 이름이 영 가물가물했다. 2주는 반 학생의 이름을 전부 외우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작년 반 애들의 이름도 한 달이 다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 외우지 않았는가.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선생의 사명이란 게 그래도 남아있긴 했나 보다. 긴파치는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그를 바라 보고 있는 타카스기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밥은 먹긴 하는 건지 손목이 삐쩍 꼴았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는진 몰라도 성적 비관 학생의 죽음 같은 거 사양이다? 어?”
“……아파.”
존경심이라곤 전혀 없는 말투를 교직 생활 내 몇 번이고 들어왔지만서도 학생에게 이정도로 날이 서린 말투를 들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힘을 줘 세게 붙잡은 것도 아니건만 타카스기는 긴파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아픈가 싶어 슬쩍 손을 놓으니 빨간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손목이 잡힌 게 싫은 모양이었다. 긴파치는 흥미 없이 타카스기를 두고 매트리스 위에 털썩 걸터 앉았다. 타카스기는 자리에 서 긴파치를 가만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 말 제대로 듣고 있긴 한 거냐?”
돌아오는 대답 없이 타카스기는 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긴파치는 타카스기의 이름마저 제대로 모르고 있는 처지였지만 ―타카스기가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 입 밖으로 이름을 뱉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 타카스기는 긴파치를 잘 알고 있는 듯한 행동거지였다. 긴파치를 몰랐더라면 보통 선생 앞에서 하지 않는 안하무인한 짓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긴파치는 행태를 지적하기는커녕 손을 뻗어 담배 끝에 불을 지펴주는 선생이었다.
“사카타 긴파치?”
“오냐.”
담배를 피우고 내려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종의 노는 양아치들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전혀 무섭진 않았다. 쪼그만 게 일어서서 내려다 봤자 위압감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매캐하게 풍겨오는 담배 냄새를 맡던 긴파치는 초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매트리스 위로 엎어졌다. 청명한 하늘에 섞이는 더러운 냄새의 담배는 부조화스러웠지만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 피울 수 없을 만큼 짧아진 담배 한 개비를 버린 타카스기가 새담배를 하나 더 꺼내 들었다. 방임은 여기까지였다. 긴파치는 주머니에 든 영수증을 구겨 타카스기의 손에 명중 시켰다. 겨우 이걸로 담배가 떨어지진 않았지만 시선 빼앗기 용도는 되었다.
“지적 안 할 줄 알았는데.”
“연기가 보이는 하늘은 영 좋지 못하걸랑.”
그러지 말고 너도 여기 와서 앉아라. 긴파치는 타카스기의 팔을 끌고 자신의 바로 옆에 앉혔다. 불만 섞여 올라간 눈꼬리를 살살 만져주면 풀릴까 싶어 만졌더니 눈매가 더 사나워졌다. 어우, 매섭네.
“긴파치.”
“그래, 사카타 긴파치 선생입니다.”
“나 내일도 올 거야.”
“와 주세요란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못 하니까 니가 아직 학생인 거다.”
문지르던 눈매를 누르자 타카스기는 긴파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 보았다. 불청객의 등장이 있던 날치고는 날씨가 너무 맑았다.
긴파치는 그렇게 타카스기를 평일 점심시간마다 독대하게 되었다. 담임의 학생 차별이라고 하기에는 대학 진학이나 특별 수업의 끄트머리조차 오가지 않는 독대였다. 타카스기가 담배를 두 개비째 피우려고 하면 막고, 점심을 먹은 이후 요구르트와 초콜릿을 바꿔 먹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욕을 한다던지 하는 정도. 다래끼가 났다며 안개를 끼고 돌아왔을 땐 한참을 깔깔대기도 했다. 그 좋아하는 담배도 안 피우고 삐친 기색만 가득 발로 긴파치를 밀어내는 꼴을 보고 긴파치는 그걸 꽤 귀여워…….. 나 지금 학생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거냐? 뭐 여름 방학과 동시에 여름 특별 보충이 시작되자마자 시들해진 일이었다. 진학반이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이런 곳에 온다면 그것만큼 이상한 일이 없었다. 멍청한 선생이랑 해가 쨍쨍 내리쬐는 옥상에서 더워하는 것보단 쾌적한 교실에서 제도 샤프나 조금 끄적이는 게 수지에 맞다.
모든 걸 납득함에도 긴파치는 종종 요구르트를 사들고 와 옥상 한 구석에 부었고 하드바 막대를질겅질겅 씹으며 타카스기의 생각을 했다. 생각을 하니 못 볼 것도 없었다. 오히려 이런 꼴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반을 방치하다시피 하던 긴파치가 관심도 없던 학생들의 보충 시간에 찾아가 보충 감시라는 명목 하에 교탁 앞 의자에 앉은 건 그즈음이었다. 자주 눈이 마주쳤고 가끔 입이 벙긋댔다.
‘긴파치.’
‘바보.’
벙긋대는 입모양이 말하는 건 이따위라 긴파치는 이후로 그 입모양을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선생님 같은 걸 뒤에 붙이는 모습이 좋을 것 같은데 타카스기가 선생님이라고 지칭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미묘한 오한이 서렸다. 그건 꼭 누군가 나타나 긴파치에게 사카타라며 잘못을 읊을 때 정도의 공포였다. 긴파치는 타카스기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공부나 해라, 고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주었다. 눈을 먼저 피하는 쪽은 대부분 긴파치였는데 타카스기의 눈이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고 물어보는 듯 해서였다.
타카스기는 성적 비관을 할 만큼 성적이 낮은 편이 아니었다. 건들거리는 폼과 피우는 담배, 입고 있는 교복을 보면 양아치에 가까워 보였으나 학교 생활만을 볼 땐 모범생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긴파치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끝까지 쓰지 않았던 것과 달리 다른 과목 선생에게는 잘도 선생 호칭을 붙이는 모양이었다. 타카스기에게는 긴파치에게만 보이는 모습이 있었고 긴파치에게는 보이지 않는 모습이 있었다.
긴파치는 타카스기에게도 다른 학생들에게도 전부 일정했다. 결국 그 해의 반 학생들과는 유난히도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자주 교실에 들락거리다 보니 얼굴도 이름도, 호불호까지 모두 읽혔다. 긴파치는 학생이 진학에 대한 상담만을 하지 않는다는 걸 그 해 처음 알았다. 공부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며 우는 학생에게 딸기맛 사탕을 쥐여 주는 등의 행동 역시 최초였다.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면 편해서 좋다고 웃는 학생에게 처음으로 직업적인 만족도 같은 걸 느껴본 것도 같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교무실에서 나가는 학생을 배웅할 때면 타카스기가 복도에서 긴파치를 바라 보고 고개를 비뚜름하게 숙였다.
“상담 필요하냐?”
그는 답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 당연하게도 타카스기가 상담을 하러 오는 일은 없었다.
결론이야 제시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모범적이었던 타카스기는 당연히 도쿄의 유명 사립대 진학소식을 학교에 들려 주었다. 학교 교문에는 우수자 몇 명과 함께 타카스기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붙었다. 긴파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눈가를 매만져 주었다. 눈가가 사납지 않아 일전의 학생처럼 공부가 많이 힘들었나, 생각할 뿐이었다. 대학에 잘 갔으니 축하를 해 주어야 하는데 축하한단 말을 뱉기는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긴파치는 속으로만 축하를 중얼거렸다.
타카스기를 만난 지 11개월째 되는 날은 뻔했다. 졸업식 행사가 모두 끝난 이후 학생들이 삼삼오오 뒤섞였다. 반에서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나온 게 모자랐는지 긴파치에게 다가 와 개인 사진을 부탁하는 학생이 몇 있었다. 귀찮다며 돌아갔을 긴파치도 그 해의 각별한 학생들에게는 죽을 못 쒔다. 사진이 흔들렸다고, 자신이 못생기게 나왔다고 다시 찍자고 하는 요구까지 족족 받아들였다. 다시 찍은 사진의 긴파치가 이전 사진보다 더 못생겼어도 넘어가고는 했다.
졸업식의 마무리에는 축하와 기쁨이 오가는 와중 울음 소리가 종종 섞여 들렸다. 지금껏 매번 들어왔던 울음이었지만 유독 슬피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벚꽃 필 때 새학기를 시작하는 것보다 졸업을 하는 게 좋지 않나. 덜 슬프게. 속절 없는 긴파치의 생각을 무시한 바람은 아직 찼다. 분명 봄이 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슬슬 돌아갈 때인데 아직 보아야 할 사람이 오지 않아 갈 수 없었다. 긴파치는 타카스기를 찾기 위한 발꿈치를 들었다. 물론 졸업을 위해 정장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줄을 선 타카스기를 찾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건 5월쯤이었나.
‘어이, 타카스기. 너는 이름은 타카스기면서 키는 왜 그러냐?’
들고 있던 캔 음료를 구기면서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고 바락거리는 타카스기의 모습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그런가 하면 사이즈가 맞지 않는 타카스기의 교복을 보며 혹시 더 클 거라고 생각해 한 치수 큰 교복을 산 거냐고 놀렸을 때도 있었다. 그때도 속절 없이 캔이 구겨졌다. 아,머리로 떠올리다 보니 더욱 만나고 싶어졌다. 우리 치비스기는 어디쯤에 있을지 찾아볼까~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손차양을 올렸다. 그다지 특별한 추억은 아니었음에도 웃음이 샜다.
“뭘 멍청하게 웃고 있어?”
뒤에서 상상의 주인이 나타났다. 키는 작은 게 목소리 하나는 귀에 쏙쏙 박혔다. 아니, 이건 긴파치가 타카스기의 목소리를 특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타카스기?”
아침부터 느꼈지만 타카스기는 꼭 어린 아이가 아빠 양복을 훔쳐 입은 꼬마 같았다. 뭐 이건 긴파치만의 생각일 확률이 컸다. 타카스기 정장이 정말 잘 어울리지 않냐며 구석에서 수군대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걸 이미 보고 온 터다다. 그럼에도 긴파치의 눈에 밟히는 타카스기는 꼬마였다. 그런 긴파치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타카스기는 꽤 의기양양했다. 어른이 되었다 이건가.
“할 말 있으면 해봐.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까 들어주지.”
“타카스기 군이 백팔십까지 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돼서 유감입니다.”
타카스기는 캔음료와 달리 손에 들린 꽃다발을 부수지 못했다. 손에 힘을 주지도 못한 채 긴파치에게 왁왁 화를 냈다. 그때처럼 웃음이 터 졌다.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나오는 빠직 이모티콘이 이마에 달린 모습이 덧그려졌다. 4월부터 이 녀석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짓을 많이 했다. 선생 앞에서 담배나 피우는 놈이 뭐가 좋다고 왜 그렇게 거슬렸을까. 긴파치는 타카스기의 담임을 맡았지만 정작 서로가 선생과 학생 같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방금 여기 있었던 타카스기가 어디 갔지? 하며 허공만 시선으로 훑던 긴파치가 짜증을 내며 떠나려는 타카스기를 붙잡았다. 그래도 이거 말고 할 말은 있다.
“졸업 축하한다.”
“늦어.”
“또 올 거냐?”
긴장은 체질이 아닌데 폼 없이 뱉은 말에 긴장이 서렸다. 타카스기와 다시 만나게 될까. 그러기에 두 사람은 사제 관계도, 친우의 관계도 아니었다. 타카스기는 어느새 희미해진 4월의 첫날처럼 이야기했다.
“미카쨩! 정말 좋아해!”
아, 수업 시간 때 했던 바보 같은 말은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타카스기의 입모양을 매번 들여다 보고 해석할 것을 그랬다.
타카스기는 분명 답을 했다. 졸업식 기념 마지막 고백을 하는 남학생에 의해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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