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별에서 죽음은 고귀한 황금색이었어.
#파이널판타지 14의 치명적인 메인 스토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신경 쓰시는 분들께는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만약 이 문제로 독백 감상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리베주한테 스포 없는 요약을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심한 우울 증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울 증세 관련 소재에 취약하신 분께는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제목은 파이널판타지14 인게임 대사 인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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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적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속에 있는 염증과 통증을, 쓰라림과 열김을 토해내야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병세를 서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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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문화는 다양하다. 오사드 대륙 한구석의 조그마한 부족 출신으로선 상상도 못 할 만큼 놀라운 생활상을 가진 나라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지금 나와있는 나라는 알렉산드리아라는 국가로, 죽은 사람의 기억을 보존해 사후에도 생자처럼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퍼붓는 특이한 문화를 보이는 곳이다. 자원 수급의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와 이로 인한 자원 고갈이라는 애로사항을 해결하지 못 한 지금은 이런 정책을 중단한 상태지만 말이다.
지금은 없는 옛 지도자의 말에 따르면, 죽은 자의 기억이 움직이는 '영원인'들은 그의 마음 속에서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생자와 다름없이 함께 웃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어떻게 죽은 사람이라고 단언하겠느냐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그러나 단편적으로나마 영원인들을 만나보았던 나의 생각은 그 지도자와는 많이 달랐다. 이 문제에서 제기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논쟁거리는 제쳐두고서 순수한 나의 감상만을 말하자면, 내가 영원인이 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우울할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죽음은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내가 이뤄낸 모든 찬란한 성과에 둘러싸여 죽음에 이른 뒤 남은 것이 종말이 아닌 영원이라면⋯ 그건 내가 정한 나의 삶의 목표를 짓밟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할 것 같았고, 죽기를 바랄 것 같았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영원인' 정책을 좋아하지 않고 이 나라 또한 썩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광장의 벤치에 앉아 청승을 떠는 까닭은 가동을 멈추어 검은색 일색인 인공적 사후세계에서 황금빛 바람을 맞으면 곤두박질친지 오래인 기분이 약간이라도 나아지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다. 죽어버렸음에도 죽음을 맞이하지 못 했던 인간들의 잔해를 옆에 두어 동질감이라도 느껴보려는 속셈이었다.
요즘 들어 내 꼴이 영원인과 다를 게 무엇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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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죽어버려도 상관 없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 있는가? 평생동안 가지지 못 할 법한 지고의 행복을 두어 이제 더이상 발버둥을 아무리 치더라도 이만한 기쁨을 누리지 못 하리라는 예감이 찾아온 적 있는가? 나는 있다. 그 감정을 느낀지 이제야 1년을 넘긴 참이다.
그럼에도 내가 살아남은 이유는 곁에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었고, 지금 살아가는 이유는 옆에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조차 내 감정의 경중을 저울질할 수 없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보통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해볼 수 있다. 말 그대로 그들을 위해 세상 두세 개는 구원할 쯤은 된다.
시야가 좁은 나는 눈 앞에 애정이라는 당근만 하나 매달아놓으면 지쳐 죽을 때까지 뛰어갈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나한테 사랑이 아닌 다른 당근을 흔든 이가 있었다. 두 번 다시 갖지 못 할 행복의 순간을 손 안에 쥐게 되었다. 그 때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가?
나는 어떤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걸까?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저 그 때로 돌아가 완벽한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생각만이 하염없이 간절하다.
죽어버려도 된다는 마음을 겨우 정리한지 아직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배신감을 느꼈던 것도 같지만 합리적이지 않기에 버렸다. 그 사람이 나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죽기를 바라며 그런 환상적인 순간을 선사했다면, 벗의 관계를 먼저 제안한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게 들불처럼 번지는 화를 가라앉히자 남는 건 고요히 내 발목을 잠기게 하는 다 타버린 재 뿐이라. 끝없는 우울에 사로잡혀 그렇게 며칠을 낭비했다.
듣기로는 이런 때일수록 옆에 있는 사람을 보며 의지를 다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쓸데없는 사감을 버리고 지켜야 하는 이들을 위하여 몸을 움직여야만 한다고.
참 신기하지 않나? (아마 나한테만 신기할 테지만.) 나는 이렇게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가지지 못 한 행복에 미련을 품고야 마는데, 보아하니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이런 것쯤 쉽게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같다. 인간은 의지를 가진 동물이니까, 인간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마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쉬운 것 하나 해내지 못 하는 나는 인간의 마음이 없기라도 한 건가.
(가로줄이 두 개 그어져 있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아마 나는 인간도 아닌 모
(가로줄이 두 개 그어져 있는 문장이다.)
글██ㄴㄴ█ㅁ██
(엉망으로 낙서가 되어 있어 알아볼 수 없다.)
죽음을 마주한 그 순간에서 나아가지 못 하는 나를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원인을 만든 자한테 어질지 못 하다고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사람보다 내가 훨씬 더 미련하고 멍청한데 누가 누굴 보고 비판을 했던 건지.
차라리 그 소통망에 들어오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해버리는 내가 밉다. 차라리 모두를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버리는 나도 밉고, 그 때 죽는 게 훨씬 나았을 거라고, 아예 처음부터 태어난 것 자체가 모두한테 민폐였다고 파국적 사고를 해버리는 내가 미워서 어쩔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살아가야겠지. 살아남았으니까, 인간으로 태어나 버렸으니까, 인간인 척 행세를 계속 해야만 하겠지. 알고 있다. 잘 알고 있다. 나는 버텨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괜찮다. 나는 아직 한참 더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가끔씩 버티기 어려운 밤에만 일기의 힘을 빌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걸로 하루를 더 벌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까. 애초부터 이런 일을 겪지도 않았겠지? 부러워서 미쳐버릴 지경이다. 나도 평범하게 태어나고 싶었다.
(가로줄이 네 개 그어져 있는 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