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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잘랐네요. 명재현이 목덜미를 더듬고 앞머리를 헝클이며 어엉. 했다. 별로임? 그건 아닌데.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닌 듯.. 한태산은 그 말 대신 잘 어울려요 대답한다. 내 취향이고 아니고가 뭔 상관. 

좀 짧게 잘랐네.
기분 전환이랄까.
갑자기?
엉 싱숭생숭해서..

왜? 묻는 대신 한태산은 끄덕였다. 그렇다는데 어쩔. 연하게 태운 아아메를 입에 문 한태산은 인스타 디엠을 대충 훑고 쌓여있는 어플 알람을 확인했다. 그 남자 괜찮네. 야 이 남잔 아주 보정 떡칠을 했는데? 이쪽이 니 취향 아냐? 언제 옆자리로 온 건지 명재현이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대듯 얹고 훈수를 둔다. 어깨를 튕긴 한태산이 미간을 구겼다. 아 왜 훔쳐보는데. ㅋㅋ 재밌잖냐. 한 개도 안 재밌거든요. 재밌어하는 거 다 알거든요~ ...........

묘하다. 확실해졌다. 한태산에게 어깨빵을 맞고도 한 번 더 안착했던 명재현의 머리가 물러났다. 화장실 쫌. 일어서는 명재현 표정이 방금까지 웃던 게 구라같게 무표정했다. 그게 놀랍거나 당황스럽진 않았다. 한태산의 기민함이 일찍이 신호를 감지한 덕이다. 우선 요새 명재현과의 만남이 지나치게 잦다. 자주 보면 일주일에 한 두 번. 아니면 이주에 한 번 정도. 한 쪽이라도 연애 사업을 운영 중일 경우엔 기간 한정 없이 안부만 주고받을 때도 수두룩했고. 근데 지금 무려 주 4회를 만나는 중이었다. 무려 2주 동안. 명재현은 툭 하면 ㅁㅎ? 톡을 보냈고 한태산은 그때마다 보실? 답장했다.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알고는 있다 과한 거. 분명 과한데.

안 만날 이유가 딱히 없지 않나?
는 이게 다 시간이 남아서 그렇다. 적어도 명재현한테 할애해 줄 시간만큼은. 아주 위험한 발상임을 자각한 한태산은 명재현이 괜찮다 말한 상대에게 연락을 시도하려다 말고 접었다. 존나 미친새끼같은 발상인데 이상하게 한눈파는 기분이라. 애인도 없는데 대체 왜.

이러지 말고 술이나 마시러 가요.

요즘 우리 만나면 카페 오고 영화 보고 밥 먹고. 간지럽게 뭐 하는 짓이지? 불현듯 정신을 챙긴 한태산이 명재현의 엉덩이가 의자에 붙기 전 말했다. 한태산이 가방을 챙기고 다 마신 음료를 들 때까지도 잠자코 서 있던 명재현이 씨익. 웃었다. 그 불길한 웃음에 한태산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럼,

텔 가자.
? 뭔 또 텔이야. 이 인간 텔 왤케 좋아해.
프라이빗하고 좋잖냐.
허....

마침 배도 고픈데 가서 배달시켜서 소주 까자고. 대화도 좀 하고...
눈썹을 찡긋하는 명재현에 반박하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해 버렸다. 한태산은 드물게 멍청한 얼굴로 방 잡는다고 어플켜는 명재현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태산의 벌어졌던 입이 말과 숨까지 참는다. 그러니까 이런 태도. 의중을 확신하기 어려운 행동과 말도. 지난번 키스니 뭐니 미친소리하던 명재현의 연장선을 보는듯한 이 느낌이 기후라면 다행이었다. 눈치라면 날고 기는 한태산도 반반에서 추를 명확히 기울이지 못 하는 이유란 명재현이니까. 경우의 수로 따지면 저만큼이나 예측 불가한 사람.

한태산이 곧 긍정적으로 사고를 회전시키곤 앞장서는 명재현을 따랐다. 결론은 길게 생각할 거 없단 거였다. 어차피 텔 가봤자 뭔 일 안 난다. 그게 명재현과 자신의 역사 속 팩트였다. 일 쳤을 거였음 진작 쳤겠지.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 타이밍에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남자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말은 개소리가 맞다. 적어도 본인 기준에선. 한태산에게 명재현은 그리 애틋했던 첫사랑도 아닐뿐더러 추억 속에 남아있지도 않다. 현재진행 중으로 옆에 있는 명재현을 보고 있으면 덜컥 회상되는 기억과 그에 따르는 기분이 있지만 그게 감정과 연결되지는 않았다. 몰래 철저한 짝사랑 중도 절대 아니고 명재현에게 가슴 떨려본 건 열아홉에 졸업해서. 지금은 친한 형 객관적으로 사람 좋은 형. 같이 있음 재밌는 형, 솔직히 가끔 껄끄러울 때가 있지만 그걸로 안 보고 살기엔 너무 아쉬울 형...

그런데.

형 혹시 이제 나 안 볼 생각인 거?

한태산이 한숨과 함께 믿잔 깔린 소주를 단박에 털어 넣었다. 이럴 줄 몰랐다고 하면 구라다. 그렇다고 아주 안 것도 아니지만. 딱 반반 확률. 3초 컷의 뽀뽀? 입술 맞대기 후 떨어진 명재현이 큭큭 웃었다. 볼 건데.

미쳤나 진짜, 저번부터...
그니까.

괜히 입은 털어가지고. 이게 그렇게 궁금하더라니까? 될 지 안 될지 어떨지, 어 내 무덤 내가 판 듯... 급기야 배까지 잡고 웃는다. 한태산이 손등으로 제 입을 닦고는 미간을 모았다. 푹 갖다 박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개짧았는데. 입술 감촉 생생하고 지랄.. 

그래서 어떤데.
음 남자라고 막 토할 것 같은 느낌은 아니네. 눈 감아서 그런가...

아님 너라서 그런가. 명재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가늘게 뜬 눈을 마주치며 그런다. 여자 꼬실 때 하는 짓거리를 하네. 한태산은 기가 막혔으나 헛웃음도 안 나왔다. 다만 뇌에 좀 더 힘을 주고 생각을 했다. 명재현 현시점 알코올 섭취량 소주 한 병 반. 취한 거 아니고 순수 체급으로 미쳤단 소린데 그거 상당히 오래간다 형. 이러다 갑자기 제 정신 돌아오면 잠깐 회피하는 수준으로는 회복 안 될 거 같은데. 나 말고 형이.

그 잠깐 갖다 댄 걸로 꺼드럭은.

기왕 일친 거 모 아니면 도뿐이다. 중간은 없다. 심지어 먼저 말을 움직인 것도 명재현. 그게 꼴받기도 꼴리기도 해 한태산이 싸해진 눈깔로 순식간에 명재현을 덮친다. 손바닥에 명재현의 턱을 받치고 다섯 손가락을 동원해선 볼을 짓눌러 입을 벌리게 했다. 신속하게 침투하는 혓바닥의 끝이 목구멍을 깊숙하게 찌른다. 부러 추잡스레 입술과 혀를 빨며 한태산은 눈을 떴다. 컥.컥. 키스하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괴음이 명재현의 입에서 터진다. 명재현이 눈물 찔끔단 실눈으로 한태산과 시선을 마주치곤 눈을 온전히 떴다. 꿀,꺽.... 한태산이 넘긴 침을 크게 삼키며 떨어지는 입술에서 헥헥 호흡이 흘렀다.

지금은 어떤데.

명재현이 무덤까지 갈 첫사랑은 아니며 더는 전 같은 감정이 안 남았든 가슴이 설레지 않든 다 뭔 상관인데. 키스할 수 있냐면 당연하고 섹스까지도 가능이냐면 무조건이지. 할 수 있는 걸 넘어 하고 싶은 쪽에 가깝지.

.....

대답 없는 명재현이 눈을 굴린다. 한태산은 그 모습에서 어릴 적 고백각 잡았을 때 보았던 명재현의 모습을 겹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러고 내일 보자며 내빼는 명재현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고 뒤통수를 벅벅 문지르는 명재현이란 거다. 한태산은 그 모습을 보며 심장이 좀 쿵 했다. 엄밀히 말하지만 쿵쿵 절대 아니고 그냥 잔잔하게 쿵. 존나 희미하게...
한참을 말 없던 명재현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를 냈다. 괜,찮은 듯... 한태산의 눈이 커다래졌다.

진심?
어엉..
그럴 리가.
.....
혀 빠는 걸로 모자라 형 내 침 삼켰는데?
.....;;

나도 몰라 그냥 그런 것 같은 걸 어쩌라고.... 명재현이 쪽팔림에 남은 소주를 병나발 불었다. 씩씩거리기도 하는 게 좀 억울한 모양이었다. 곱씹어도 분이 안 풀리는지 다시금 소주병을 무는 명재현을 한태산이 저지했다. 미쳤어요? 는 이미 미치긴 했지. 그러니까 여기서 취하기까지 하면 안 된다고 형. 뭐인마?? 발끈하며 인상쓰던 명재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코 앞에 있는 한태산 표정을 보고.

전에 할 수 있음 게이 만들어보라고 했던 말 아직 유효하냐고.

혈색만큼은 변하지 않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벌건 귀. 멍하니 보던 명재현이 입을 뻐끔거린다. 그러니까 할 수 있으면…. 말 끝나자마자 한태산의 두 손이 얼굴을 붙잡아왔다.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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