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그린 에일리언

최근 김인성은 최근 땅을 보고 걷는 버릇을 들였다. 죽은 지렁이를 밟지 않기 위함이었고, 아직 살아있는 지렁이를 부드러운 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였다. 매일 바닥에 고개를 처박느라 목이 뻐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길에서 말라 비틀어져 가는 모든 지렁이들을 구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 내려온 탓이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외계인과의 동거는 그런 것이었다.

태양을 처음 만난 건 인성이 고학번인 제 신세를 알면서도 굳이굳이 엠티에 갔던 그 날이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제 친구 은혜의 하소연 아닌 하소연에 어쩔 수 없이 한 자리 채워주러 오긴 했지만 염치는 있었다. 적당히 마시다 적당히 빠져줘야지. 꼰대라고 눈치주는 분위기가 아닌 건 누구보다 이 학과에 오래 몸 담은 인성 본인이 가장 잘 알았지만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맥 적당히 말고 벌개지지도 않은 얼굴로 술 좀 깨겠다며 나갔을 때 만난거다. 태양을.

태양은 우두커니 서있었다. 엠티 장소였던 수련관의 모래 운동장 한 가운데에. 처음에 인성은 다른 대학교 학생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야 모르는 얼굴이었고 주변은 왁자지껄했으니까. 간단히 담배나 피면서 바깥 공기를 쐬려고 한건데 운동장에 서있던 남자가 자꾸 쳐다보니까 부담스러웠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서 마저 피려는데 어느새 태양이 곁에 있었다. 소리를 꽥 지르려다 간신히 참았다. 그 덕분에 담배 연기가 목으로 잘못 넘어와서 인성은 한참을 켈록거렸다.

"커흑, 컥..."
"목이 약하구나."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태양을 바라보았다. 빛이라고는 창문으로 조금 새어나오는 게 전부인데 이상하게 태양의 얼굴에 역광이 졌다. 조명이 두개일 때 으레 그러하듯 바닥에 있던 그림자들이 서로 옅은 색으로 겹쳤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양을 바라보았고 태양은 고개를 저었다. 지구인들은 이해할 수 없어. 그리고서는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사라졌다. 인성은 제 주량이 많이 약해졌구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양은 정확히 3일 후 다시 나타났다. 엠티에서 돌아온 인성이 자취방 구석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을 때 돌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배달을 시킨 음식이 왔나 싶어 별 생각 없이 바깥을 내다보았고 거기에는 태양이 있었다. 그야말로 기절하기 3초 직전이었다. 태양은 3초 세기도 전에 집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려는 것을 붙잡았다.

"자꾸 이러는 거 보니까 정말로 약한가보네. 지구인이 약한건가?"
"...이거 주거무단침입죄로 고소 되는 거 아시죠."
"어려운 말 쓰지 마. 지구 말은 다 어렵단 말이야."

더 들을 거 없었다. 인성은 태양을 좋게 좋게 타일러 바깥으로 세 번 정도 내보냈으나 눈 깜빡하면 태양은 집에 다시 들어와 있었다.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건가요. 거의 우는 소리를 낼 쯔음이 되어서야 태양이 선언했다.

나는 외계인이야!

실제로는 그닥 텐션 높은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인성이 받아들인 그 당시의 충격을 생각해볼 때 태양의 말 끝에 붙은 느낌표는 열 개로도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니까... 태양씨가 다른 은하에서 온 외계인이고 불시착을 하셔서 우주선 연료를 채울 때 까지 여기 계시고 싶다는 말씀이잖아요."
"똑똑한데? 정확한 요약이야."
"그런데 왜 저희 집에 계속 계시는 건지..."

명백히 드러내는 불편함의 신호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전혀 거리낄 게 없다는 듯 말했다. 지구에서 제일 처음 본 게 너니까. 애착이라고 하지 않나? 너와 나 사이에 형성된 걸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꽤 상식인으로 살아온 인성은 어질어질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그러나 동시에 영화 많이 보고 감독의 꿈을 가졌던 또 다른 인성은 E.T.라던가 월-E같은 것들을 줄줄이 떠올렸다. 이거 기회잖아 누가 외계인이랑 같이 살아보겠어.

상식 대 낭만의 싸움. 낭만이 근소한 차이로 이긴 탓에 인성의 월-E 자처기가 시작되었다. 인성은 태양을 남몰래 이브라고 불렀다. 식물을 너무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태양이 살던 행성은 우리은하에 비유하자면 화성과 가장 가까운 환경이라고 했다. 자전 주기는 29시간 43분. 평균온도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물이 턱없이 부족해 지구처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날 수 없는 곳이라고 했다. 문과 졸업해서 문과 대학 온 문과 엘리트 인성에게 태양의 행성 이야기는 어려웠지만 딱 하나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건 제대로 알아 들었다.

"그럼 딱 좋을 때 오셨네요."
"왜?"
"여름에는 풀이 잘 자라거든요. 벌레도 많지만."

그 말을 하면 안됐다고 인성은 생각한다. 그 다음날부터 태양은 인성을 끌고 신나게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제가 학교에 가야 해서요 막 돌아다닐 수가 없는데. 마지막 학기라 9학점 듣는다는 건 굳이 말 안 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구차한 핑계를 댔더니 태양은 의외로 순순히 물러났다. 우리 행성에도 의무는 아니지만 비슷한 교육 기관이 있지. 태양을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활짝 웃었으나 그러니 학교 갔다와서 돌아다니자 한 마디에 결국은 굴복했다.

태양은 식물을 잘도 구분했다. 길에서 찾아낸 들꽃을 손가락질하며 인성이 핸드폰으로 간신히 더듬더듬 찾아낸 학술정보를 알려주면 절대 까먹지 않고 다음에 그것을 발견했을 때 정보를 읊는 것이었다. 식물에 대한 눈이 어두운 인성만 감탄했다. 그걸 어떻게 구분하지. 전혀 다르게 생겼잖아. 아니 다 똑같은데요. 늘 이렇게 다투었으나 결국에는 체력이 빠진 인성만 길바닥에 쭈그려 앉고 태양이 옆에 서서 오늘은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궁시렁거리는 엔딩이었다.

"지구인들은 너무 약해."
"지구인이 아니라 제가, 체력이 좀..."

한 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저기 보세요 저 사람들은 잘 돌아다니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목을 대충 손가락으로 짚었다. 6시 언저리라 퇴근하는 사람들이 길에 많았다. 태양은 처음 만났던 그 때처럼 우두커니 서서 한참동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길에 잔뜩 있는데 너희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구나."
"너무 익숙해서 애착을 형성할 필요가 굳이 없는 거에요. 매일 보는 것들이니까."
"그렇다면 지구인들은 서로에게 애착을 형성하지 않나?"

정말 알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너를 보고 형성한 감정을 너는 잘 모를수도 있겠구나 인성아. 중얼거리는 소리가... 태양이 인간이었다면 정말 큰일 났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굳이 정정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잠시 넋을 잃고 태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데 태양이 땅바닥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어 저기 지렁이다. 건져서 흙으로 돌려보내 줘. 순간 맥이 턱 풀려 웃었다. 외계인은 역시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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