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트루먼쇼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내가 가장 먼저 인식한 건 왼편에서 들려오는 일정한 박자의 기계음이었다. 불규칙하던 음이 점점 리듬감을 찾아가는 것을 느끼다 파르르 떨리는 두 눈을 열었다. 김영균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인식했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면서 김영균이 내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웃었다. 김영균은 사람 기척을 듣고 졸고있던 눈을 부릅 뜨더니 난리를 치며 의사를 찾았다. 의사? 그제야 내가 얄팍한 간이 철제 침대에 누워있으며 병원복을 입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계음의 정체가 바이탈 사인 모니터에서 나던 것이라는 것도. 영균이 간호사를 불러오겠다며 달려 나가버린 통에 사정을 들을수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깜빡거렸다. 어쩐지 몸의 감각 하나하나가 생경하다는 생각을 하며.
의사는 박수를 쳤다. 내 몸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얼굴을 한참 살폈다. 나는 객체가 된 기분으로 눈치를 보며 앉아있었다. 몇 걸음 걸어보세요. 터벅터벅. 다시 누우셔도 됩니다. 아 옙... 군소리 없이 누우니 의사는 거드름 피우는 목소리로 수술이 아주 잘 되었다고 했다. 네? 수술요? 끝음이 살짝 삑사리 난 목소리로 물었더니 의사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요즘 또 테세우스 수술이 인기있지 않습니까. 병들거나 오래된 몸을 새로운 기계로 바꾸는 거 말입니다. 재윤씨도... 한참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하던 의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나의 표정을 보고서야 상황을 인식한 듯 싶었다. 보호자분에게 설명 마저 들으세요 하더니 내빼는 뒷모습을 보다가, 김영균을 보았다.
"이거 다 뭔데."
"......"
"니 알 거 아이가."
김영균은 입을 댓발 내밀고 침묵을 고수했다. 예전부터 고집이 세서 한 번 결심한 건 끝까지 입을 다무는 것을 알았다. 나는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김영균은 직접적으로 화내는 것보다 침묵을 더 못 견디는 것을 알았으니까. 한참 바닥만 보고 있던 영균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 입원한거야. 형 좀 다쳐서..."
"테세우스 수술 그거 아무나 하나. 이거 부작용도 엄청 크다 하더라."
"......"
"돈은 또 어디서 났는데."
김영균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 뒤에 가장 숨기고 싶어했던 포인트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장 한 켠이 부분이 쿡쿡 쑤시는 듯한 감정을 느끼다가 가장 부정하고 싶었던 한 가지를 물었다. 니 음악 그거 팔았나. 침묵. 본가 간 거 아이제. 여전히 침묵. 다그치려다가 김영균이 우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김영균은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입술을 악물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바지를 붙잡고 있는 손과 구부러진 등에 각각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코 훌쩍이는 소리와 떨리는 몸의 진동을 몸으로 받아내며 한참을 기다렸다. 김영균은 더듬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사고 당시 기억을 잘라냈어. 가지고 있으면 괴로울거라고 의사가 그러길래."
"응응."
"새벽에 작업 끝나고 형보고 데리러 와달라고 했거든. 그래서 형이 차 가지고 내 작업실 있는 쪽으로 왔단 말이야. 당연히 재윤이형은 면허가 없으니까 자동 주행 모드 켜고 왔는데 갑자기 운전 인공지능이 고장나서... 근데 형은 수동 주행으로 못 돌리니까. 그래서..."
간신히 열렸던 입이 다시 다물리고 영균은 훌쩍거렸다. 전신의 90%가 제대로 된 기능 수행 불가능 판정. 예전이었다면 이대로 사망 처리를 하는게 맞지만 뇌와 일부 신경이 살아있어 새로운 기계 몸에 이식을 하면 살아날 수 있다는 수술이 하나 있다고 했다. 김영균은 부작용이 큰 이 테세우스 수술에 가능성을 올인했다고 털어놓았다. 미친듯이 돈을 끌어모았으나 수술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음악 장비들을 전부 팔았다. 그래도 비용의 30%도 안 나왔다. 고민하던 김영균은 결국 돈 있기로 꽤 알아주던 본가에 다시 들어가기로 했다. 가업을 이으라는 압박을 못 견디고 야밤중에 옷만 덜렁 싸서 도망 나왔다던 그 곳으로. 그렇게 난 영균의 도움을 받아 기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1년 9개월 된 애인이라는 이유로 받은 게 너무 과분해서 나는 김영균의 이야기를 다 듣고도 한참동안 그걸 곱씹어야 했다. 누군가의 인생에 내가 이토록 큰 영향을 끼쳐본 적 있었던가. 아마 내가 알기로는 없었다. 잘려나간 뇌의 일부분에는 그런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니까. 심장이 아니라 인공 모터가 들어있을 가슴 한 켠이 계속해서 쿡쿡 쑤셨다.
"니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뭔데."
"뭐?"
"나는... 영균이 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았으면."
"그럼 나보고 형 죽게 내버려 두라고?"
나보고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건데. 김영균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수습하려고 영균을 향해 팔을 뻗었지만 관자놀이가 띵하게 울려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김영균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고 곧장 의사를 부르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병실에는 그러니까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기묘한 책임감을 느꼈다. 나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크게 바뀌어버린 김영균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리고 아마 이건 김영균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에서 당분간 사랑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