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버트 독백 1



#파판14의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경 쓰시는 분들께는 열람을 권장드리지 않습니다. 만약 이 문제로 독백 감상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리베주한테 스포 없는 요약을 요청해주시길 바랍니다.
#파판14의 인게임 대사를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있습니다.
#욕설 묘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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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내가 리베리우스와 함께 겪었던 이야기이다.

 처음 만났을 무렵에는 그의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야 물론, 원초세계에 막 넘어갔을 즈음에는 이 세계에도 '빛의 전사'가 있다는 말에 그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수많은 싸움터를 거쳐온 백전무패의 노련한 사냥꾼일까? 아니면 정의심에 불타는 선하고 불꽃같은 사람일까? 내심 기대를 품은 채 적으로서 조우했던 리베리우스는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 초짜 티를 다 벗지 못 한 청년 모험가는 꿍꿍이속을 숨기는 듯한 미소를 늘상 걸쳤다.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기야 했다만 나는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저 자식, 사람한테 큰 관심이 없다. 그 모습에 괘씸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리베리우스는 '빛의 전사'라는 말에, '영웅'이라는 칭호에 담긴 무게를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세간에서 본인을 영웅이라고 부르니 그에 맞게 행세한다는 느낌이 강했지 세상이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인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 한번은 전투 중에 감정이 격해지는 바람에 나의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내가 세상을 망쳐놨으니 나만은 포기해선 안 되지 않겠느냐며 너라면 알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천연덕스레 웃으며 "내가 알아야 했던 거군요?" 라고 받아치는 게 아니겠는가. 전투 중 으레 치곤 하는 블러핑이나 도발이었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순진한 낯짝을 보고 순수하게 열에 받쳤었다. 질투심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다시 생각해보면, 눈 앞의 이 어린 영웅만은 나처럼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컸었다.
 본인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사고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길 바랐다. 나처럼 실패한 영웅이 아닌 다른 미래를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던 것도 같다. 불필요한 고통은 더이상 누구한테도 찾아오지 않길 원했다⋯⋯.

 그런 바람이 무색하게도 세상은 늘 그랬던 것처럼 나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멸망해가는 고향 속에서 죽어가는 너를 지켜본다. 아무것도 못 하는 채, 그저 바라만 보며.

 "⋯⋯."

 나의 세계는 빛에 의해 멸망했다. 하늘에서는 밤이 사라졌고 모든 생명은 빛 속에서 정체되어 멈춰갔다. 겨우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9할 이상이 하얗게 새어버린 땅 위에서 힘겨운 저항을 이어나가야만 하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그런데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리베리우스가 이 곳의 빛을 거둬나가기 시작했었다. 세계에 빛을 퍼뜨리는 '죄식자'라는 괴물을 처치하고 그 빛을 몸에 받아들이자 하늘에는 어둠이 돌아오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아 나갔다. 100년 간 보지 못 했던 밤하늘을 향해 감탄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보며, 리베리우스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까마득히 먼 과거에 보았던 미성숙한 초짜 모험가한테는 기대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예전과는 많이 다른 웃음을 짓는 채로 리베리우스는 '죄식자'를 하나하나 쓰러뜨려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리베리우스는 세계의 모든 빛을 제어하지 못 했다.
 하늘의 어둠은 다시 사라졌다. 거대한 빛을 감당하지 못 한 영혼은 제 의식을 유지하지 못 했고, '어둠의 전사'라고 불렸던 영웅은 사상 최대 최악의 대죄식자가 되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 놓였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모습을 보고만 있자면 그런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평소처럼 깨어나 헤픈 웃음과 함께 동료들과 함께 여행길을 나설 것만 같은 모습인데도. 리베리우스는 사흘동안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 몸은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고 한다.

 백 년 동안 유령인 상태로 떠돌아 다니면서도 이 정도로 암담한 기분을 느끼지는 않았다. 끝없는 고독과 상실의 두려움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비교하는 건 어리석은 행위일 거다. 착잡한 마음에 연신 마른 세수를 해댔다. 이제는 닳을 일 없는 장갑 손바닥이 닳는 것만 같았다.

 "⋯⋯ 으⋯⋯."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영원할 것 같던 너의 잠은 끝나고 신음과 함께 리베리우스는 눈을 떴다. 미처 다 감당하지 못 한 빛이 체내에서 마구 날뛰는 탓에 쉽게 정신을 차리지 못 한다.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동자가 허공 위를 마구 굴러다녔다.

 "⋯⋯⋯ 아. 깨어났군."
 "여기는⋯⋯."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리베리우스가 퍼뜩 상체를 일으켰다. 표정에는 공포가 가득 차있다. 그가 이 정도로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르버트! 그 후로, 그러니까, 제가 쓰러진 후로 어떻게 됐습니까? 수정공은요?"
 "일단 진정해."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최대한 애쓰면서 대답했다. "⋯ 수정공은 에메트셀크에게 빼앗겼고 네가 쓰러지자 즉시 모습을 감췄다. 그래서 린이 간신히 너에게 응급 처치를 해서⋯⋯ 빛의 폭주를 막아보려고 했어. 효과가 있었는지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것 같지만 원인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야. 네 상태는 변함이 없다."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 한 채 나의 말을 듣던 리베리우스.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창문으로 다가갔다. 두꺼운 나무로 된 창문을 열자 보이는 건 다시금 이질적인 빛에 뒤덮여버린 하늘. 새하얀 세상. 리베리우스는 말을 잃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게 현실이다⋯⋯. 노르브란트 전체가 다시 빛으로 뒤덮이고 있어. 모든 대죄식자의 빛을 받은 자⋯⋯ 네가 있기 때문이야."
 "⋯⋯ 해결해야 해."

 리베리우스가 중얼거렸다.

 "내가 원래대로 되돌려야 해⋯⋯."

 그 말을 끝으로 창틀을 짚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비틀비틀 걸어가는 리베리우스를 억지로 붙잡아 말릴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어차피 나는 유령이었으니까.

 "어이, 이봐! 어딜 가는 거야!"
 "안 따라오셔도 상관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젠장." 답답한 마음에 내 머리를 헝클였다. "냉정하게 말해 방법도 없잖아. 얌전히 있어봐."
 "대책이라면 생각해둔 게 있어요."
 "알겠으니까 제발 진정 좀 하고-"
 "─내가 진정을 할 수 있겠어?!"

 리베리우스가 나를 돌아보고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노호했다. 이렇게까지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너도 이랬잖아, 너라면 알잖아! 세계가 씨발 나때문에 좆됐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큭, 나도 알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거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움직여봤다 죽도 밥도 못 돼!"
 "아직 내 동료들이 이 세계에 있어. 이런데 내가 어떻게 얌전히 쳐누워서 멸망하는 거만 기다려? 난 절대 못 해. 내가 걔네 죽는 걸 어떻게 다시-"

 요동치는 감정에 맞추어 체내에 봉인했던 빛 에테르 또한 넘실거렸다. 고통을 참지 못 하고 말을 멈춘 리베리우스는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쿨럭. 새하얀 액체가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소화되지 못 한 빛 에테르가 뭉쳐 고인 것이다.

 "⋯⋯ 아직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말했잖아."
 "⋯⋯."
 "괜찮나?"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않은 리베리우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앉았다.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등을 쓸어줄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령인 내가 할 수 있는건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말을 걸어주는 것 뿐이다.

 "적어도 동료들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 이럴 때일수록 단독 행동이나 돌발 행동은 삼가라. 그게 모두한테 더 좋을 거다."
 "⋯⋯."
 "⋯ 이런 상황에서 동료를 믿어야지 그럼 언제 믿겠어."

 동료 이야기가 나오자 상태가 훨씬 좋아진 게 보인다. 바쁘게 오르내리던 견갑골이 차차 원래의 속도를 되찾아갔다. 눈꼬리에 약간의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들어올리는 리베리우스는 평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웅한테 어울리는 웃음이다.

 "⋯⋯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방금 제가 한 말은 부적절한 발언이 많았네요.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할게요."
 "⋯⋯ 너⋯."
 "이렇게⋯ 많이 아픈 건 처음이라서 이성적인 사고가 힘들었나봐요. 미안합니다."
 "⋯⋯."

 그가 보이는 인격적인 이상에 무어라 말을 해주고는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방에 멋대로 쳐들어와 눌러앉은 유령이고, 그와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이미 리베리우스와 같은 것을 겪었고 그릇된 선택을 해본 사람이 동료도 뭣도 아닌 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입술만 몇 번 달싹이곤 끝이었다.

 "⋯⋯ 움직일 수 있다면 잠깐 거리를 둘러보면 어때? 여기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것보다 마음이 안정될지도 몰라."

 대신, 나는 보여주기로 했다. 내가 존재할 동력을 얻었던 광경을 리베리우스한테도 주면 어떨까 싶었다.
 다행히 리베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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