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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혁이 아무리 영빈에게 제 멋대로 구는 것 같아 보여도 행동의 기저에는 거대한 벽이 몇 가지 자리하고 있었다. 첫째 예의없게 굴지 말 것. 이것은 애초부터 상혁이 넘을 생각조차 안 했으므로 의미가 없는 제약이었다. 영빈은 싸가지 없는 사람을 싫어했으니까...
문제는 두 번째다. 섹스할 때 원하는 대로 맞춰줄 것. 26년 열린 마음으로 살아온 상혁은 뭐 그까짓 거 당연히 들어 주겠다고 맨 정신으로 턱 약속했다. 설마 이상한 거 제게 시키겠냐 싶었다. 대달라 하면 대줘야 하나, 그런 생각이나 좀 했을 뿐이었다.
영빈은 오늘도 섹스 중에 울었다. 평소의 그 우는 듯 웃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목소리로, 얼굴에 열이 빨갛게 올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상혁은 이 악물고 허리를 치댔다. 젖어있는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눈썹을 이그러트리며 숨을 가삐 몰아쉬던 영빈은 절정이 다가오는지 고개를 뒤로 자꾸만 꺼떡거렸다. 살결이 얇은 피부는 터질 것 처럼 달아올랐다. 베갯잇이 축축하게 물들어 간다.
"김, 영빈."
"허억, 흑, 흐윽."
"입을 좀 열라고요."
숨을, 좀... 영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얇은 입술이 거리를 두고 천천히 벌어진다. 호흡이 그 사이로 정신없이 내쉬어진다. 상혁은 그 틈새로 파고들어 혀를 얽었다. 영빈은 훌쩍거리며 그걸 거부했고 상혁은 고개를 틀어쥐어 턱을 고정시켰다. 손아귀에 잡힌 얼굴은 살이 움푹 내려 턱뼈가 도드라졌다. 눈썹을 찌푸리고는 한참이고 키스를 했다. 몽롱한 얼굴로 고개를 떼어내자 영빈의 눈이 점점 풀려가고 있었다.
"상혁아 나, 갈 것... 같은데, 아, 아..."
눈물샘에서 또 무언가 왈칵 쏟아지고 있었다. 상혁은 크게 한숨을 내쉬려던 것을 가까스로 멈추고서는 세게 골반을 내리 꽂는다. 체격이 있는 몸인 탓에 힘주어 내리 꽂히는 상혁을 영빈은 피할 수 없었다. 영빈은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다 결국에는 고개를 뒤로 꺾고서는 사정을 겪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다가 가슴을 빨아들였다. 부피감 없는 살덩이를 그러모아 혀로 핥으니 움찔거리는 모양새가 더욱 거세졌다. 상혁은 제 밑의 영빈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 걸 보고 나서야 옆자리로 엎어졌다. 저야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 목 많이 쉰 것 같지."
"뭘 물어요 다 알면서."
상혁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하면 영빈은 흑흑 웃는다.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고 상혁은 여기에서 얼마 되지 않는 안정감을 찾았다. 여태껏 영빈이 좋으면 상혁도 좋은 것이었으니까. 현타 맞은 대가리 정리하고 있으려니 영빈이 넌지시 물었다.
"상혁아."
"네."
"오늘 어땠어?"
두 번째 문제가 도래했다. 앞서 언급했듯 영빈은 섹스할 때에 있어서는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것을 좋아했다. 사귄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섹스 얘기를 하다가 (그 당시 상혁의 기준으로) 수줍은 얼굴을 하고서는. 좀... 특이한 섹스를 하게 되면 자기한테 맞춰줄 수 있냐 묻기에 상혁은 그날 밤을 새가며 인터넷을 뒤졌다. 구글에 성인 인증 해가며 인터넷을 싹싹 뒤지니 하드코어 크림파이 레이프 같은 저급하고 자극적인 세계가 튀어나왔다. 지금 제대로 검색한 게 맞나 싶었다. 서려던 것도 뚝 멈추는 바람에 그냥 내렸던 바지 다시 올려 입었다. 오 시발...
그 다음날 잠을 자지 못해 뜬 눈으로 출근했다. 인간들은 정말 추악하구나. 길거리를 지나는 인간들이 다 망측하게만 보였다. 그래도, 설마, 영빈이 어제 본 그런 것들을 본인에게 주문하지는 않겠거니 싶었다. 남자경험 전무였던 상혁은 너무 하드한 것만 아니면 어떻게든 영빈에게 맞춰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상혁은 영빈을 진짜 존나 많이 좋아하니까...
근데 돌아온 대답은 좀 다른 방향의 것이었다. 몇 날 고민하다가 마음 다잡고, 저 형이랑 하는 거면 다 괜찮을 것 같아요 대답했더니 영빈은 끅끅 웃었다. 이상하게 우는 소리가 났다.
"상혁아 뭔지 알구."
"너무 아픈 것만 아니면 다 괜찮은데요. 더러운 것도 싫은데 그런 건 형도 싫어할 것 같아서."
영빈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또 웃었다. 아냐아냐 아픈건 내가 할 거야. 그럼 형이 그, 밑... 뭐 그렇지? ...예?
그 날이 첫날 밤이 되었다. 침대 밑에서 밧줄이나 수갑 따위가 나오는 거 아닌가 싶어 도끼눈을 뜨고있던 상혁이 무안해질 정도로 평범하고 부드러운 섹스를 했다. 키스를 하고 몸을 더듬다가 상대를 껴안고서는 달아오른 얼굴을 보는 것. 영빈은 관계를 하는 내내 은은하게 웃었다. 경험이 많구나 싶어서 얼굴에 열이 확 올랐는데 영빈은 그런 상혁이 귀엽다고 뺨에 몇 번 입술을 맞춰 주었다. 상혁은 제 사랑이 벅차서 조금 울었다.
어쨌든 둘은 잘만 지냈다. 자취방 놀러가서 눈 맞으면 섹스했다. 상혁은 영빈의 몸이 의외로 뜨거워서 좋았다. 제 볼을 영빈의 상반신에 붙이면 열기가 닿아 오는 게 좋아서 코가 찡해질 때도 있었다. 영빈은 상혁의 몸을 보며 어린 게 좋다고 했다. 뭔소리에여 하고 내려다 보면 아래가 묵직해서.
그래도 붙어먹기만 한 건 또 아니었다. 한 쪽이 오늘은 싫다고 하면 그냥 그러려니 했다. 주로 영빈의 쪽이었다. 그럼 상혁은 영빈을 꼭 껴안고 잠이나 잤다. 그러고서는 다음날 퉁퉁 부은 얼굴로 서로를 물고 빨다 놓아준 다음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영빈은 가끔 잠에서 덜 깨 푹 잠긴 목소리로 그랬다. 상혁이는 너는 잘 부어서 귀엽다고. 그게 진짜, 죽을 만큼 좋았다.
상혁이 야밤에 영빈의 집에 찾아간 것도 웃기긴 한데 좀 이어지는 맥락이었다. 김영빈이 하고 싶다는 그거 뭔지나 들어보자. 좆 같은 거 시키면 오히려 덜 좋아할 수 있어서 좋고. 할 만한 거면 그냥 김영빈 해달라는 대로 좀 해주고. 싸가지 없다고 생각할까봐 카톡은 남기고 찾아갔다. 5분 뒤에 형 집 갈게요. 문 열고 나온 영빈은 상혁의 이야기를 듣고 웃었다. 그 얘기 하려고 왔어?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맞춰준다고 했으니까. 상혁아 그럼 나를 좀...
울려줄래.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쳐다봤더니 영빈이 끅끅 웃었다. 우는 소리가 몸 깊은 곳에서 났다. 형 이런 취향이었어요 물을 뻔 했다. 이건 좀 예의없겠지. 눈만 굴리고 있었는데 영빈이 한번 더 말했다. 다 해줄 수 있다고 했잖아 상혁아. 고개를 치켜들었다. 영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좀 잘못 걸렸나 나.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오늘 어땠냐고?"
"응."
"울고 싶었는데."
영빈이 품에 들어왔다. 상혁이 네가 울면 어떡해. 아직 축축한 눈을 하고서는 웃었다. 엄지로 눈가를 쓸어주자 영빈은 몸을 가만히 내어 주었다. 상혁은 영빈의 어깨에 제 머리를 기대었다가 천천히 떼어 냈다. 내일 눈 부어요 세수하고 와.
"많이 울었나봐 나?"
"지금 얼굴 만져봐 엄청 축축하지."
제 얼굴을 더듬던 영빈은 살짝 미소지었다. 나 진짜 너랑 하는거 좋은 것 같아 상혁아. 상혁은 속으로만 대답했다. 저는 싫어요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