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없었는데... (상)

최저를 못 맞춰서 6광탈을 하고 나자 재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한 사고 흐름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유태양에게 이성적으로 굴 만큼의 정신머리는 남아 있었다. 가채점 하려고 챙겨뒀던 수험표를 쓰레기통에 처박으려다가 가까스로 정신 차렸다. 이왕이면 수험생 할인은 좀 받고 싶어서. 모르겠다. 유태양이 정말 정신 차린게 맞나? 최소 하나는 붙을 줄 알고 다 버렸던 문제집 및 참고서를 다시 줍기 위해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책더미를 뒤지다 소리를 꽥 질렀더니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왔다. 1701호 맞는데요. 네네.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어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이 되었다.

1월 1일 새해 첫 날. 갓 20살이 된 유태양의 선택은 해돋이 술집 다 스킵하고 집구석에 앉아 재수 학원 알아보는 것이었다. 두고 봐 내가 얼마나 잘 해내는지... 태양은 가끔 요령 없이 무섭게 달려들 때가 있었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이왕 한 번(아니고 두 번) 도전했으니 제대로 결과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가끔은... 노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 애초에 모든 게 그런 방식으로 해결된다면 유태양이 최저를 못 맞추는 불상사같은 거 애초에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3모 괜찮게 봤고 사설 모고도 점점 백분율이 올라가길래 이대로면 될 줄 알았다. 6모에서 다시 바닥을 찍었다. 수능 성적보다 못 나온 등급도 군데군데 보였다. 채점 한 시험지를 들고 그대로 학원에서 나와 맞은편 건물 1층에 있던 떡볶이집에 앉았다. 시장 떡볶이 3인분을 시켜 입에 쑤셔넣었다.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주변에서 다 쳐다볼까봐 꾹 참았다. 급하게 먹다 보니 체한 것 같았는데 그냥... 정말 그냥...

하루 종일 고민해서 결정한 건 주말 논술 학원이었다. 이거라도 좀 다녀볼까. 어쩐지 정시로는 좀 가망이 없을 것 같았다. 유태양이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자존감이나 자신감 떨어지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환경이 유태양을 좀 위축되게 했다. 노력해도 안 될 것 같고 어디 이 복잡한 마음 말할 데도 제대로 없고. 논술 로또라도 노려보려고 했는데 학원을 끊고나니 마음이 더 답답했다. 6모 끝나고 다들 비슷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논술 학원가에 사람이 미어 터졌다. 학생만 많은 게 아니라 원생 수에 따라 강사도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EBS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물고기 군집 같기도 했다.

태양이 그렇게 느낀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비슷하게 생긴 얼굴이 득시글거리는 A 학원. 가본 적은 없지만 B 학원도, C 학원도 그렇겠지. 틀에 복제품을 찍어낼수록 결과물이 열화되는 현상처럼 못난 것들만 가득하다. 양심적으로 재수 중에 연애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핸드폰도 2G로 바꿨고 대학 가서 연애하자던 형이랑은 잘 끝냈다. (거짓말이다. 형나재수해... 보냈다가 읽씹 잠수 이별당했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태양은 삶에 낙이라고는 하나 없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살아있는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태양아~ 저번보다 늘었는데?"

요즘 태양의 삶에 즐거움이라고 할만한 건 딱 하나 있었다. 논술 학원에서 첨삭 봐주는 알바 선생님. 학원에서는 원생을 5명씩 한 그룹으로 묶어 첨삭 알바를 배정해주었다. 선생님들이 이름으로만 불러서 성은 잘 몰랐는데, 하여튼 이름이 인성인거 하나는 확실했다.

"인성쌤이 잘 가르쳐줘서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래? 그런가? 그치?"

사실 인성이 하는 일은 크게 없었다. 실질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건 다른 사람(아저씨, 못생김, 관심 없음)이었으며 인성은 사람이 미어터지는 복도에 앉아 한 명씩 첨삭해주는 게 전부였다. 지루한 강의를 듣다가 바깥을 흘낏 쳐다보면 인성이 고개를 처박고 애 쓰는게 보였다. 강사가 직접 첨삭을 진행하지 않는다며 불호 후기가 많았지만 태양은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인성은 꼼꼼했고 다정했으며 무엇보다...

잘생겼다. 다른 게 더 필요한가? 원장도 그걸 알았는지 남자로만 그룹을 꾸린 다음 거기에 인성을 배정해두었다. 여자애들이랑 붙여놓으면 안 돼 인성쌤 믿지만 그, 알지? 하는 걸 태양도 들었다. 인성은 열심히도 네네 대답했다. 어쨌든 태양이야 나쁠 거 없었다. 잘생긴 사람이 1:1로 붙어서 글까지 봐주겠다는 데 마다할 거 있나. 옆자리에 앉은 인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즈니스 미소를 지었다.

"태양이가 선생님이랑 같은 대학 오고 싶다고 했잖아?"
"네."
"될 것 같은데?"
"진짜요?"
"응. 근데... 여기 봐볼까? 내용은 너무 좋은데 있지, 글 논제랑 취지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싫은 소리 못 해서 돌려 말하는 것도 좀 귀여웠다. 어쨌든 첨삭을 길게 길게 해주는 편이고 끝날때쯤 보면 인성의 의도대로 글이 다 바뀌어 있었으므로 딱히 시간이 아깝지도 않았다. 태양은 빨간 펜을 들고 글 부분부분 체크 표시를 하는 인성을 보다가 무심코, 정말 무심코 허벅지에 손을 얹었다. 이유는 없고 그냥... 인성의 등판에 가려져 원고지가 잘 보이지 않았고, 태양이 재수생이었다는 것 뿐이다. 원래 이때 제정신인 사람 찾기가 힘들었다.

"아?!"
"......"
"태양아, 그, 이거 선생님 다리인데..."

선생님 얼굴 빨개진다 하항. 인성은 민망하다는 듯 소리내서 웃고 있었다. 따라 웃으면 다 끝날 일이었는데 어쩐지 웃음이 안 나왔다. 손을 떼지 않고 슥슥 비비자 인성은 이게 장난이라고 이해한 듯 싶었다. 곧장 표정이 풀린다.

"다 고쳤으니까 이거 봐봐."
"네에."

손을 떼지 않고 원고지를 들여다보았다. 인성은 첨삭을 진행하는 내내 제 허벅지를 힐끔거렸다. 신경쓰인다는 뜻이겠지. 한 마디 말 못 하는게 웃겨서 몇 번 살을 손아귀에 쥐었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복도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았고 인성은 갈수록 얼굴이 빨개졌지만 태양은 부끄럽지 않았다. 사람 지나다닐때는 멈춰줬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인성이 뛰쳐나갈까봐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참아줬다. 한참을 설명하던 인성은 하던 말을 뚝 멈추고 물끄러미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아 선생님 말 다 들은 거 맞지...?"
"여기 조사 고치라고 했잖아요. 핵심어도 생략하지 말고."
"아... 듣긴 들었구나. 나는, 또 안 듣는 줄 알고..."

그때부터 인성에 대한 인간적인 흥미가. 개인 첨삭 할 때마다 인성에 대해 부지런하게도 물어봤다. 지금 몇 학년이에요? 여자친구 있어요? 군대 다녀왔어요? 태양이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인성한테는 좀 장난스럽게 굴게 되는 감이 있었다. 잘 받아주고 순해서 그랬다. 만만하다는 건 아니고 인성에게는 꼭 이래도 될 것 같았다. 태양도 유별나거나 호기심이 많은 부류는 아니었다. 정말로 인성한테만.

"선생님 몇 살이에요?"
"올해 마흔 넷인가."
"아 또 거짓말."
"원장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개인 정보 말해주지 말래..."

미안. 껌뻑이는 두 눈과 마주쳤다. 인성은 태양의 눈치를 본다. 현재 태양이 인성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대학이랑 과가 전부였다. 이상하게 말에 알맹이가 없는 탓이었다. 언제는 마흔 넷 자취생이었다가 언제는 또 서른 복학생이 되어 있었다. 겪으면서 그래도 성격은 좀 알 것 같았다. 물렁물렁 허허실실. 이 와중에 고집은 있어서 방금 들여다 본 원고지는 코멘트로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오늘도 정해진 첨삭 시간을 넘길 것 같다는 생각에 한숨이 조금 나온다. 이건 인성이 좋은 것과 별개의 이야기이다.

"부원장님이 되게 얌전하다고 했는데..."
"저요?"
"응."
"저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 인성은 한숨을 쉬다가 태양의 다리를 툭툭 두드렸다. 저번에 태양이 그러했듯 훑는 느낌보다는, 건드리고 금방 떠나는 것에 가까웠다. 누가봐도 건전한 격려의 의미.

"그럼 힘 내서 하장."
"배고파요."
"아..."

그렇지 않아도 잘 이어지지 않던 맥은 완전히 끊긴다. 마침 점심 시간이 아슬하게 걸쳐있었다. 그제야 인성의 눈에도 식사를 하러 나가는 학생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밥 먹고 다시 하자. 인성이 태양의 등을 두드리다가 살살 쓸어 주었으나 태양은 앉은 채로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밥 먹으러 안 가?"
"사주는 거 아니었어요?"
"내가?"
"네."



그렇게 서브웨이에 마주보고 앉아 30cm 플랫브래드를 뜯어 먹었다. 계산대 앞에 선 인성은 지갑을 한참 뒤적이며 물었다. 태양아 너 다 먹을 수 있어...? 겨우 카드를 꺼낸 인성이 태양을 티 안나게 위아래로 훑었다. 바싹 마른 몸. 그러나 물어본 게 무색하게 태양은 잘만 먹었다. 어어 많이 먹는구나 그래 보기 좋네. 학원가라 그런지 주변에 학생들이 꽤 많았다. 인성은 학원가에서 꽤 유명 인사였기에 더러 인성을 알아보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이 싹싹하게 인성쌤 안녕하세요~ 하는 걸 받아주다보니 식사가 마무리 되었다. 휴지로 입가를 정리한 인성은 인성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원장 선생님한테 자주 보이던 비즈니스 얼굴이다. 태양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제 들어갈까?"
"카페 안 가요?"
"사주면 들어갈래?"
"생각 좀 해보고요."

곤란하다는 낯빛이 순간 스치고 지나갔다. 곧장 멀끔한 얼굴이 되긴 했으나 태양은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푸하하. 영문을 모르는 인성은 입꼬리를 죽 늘리며 눈을 껌뻑거렸다. 카페에서 인성은 당연하게도 아아 두 잔을 시켰다. 태양이 주문할 새가 없었다. 컵홀더를 끼워 내밀자 태양이 머뭇거리며 벤티 사이즈 커피를 받아들었다.

"사줬으니까 이제 오후에 열심히 해야된다."
"아... 네."

그리고 들어간 수업. 태양이 수업을 듣는 동안 첨삭 알바 인성은 수많은 논술지를 채점하고 교정한다. 한창 넘기다가 유태양 세 글자 적힌 원고지를 보고서는 자세를 한 번 고쳐 앉았다. 세부 개요에 적힌 글씨는 오른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내려가고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크크크. 자기도 모르게 조금 소리내서 웃었더니 같은 처지의 첨삭 알바들이 인성을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 때 강의실의 문이 열린다. 창백하게 질린 낯의 태양이었다. 인성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날 뻔 했다. 다리가 들썩거린다. 곧장 눈이 마주쳤다. 태양이 인성의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작게 속삭였다. 저 어지러워요. 속삭이려는 의도는 없었던 것 같으나 목소리가 워낙 작아서, 바짝 정신을 차려야만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약 갖다줄까?"
"그런 게 아니고..."

커피 마셨더니 머리가 어지러워서...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진다. 인성은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태양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앞머리를 손으로 대충 헤치고 이마에 손을 짚었다. 뜨끈한 살갗.

"조퇴하고 집에 갈래?"
"집 가는데 한 시간 걸려요..."
"어어 안 되겠다. 어지럽지. 물 줄까?"

태양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채점하던 펜을 냅다 테이블에 던져두고 일어나 정수기에서 냉수를 떠왔다. 교무실에 있던 구급 상자를 뒤져 간신히 하나 남은 타이레놀까지 찾아냈다. 인성이 종이컵을 건네자 태양이 받아들고 천천히 물을 삼켰다. 큼직한 손에 들린 자그마한 종이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커피 못 먹으면 말을 하지."
"먹을 수 있어요."

테이블에 엎드려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은 없다. 어짜피... 첨삭은 거의 다 끝났고. 태양은 색색거리며 고르지 못한 숨을 내뱉고 있고. 인성은 저도 모르게 말한다.

"우리 집에 좀 누워있을래?"

여기서 한 5분정도 거리니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작아진다. 말하는 중간에 역시 이런 건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 탓이다. 개인정보도 말해주지 말라는데 대뜸 이렇게 집에 학생을 데려가도 되는건가? 그렇지만 동성이잖아. 그러면 괜찮지 않나...? 망설이는 동안 태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움직임이 굉장히 작았다. 이러면 인성은 또 매몰차게 거절하는 법을 잘 몰라서.

"선생님 집 좋은 냄새 나요."

결국 태양을 혼자 사는 집에 들였다. 자취를 시작하고 누가 이 집에 들어온 게 처음이었다. 이상하게 부모님한테 선물받은 페브리즈 방향제라는 소리가 안 나와 머쓱하게 뒷머리만 몇 번 긁었다. 아픈 건 잊었는지 태양은 금방 들뜬 목소리가 되었다.

"집에 학생 데리고 처음 와 보죠."
"어... 몰라. 아니다. 없는데?"
"있구나."
"태양아 좀 누워있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을 사용한다. 대답하지 않고 말의 방향을 돌리는 거. 태양은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가, 순순히 침대까지 걸어갔다. 옷 입은 채로 누워도 되겠냐는 듯 인성과 제 차림을 번갈아 쳐다보길래 고개만 몇 번 끄덕여주었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은 태양의 입술은 조금 벌어져 있었다. 두께감 있는 입술 틈에서 새어나오는 숨소리는 무시하기에 꽤 신경쓰이는 것이었다. 결국에는 침대 아래 바닥에 앉아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내리 깐 태양과 눈높이가 맞는다. 먼저 눈을 피한 건 역시 인성이었다. 태양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저 이제 안 아파요."
"학원 있기 싫어서 거짓말 친 거지?"
"아... 쪼끔?"
"왜 커피 마실 수 있다고 했어. 미안하잖아."
"어른같아 보이고 싶어서요... 선생님한테."

모든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인성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태양은 인성의 팔을 붙잡았다. 악력이 생각보다 강한 탓에 인성이 당황한다. 이렇게 말랐는데 힘은 어디서 나오는거지? 애초에 뿌리칠 수 있는 성격도 못 되었는데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인성은 난처한 표정만 짓는다.

"태양아 대학 가야지."
"재수생한테 그게 할 말인가? 그러려고 학원 다니잖아요."
"...선생님이 무슨 소리 하는지 알면서, 억."

인성이 뭔가 더 말하려는 걸 기다려주지 않고 태양이 인성의 팔을 잡아 끌었다. 침대 위로 몸이 딸려왔다. 끌려와 곧장 엎어진 인성의 위로 태양이 두 팔을 짚은 채 올라타 완전히 가둔다. 덮여있던 태양의 앞머리가 중력을 따라 쏟아지듯 내려왔다. 태양아 선생님 팔 빠질 것 같아, 이런 너스레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 인성은 문득 울고 싶어진다. 원장 선생님 말 들을 걸 그랬나. 아 진짜 이건 아닌데. 타임 타임. 생각나는 말 아무거나 막 뱉는다.

"원래 이런 거 해도, 막, 수능 끝나고 하는 게 보통 아닌가? 있잖아 태양아 대학 붙으면 그때..."
"보통?"

태양의 표정이 급격하게 무서워진다. 나이도 자기보다 어린데, 꽤 귀엽게 생겼는데... 이런 애에게 인성은 왜 자꾸 위축되는 걸까? 통통한 입술을 바짝 깨문 태양은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이런 거에 보통이 어딨어요?"
"아..."
"처음 해보는 거 아니죠. 학생이랑 막."

인성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인성에게 실제로... 이러한, 경험이 있냐고? 있어도 대답 못 하는데 묻는 이유가 뭐지. 태양이 본격적으로 이 주제로 파고들 기색이 보이자 인성은 선수 치듯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서 중얼댔다.

"태양아, 그, 선생님 보기보다 나이 많아..."
"그렇게 안 많아 보이는데."

태양이 팔 사이로 손을 뻗어 턱을 쥐었다. 몇 살이나 되어 보이나 가늠하려고 끄트머리를 조금 들어 올렸는데, 인성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아 그냥. 그냥 나이 많아."
"얼마나요."
"너랑 이런 거 하면 아슬아슬하게 안 될만큼..."
"민증 본다?"
"야아 반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맥을 못 추렸다. 인성은 태양에게 약했다. 그걸 알아차리자 태양은 어쩐지 멋대로 굴어보고 싶어진다. 무작정 입술을 들이댔다. 밀어내지도 떼어내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게 슬슬 웃기거나 귀엽다기 보다는 섹슈얼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온 몸에 피가 빠르게 돌았다.

혀 끝을 뾰족하게 세워 입 안으로 집어넣으려 했는데 틈이 도통 나질 않았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작전을 바꾸어, 적당히 물컹해보이는 입술을 물고 혀로 표면을 쓸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절대 입을 열 생각은 안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입술을 계속해서 핥았다. 부드럽고 팽팽한 살갗. 이런 방향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인성은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어 보였으나 입을 열면 혀가 들어오고 말 것이었다. 으흐읍. 어깨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떼어내려는 인성에 못 이기는 척 한 번 물러서주었다.

"이러면 키스 할 줄 알았는데."
"야, 너는, 하..."

인성이 팔꿈치 안쪽 살으로 입술을 반쯤 누르고 중얼거렸다. 닦아내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태양의 반응을 이 와중에도 신경쓰는 것 같았다. 인성이 횡설수설 하는 동안 태양은 천천히 침대에서 벗어나 들어올 때 봤던 입구 옆 테이블로 간다. 서브웨이에서 계산할 때 봤던 인성의 가방이 놓여 있었다. 태양은 잠깐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성을 살핀다. 아직도 눈을 꾹 감고 하소연 중이었다. 너 진짜 이러면 안돼 태양아. 듣고 있어? 중얼중얼. 그제야 호칭이 너라고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웃음을 참으며 가방에 손을 집어넣었다. 대충 휘저어 손에 잡히는 단지갑을 꺼냈다. 똑딱이 단추로 잠겨있던 지갑 안의 민증을 천천히 확인한다. 불길한 소리에 눈을 뜬 인성은 그제서야 헙 입을 다물었다. 뺏어 들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걸 직감한 탓이다. 지금보다 앳된 얼굴의 증명사진 오른쪽에 박힌 6글자 그리고 7글자의 숫자. 왼쪽 2개만 천천히 읽는다. 하나... 둘... 셋... 넷. 태양과 겨우 네 살 차이였다. 침묵뿐인 방 안은 꼭 취조실같았다.

"...스물 넷?"
"응..."
"네 살 차이네?"
"응......."

태양이 초성으로밖에 표현되지 않는 웃음을 쳤다. ㅋㅎ... 에 가깝지 않을까. 숨소리에 인성이 바짝 쫄아들었다. 미지의 나이차라는 권위를 뺏긴 인성에게 남은 건 선생-제자라는 클래식 페티시의 영역 뿐이었다. 이거 뭐 오늘 끝까지 가겠다고 작정한 것도 아니고. 인성은 다시 한 번, 아주 분명하게, 태양을 집에 들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보기보다 나이 많다면서요."
"그건 그냥 한 말이지..."

태양이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눈매가 매서워졌다. 나이도 어린 게, 꼭 자신을 혼내는 것 같아서... 아. 인성은 더 이상의 묘사를 하기에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인성은 변명하려던 입을 닫고 고개를 푹 수그렸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태양은 다시 인성의 가까이로 다가오더니 침대를 무릎으로 짚고, 인성을 내려다보며 양 볼을 감쌌다. 5초 뒤를 예상한 인성이 눈을 질끈 감았다.

"태, 태양아. 태양아 잠깐."
"이제 선생님 말 안 들을 건데요."
"그래도 하는 것까지는 좀 아니지 않나. 응? 그래. 너 학생이잖아 태양아."
"저 졸업 해서 지금 무직인데."

아... 다시 입술이 닿아왔다. 부피감 푹신한 입술은 변명을 더 듣지 않겠다는 듯 인성의 입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집요하게 입술을 공략하는 대신 몇 번 가볍게 들러붙다가 접착성 없이 떨어져 나갔다.

"형."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저 싫어요?"

논술문에는 약해도 핵심만큼은 정확하게 짚는다. 태양이 싫으면 자리라도 박차고 나갔어야지. 그러나 인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러면... 태양이 좋다는 거 아냐?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대충 엇비슷한 정답이다. 인성이 크게 당황하자 태양이 인성의 목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고개를 기울여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 소문 안 내고 조용히 있을게요...

인성은 이름값도 못하고... 못 이기는 척 태양의 뒷머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조금 끌어당겨 키스한다. 부드럽게 살과 살이 맞닿는 건 짜릿했고 눈을 감은 인성은 정말 봐줄만한 수준이었다. 이런 짓 정말 해도 되나 싶었는지 손을 바들바들 떨어대는 거 빼면, 인성은 굉장히 매너있는 편이었다. 첫키스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느긋한 속도는 처음이라 좀 헤맸다. 금방 숨이 막혀 볼이 홀쭉하게 패였다. 먼저 달려들었던 것 치고 모양 빠지게 인성의 어깨를 밀어내었다. 호흡이 부족해 급하게 밀어내다 자세가 무너져 인성에게 매달린 꼴이 되었다. 인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태양에게서 쭈뼛쭈뼛 멀어졌다.

"어디 가요."
"으응?"
"선생님 곧 침대에서 떨어질 것 같아서."
"야 방금 그런, 거 했는데. 그렇게 부르는 건 좀 봐주라..."

태양이 눈을 껌뻑거리다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선생님이요?"
"어 그거..."
"선생님인데 그럼 선생님이라 하죠."
"뭔가 엄청난 가책이..."
"이미 해놓고 무슨."

다시 태양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인성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다. 이상함을 느낄 때쯤 태양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린다.

"기대했죠."
"선생님을 막 놀리네..."

이제 정말 거절의 의미가 무용해진다. 이미 태양에 대한 호감은 티가 나버렸고, 거절하기에도 너무 멀리 가버렸고. 차라리 입술이 붙기 전에 도망갔어야 했는데 사실 태양을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인성이 다시 애매한 얼굴로 웃었다. 일단 웃는 건 잘 할 수 있었다. 태양은 잠깐 고민하더니 인성의 어깨를 밀어 침대로 눕혔다. 태양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행동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본인이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뒤로 쉽게도 밀려준 인성의 슬랙스를 끌어 내리자 분위기가 슬슬 변했다. 드로즈 가운데를 손가락 끝으로 몇 번 툭툭 건드리자 막힌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바짝 깨물고 있는 인성. 보고 있자니 어쩐지 오기가 생겨 손바닥에 힘을 주어 드로즈를 압박했다. 힘을 줄수록 심지가 단단해진다. 까슬까슬한 면을 비비면서 간을 보다 마침내 옷을 완전히 벗겨냈다.

"윽, 으..."

끄트머리가 이미 축축한 자지를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인성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고보니 학원에서도 항상 웃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웃지 않는 인성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전혀 아니었다. 오싹함과 동시에 잔뜩 흥분했다. 흔드는 속도가 올라간다. 인성은 입술을 깍 깨물고 시트를 꽉 붙잡고 있다가,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헉, 흐으... 태양아. 그만."
"싫어요."
"아, 그런 게, 아니고... 진짜..."

목소리 톤이 다르다. 태양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손을 떼자 인성이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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